검찰의 흑역사 사례 몇 가지(자백 1~3)를 찾아보다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검사들은 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누가 보더라도 폭력과 거짓에 의해 만들어진 수사에 대해 “그건 아니야!”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증거를 조작하고 거짓 자백을 강요하는 것일까? 왜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까라면 까고 짖으라면 짖는” 역할을 감내하는 것일까? 왜 피의자의 눈물어린 호소에 둔감한 것일까? 왜 법정에서 억지를 써서라도 이기려고만 하는 것일까? 왜 증거조작, 부패, 인권유린 등으로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도 이에 대한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로운 것인가? 이런 질문을 빚어내는 토대로서 검찰제도는 어떻게 생겨먹었고,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여러 질문이 생기면서 검찰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첫 단추는 검찰청법.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검찰청법을 치니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저장된 검찰 관련 법률정보가 쫙 펼쳐졌다. 조문을 살펴보다 든 생각은 검찰청법 첫 장부터 참 이상하다는 거였다.
검찰청법 제 4조 (검사의 직무)
①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다음 각 호의 직무와 권한이 있다.
1. 범죄수사, 공소의 제기 및 그 유지에 필요한 사항
2. 범죄수사에 관한 사법경찰관리 지휘ㆍ감독
3. 법원에 대한 법령의 정당한 적용 청구
4. 재판 집행 지휘ㆍ감독
5. 국가를 당사자 또는 참가인으로 하는 소송과 행정소송 수행 또는 그 수행에 관한 지휘ㆍ감독
6. 다른 법령에 따라 그 권한에 속하는 사항
②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검찰청법 제 4조, 검사의 직무를 보면서 놀란 것은 법률이 검사들의 어깨에 뽕을 잔뜩 넣어주는 꼬봉 역할을 한다는 거다. 법적으로 검찰은 상당한 권력(공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많은 권력을 부여하면서 국가는 검사에게 당신은 “공익”의 수행자도 아니고 “공익”의 대표자라며 국가대표 유니폼을 부여한다. 좀 과하다 싶었는지 꼬리표로 ‘권한을 남용하지 말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세요.’라며, 윤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한다. 아니 어마무시한 권력을 부여하고는 권한을 남용하지 말래니 이게 말이야 된장이야 똥꼬야!
도대체 이 말이 안 되는 법은 언제 어떤 이유로 만들어진 걸까? 이게 궁금해졌다. 그리하여 타임머신을 타고 조금 멀리 여행을 떠나려 한다. 어디서 멈출거냐면 근대 국가가 탄생한 300여년전. 걱정마시라. 초고속 타임머신을 타고 금방 돌아올 거다.
검사라는 직업은 근대 국가의 탄생과 맞물린다. 고등학교 사회 시간의 기억을 조금 떠올려보면 근대 국가의 탄생은 개인의 탄생과 맞물려 있다. 시민권, 인권, 자유, 평등, 주권 이런 개념들은 죄다 근대 국가와 함께 하는 개념들이다. 그러다보니 국가의 공권력 행사도, 왕 마음대로, 대통령 마음대로 보통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가 된다. 검사라는 직업이 탄생한 것은 이 기본권 침해를 절차적으로 제약하기 위함이 그 목적이었다. 그러니깐, 나쁜 놈이라고 의심받는 사람들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공권력 행사에 있어서 피의자의 기본권이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 검사라는 직업을 탄생시킨 거다. 무죄추정의 원칙, 피의사실 공표 금지, 피의자 인권 보호 등 우리가 자주 들어왔던 말들도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 “검사”라는 직업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한다.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탄생한 검사 앞에서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이 새끼가 내 아들에게 폭력을 가했는데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고? 이 놈이 우리 가정을 파탄 낸 사기꾼인데 피의자 인권 보호라고? 피의자 인권만 인권이냐! 피해자의 마음은 어떻게 하구! 이런 삐딱한 질문을 할 수도 있는 거다. 나와 내 가족이 피해 당사자라면 더욱 그렇다.
사실 모두가 공분할만한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의 경우 피해자뿐만 아니라 언론과 대중 모두 피의자에게 손가락질을 하게 된다. 여기저기서 “죽여!”라는 말이 들리고, 이런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검사들도 이 목소리로부터 자유롭기 쉽지 않다. 그래서 근대국가의 검찰 제도는 형사 소송의 집행 과정을 절차적으로 복잡하게 구성해놓았다고 한다. 아무리 나쁜 놈이라는 확신이 들더라도 절차적 정당성 없이 구속도, 형집행도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거다.
이런 제도는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하나의 매듭이었다. 신의 시대라 불리는 유럽의 중세가 “신”을 앞세운 “야만”의 시대였다면, 이 시대를 넘어서는 기본정신은 인.본.주.의!!. 그리고 그것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이 단두대와 사법제도였다고 한다. 왜 단두대가 인본주의의 표상이냐구? 이전 시대는 사람을 죽여도 너무도 가혹하고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였는데, “이제 그러지 말자”며 만들어진 게 단칼에 죽이는 단두대였다는 거다. 단두대가 저작거리에서 눈에 보이는 변화의 징표였다면, 제도적 측면에서 변화는 사법제도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바로 여기서 검찰이 등장한다. 시민을 대변하고 법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를 육성하고, 그로 하여금 국가의 야만적 공권력을 견제, 통제하고 시민을 보호하라는 거였다.
과연 잘 됐을까? 누구든 권력을 가지면 그게 누구든 그 칼을 쓰고 싶어지는 법이다. 설상가상 스스로 똑똑하고 스스로 선이라고 자부하는 집단이 “내가 곧 정의다”라고 생각하면 그 힘은 잔인해질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옳음과 정의를 강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사 제도가 선용되기 위해서는 그 힘을 견제, 통제하는 장치들이 중요하게 되는데 이 장치 중 하나가 힘의 사용에 여러 제약을 두는 절차적 정의였다.
한국의 경우 이 절차적 정의가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식민지 지배와 권위주의를 거치며 검찰이 하는 일은 한때는 야만적인 일제의 통치와 권위주의적 국가 권력의 통치를 도와주는 조력자였고, 민주화 이후에는 스스로가 통치의 핵심이 되었다고 이야기된다.
풍문으로 들리는 통치 매커니즘은 이렇다. 일단 수사 과정. 한국의 검사는 직접 또는 사법 경찰을 지휘하여 피의자에 대해 위압적인 수사를 한다. 다음 기소와 재판 과정. 수사가 일단락되고 기소를 하면 유죄 선고율이 99%에 달할 정도다. 사법부의 판단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는 시점에 사실상 결정된다는 거다. 재판은 경찰과 검사의 수사 결과(특히 조서)에 의존하여 큰 문제가 없으면 오케이 사인을 하는 모양세다. 한 시민이 경찰서나 검찰청에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법원이나 구치소로 빠져나오는 전 과정에서 검찰의 영향력은 너무너무 막강한 거다. 그래서 검사한테 찍히면, 죽는 거다.
풍문으로 들리는 이런 이야기는 어디까지 진실일까? 그러고 만약 이게 진실이라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타임머신을 타고 휘리릭 100년전 한반도로 가보자.
<참고문헌>
문준영 (2009). 한국적 검찰제도의 형성. <내일을 여는 역사>, 36호, p. 20~54.
JTBC (2018, 10, 24). 차이나는 클라스, 83회, 김웅 검사편.
김웅 (2019). <검사내전>. 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