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백3 : 탈북자 우성씨와 가려씨

유우성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by 오윤

피의자 유우성

우성씨는 재북화교 출신 탈북자다. 2004년 한국에 왔다. 가끔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가족들에게 돈을 부치기도 했다. 그게 가능해?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진행되는 조금은 비싼 일상이다. 2006년 어느 날,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중간에 갑자기 끊겼다. 그 다음날 중국에 있는 당숙삼촌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화도중 북한 보위부 탐지기에 걸렸고, 보위부 사람들과 실갱이를 벌이다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경황이 없었다.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국에 사는 친척들과 함께 단순 통행증을 떼어 곧장 북한에 들어갔다. 화교 출신이기에 통행증을 떼는 게 어렵진 않았다. 4박 5일, 어머니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6-2 유우성 오마이뉴스.jpg 출처: 오마이뉴스

이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을까? 대한민국 국민은 북한에 가면 안 된다. 그런데 우성씨처럼 북으로 넘어갔을 때 국가보안법은 가장 낮은 형량이 7년, 형법은 2~3년, 남북교류법은 벌금만 내면 된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어떤 잣대를 들이대느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고, 이 기준은 검찰의 재량에 달려있다. 위법의 소지가 있고, 검찰의 마음이 어떨지에 따라 위험도 크지만 그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저것 따질 게재가 아니었다. 이 일로 3년 동안 국정원, 경찰청, 검찰청을 넘나들며 조사를 받았다. 가택수사도 당했고, 주변에 있는 지인들도 모두 조사 대상이 됐다. 간첩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을 받았고, 힘든 시절이었다. 그러나 국가기관 입장에서 그런 의심을 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의혹이 하루라도 빨리 해소되길 바랄 뿐이었다. 최종적으로 검찰로부터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렇게 남한에서의 한 고비가 넘어갔다. 2010년 서울시에서 북한이탈주민 공무원을 채용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무원 채용 과정에서의 신원 조사는 촘촘하고 엄격했다. 경찰, 검찰, 국정원 신원 조사와 검증을 거쳤다. 2011년 서울시 공무원으로 채용된 후 얼마 안 있어 국정원 대북 수사관이라는 사람이 연락을 해왔다. 서울시 공무원도 좋지만 대한민국을 위해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재북화교로 북한을 편하게 다닐 수 있을 테니 정보원 일을 해보겠냐는 것이었다. 일언지하로 거절했다. 스파이를 하라는 건데,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헤어질 무렵 수사관이 다른 부탁을 해왔다. 주변에 정보원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나 탈북자 중 수상하게 생각되는 사람을 제보해달라는 거였다. 이것까지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든지 간첩 신고를 해야 하는 것이니깐... 수사관과 주기적으로 만나며 주변에서 만나는 탈북민들의 동향을 국정원에 알렸다.


6-3 유가려 오마이뉴스.jpg 출처: 오마이뉴스

우성씨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다. 이름은 유가려, 가려씨는 한국을 동경했고, 오빠와 함께 살고 싶어했다. 어느 날 우성씨는 수사관에게 부탁했다.

“여동생을 한국에 데리고 와 살고 싶은데요.. 어떻게 가능할까요?.”

수사관이 말했다.

“데리고 들어와. 합동신문센터에 미리 얘기해 놓을테니.”

2012년 10월, 동생이 제주공항에 도착했고, 우성 씨는 직접 국정원에 신고했다. 그날 저녁 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생은 센터에 잘 들어갔어. 좀 있으면 나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게 마지막 전화였다. 일주, 이주, 삼주,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수사관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새해에 안부 인사를 보냈다. 이번에도 답장은 없었다. 그 사이 신문과 뉴스는 대통령 선거와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으로 시끌벅적했다.


6-3 유우성 체포 노컷뉴스.jpg 출처: 노컷뉴스

2013년 1월 우성씨는 긴급 체포됐다. 국내 탈북자 200여 명의 정보를 북한에 넘겨준 혐의였다. 언론은 이 사건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고 불렀다. 박원순 서울시장 밑에서 일하던 최초의 탈북자 공무원이 알고 보니 간첩이었다! 이 사건은 대선 댓글 조작을 완전히 묻어버렸다.


우성씨는 구속됐을 때 영치금을 넣어줄 가족이 한국에 한 명도 없었다. 돈도 가족도 없고, 변호사도 없었다. 조사를 받는 내내 이미 스토리는 정해져있고 거기에 자신을 끼워 맞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항변을 해도 검찰은 우성씨의 말을 무시했고, 언론은 간첩이라 낙인찍힌 탈북자보다 검찰의 이야기를 믿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구나.”


심리적으로 위축됐다. 권력이 있고 돈이 있었다면 이런 취급을 받지 않을 텐데... 마음에 분노가 쌓였다. 한국 사회와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된 것 같았다. 우성 씨가 간첩으로 몰린 가장 강력한 증거는 동생 가려씨의 자백과 검찰이 제출한 북한에서 찍었다는 핸드폰 사진, 그리고 출입경기록확인서였다. 동생 가려씨는 2006년 어머니 장례식 이후에도 오빠가 15번 이상 북한을 드나들었고, 회령시 보위부의 정보원으로 활동했다고 허위 자백했다. 핸드폰 사진과 출입경기록확인서는 우성씨가 북한을 오간 것을 확인해주었다.


수년의 법정공방을 통해 드러난 사실. 자백은 국정원 수사관들의 회유와 폭행에 의한 허위자백이었고, 확인서는 위조된 기록들이었으며, 북한에서 찍었다는 사진은 알고 보니 중국 옌벤이었다. 허위자백, 위조, 거짓말로 날조된 간첩사건, 이를 주도한 건 국정원과 검찰이었다.


6-2 유가려 뉴스타파.jpg 출처: 뉴스타파

동생 가려씨는 한국에 온 후 6개월 넘게 합신센터 독방에 홀로 갇혀 있었다. 합신센터는 탈북자들이 하나원에 가기 전 간첩인지 아닌지를 조사 받는 기관이다. 어떤 탈북자든 한국에 들어오면 이곳에 감금된 상황에서 조사를 받는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법적인 보호도 전혀 받지 못하고, 마음만 먹으면 간첩으로 조작되는 건 일도 아니다. 가려씨는 그곳에서 협박, 회유, 폭언, 폭행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때론 오빠를 위해, 때론 자기를 위해, 때론 너무 힘들어서, 때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오빠가 간첩이라 말했고, 때론 아니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중에서 “오빠가 간첩이라고”한 진술서만 법원에 증거자료로 냈다.


6-4 합동신문센터.jpg 출처: 뉴스타파

동생 가려씨는 합동센터에서 국정원 직원만 만나면서 감시카메라와 함께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보내야했다. 우성씨의 변호인은 아홉 차례에 걸쳐 가려씨에 대한 접견을 요청했지만 국정원은 허락하지 않았다. 피고인이 아니라 참고인이기 때문에 변호사가 필요 없고 본인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검찰 역시 가려 씨가 변호인을 접견하면 진술을 번복할 수 있다는 이유로, 변호인 접견을 차단하기 위해 그녀를 기소하지 않고 참고인으로 외양을 유지한다. 오빠 우성씨와 동생 가려씨는 재판장에서나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6-7 증거조작 중앙일보.jpg 출처: 중앙일보


증거조작은 1심 재판 과정에서 불거졌다. 검찰은 우성씨가 북한에서 아이폰으로 찍은 것이라며 사진 여러 장을 증거로 제출했다. 변호인이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해본 결과는 달랐다. 검찰이 북한에서 촬영했다고 밝힌 2012년 1월 22~23일에 그의 아이폰에는 중국에서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그리고 북한에서 찍었다고 주장한 사진의 위치는 중국 옌볜이었다. 우성씨는 수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그 사진은 중국 연길에서 가족과 함께 찍은 거라 진술했다. 검찰은 귀담아듣지 않았고, 당연히 수사하지도 않았으며, 중국 사진을 북한 사진이라 우기며 법원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증거조작의 절정은 2심 재판 과정이었다. 검찰은 우성씨가중국과 북한을 오간 출입경기록을 결정적 증거라며 법원에 제출한다. 이 기록만 보면 우성 씨가 북한을 오간 것에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우성씨의 변호인단은 화룡시 공안국을 찾아갔다. 공안국은 자신들이 발급한 기록이 아니라 했다. 상급기관으로 가봤다. 오히려 화를 냈다. 누가 이딴 가짜를 발급한 거냐? 이걸 위조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성을 냈다.


우성씨 변호인단이 법원에 증거가 위조되었다고 이야기하자 검찰은 “화룡시 공안국의 확인서”를 또 하나의 증거로 제출했다. 그 확인서를 받아준 곳은 심양주재 한국 영사였다. 중국 공안국은 확인해준 적이 없다는데 한국 영사는 확인증을 받았다하는 이상한 상황. 변호인단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중국 공안국을 찾았다. 한국 영사로부터 문의를 받긴 했지만, 우리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6-9 담당검사.jpg 출처: 참세상

답답해진 법원은 중국 정부에 공식적인 사실 요청을 했다. 중국 정부의 답장이 왔다. 검찰이 제시한 문서는 모두 위조! 이에 대해 검찰은 이런 명언을 남긴다.

“진짜인 것으로 믿고 제출했고, 지금도 위조가 아니라고 믿는 바이지만 추후 검증은 필요하지 않겠나 그런 입장입니다.”

뻔뻔해도 너무 뻔뻔한 명언이었다.


증거조작에는 탈북자들도 동원됐다. 검찰은 다수 탈북민의 진술서, 진술조서를 증거로 신청하였는데, 탈북민들의 진술은 북한 회령에서 우성을 직접 목격하였다는 내용에서부터 풍문으로 들었소까지 다양했다. 이들의 진술은 사실 모순 덩어리였고, 이런 이야기까지 증거가 될 수 있는지 의아할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검찰이 제시한 탈북민의 진술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증언한 탈북자들은 재북화교민들을 별로 안 좋아한다”였다.


실제로 북한 주민들은, 재북 화교들이 부유한 생활을 하는데 그 이유가 보위부에 뇌물을 제공하거나 보위부가 요구하는 물품을 조달하는 대가로 중국과의 밀무역, 불법 환전으로 적발되더라도 처벌받지 않거나 경미한 처벌에 그치는 공생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에서도 탈북민들은 저작거리에 떠도는 보위부와 재북 화교의 관계에 대한 풍문을 근간으로, 우성씨와 회령시 보위부와의 관계를 단정하여 진술하거나, 우성 씨가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음에도 귀순한 것으로 보아 보위부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는 등의 추측성 진술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우성씨가 간첩이라고 주장한 이들에 대해 국정원은 비공식적인 돈을 법무부는 공식적인 돈을 주었다. 가령 법무부는 1심 선고도 나기 전인 2013년 6월, 증인으로 나선 탈북자 4명에게 상금을 주는데 적게는 800만원, 많게는 1600만원 정도였다. 국가보안법 제 21조(국가보안법 죄를 범한 자를 수사·정보기관에 통보·체포한 자에게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상금을 지급한다)가 근거였다. 대통령령은 공소가 제기되거나, 기소유예 또는 공소보류가 되어도 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국가기관은 언제든지 법의 빈틈을 악용해 유리한 진술을 받을 수 있었다.


2013년 1월 간첩혐의로 긴급체포된 우성씨는 3년 후인 2015년 10월 29일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 판결을 받는다. 우성 씨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에 민변, 뉴스타파 등 많은 사람들과 조직의 피땀눈물이 있었다. 만약 우성 씨의 사건이 민변이나 언론사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우성 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교도소에 있을 거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민변이나 언론인의 도움을 받을 사람들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거다. 우성 씨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회에서 조작을 해도 권력이나 돈이 있는 사람들은 당하지 않는다. 반항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그 먹잇감이 된다. 나뿐만 아니라 탈북자 20명여 명도 간첩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정확하진 않다. 나는 그 모든 사람이 다 간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작된 사건들이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 어떤 지위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조작되는 건 본 적이 없다. '법은 본래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를 제재해야 하는데 오히려 약자를 버려두고 강자를 보호'하고 있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정말 중요한 것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허위자백을 강요하고, 증거를 조작하고, 인권을 유린한 쌍놈의 개새끼들에 대한 책임이 정말 무겁게 매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 조작, 장요, 인권 유린등에 앞장선 검사, 수사기관 등이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성씨 재판에서 증거조작에 가담한 검사 2명을 검찰은 기소도 하지 않고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렸다.

“시끄럽고, 고생했으니 1개월만 쉬고 와. 그러면 잊을 거야.”

국정원 관련된 사람들도 기소는 됐지만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앞으로도 어디선가에는 우성 씨와 같은 이야기는 계속될 거다.



<참고문헌>

미디어오늘 (2019, 2, 10). 유우성 증거조작사건’ 동아일보의 이유 있는 침묵.

미디어오늘 (2017, 9, 3).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 동아일보와 국정원의 특별한 관계.

법무부 (2019, 2, 18). <유우성 증거조작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 법무부 보도자료.

시사인 (2019, 3, 26). 6년만에 드러난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진실.

오마이뉴스 (2019, 6, 28). 박근혜 댓글조작 묻으려 간첩 조작... [문재인 시대에 국가보안법을 논하다 ⑤] : 국정원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유우성

일요신문 (2017, 10, 25). 간첩조작’ 피해자 유우성 “내 사례는 빙산의 일각” 종북플레이 선거 때마다 활용돼…“국정원에 수사권 있는 한 ‘조작’ 반복될 것.

JTBC뉴스룸 (2014, 2, 18). 유우성 인터뷰 "입북은 한번 뿐, 검찰 문서 위조 근거는".

최승호 감독 (2016).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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