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자백2 : 익산의 오토바이 청년

약촌오거리 이야기

by 오윤

피의자 최형민(가명)

형민씨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고 불안했다. 아버지는 무능했다. 술을 좋아했고 종종 폭력을 썼다. 엄마는 다섯 살 때 집을 떠났고, 형민씨는 아홉 살 때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열세 살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그때부터 학교는 다니지 못했다.

2000년 형민씨는 15살이었었고, 다방에서 커피 배달하는 언니들을 오토바이로 태워다 주는 일을 했다. 여름날 새벽, 커피 배달하는 언니를 허름한 모텔에 내려주고 다방으로 돌아오는 길. 오거리에 경찰이 쫙 깔려 있었다. 형민씨는 궁금했다. 낯익은 경찰 아저씨 얼굴이 보였다.

“무슨 일이에요?”

“택시 기사가 칼에 찔렸는데.. 야 너 이 주변에서 수상한 사람 본 적 있어?”

“아까 남자 두 명이 뛰어가는 걸 보긴 봤는데?”

“그래?”


4-1자백1.jpeg 영화 <자백> 중

경찰서로 갔다. 경찰들은 목격한 두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새벽이었고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대충 둘러대고 경찰서를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천안에 갔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물었다. 천안이라 답했다. 그 다음날 또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물었다. 서울이라 답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하니 내려오라고 했다.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지만 어차피 다시 내려갈 익산이었다. 다음 날 역에 내려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고 온 형사들이 형민씨를 데리고 간 곳은 경찰서가 아니라 모텔이었다.

한 형사가 전화번호부 책을 형민씨에게 내밀었다.

“택시 기사 죽인 사람 찾아봐.”

당황스러웠다.

“모르는데요.”

“너지?”

“아니에요!”

말이 끝나자마자 뺨이 화끈거렸다. 질문이 반복됐다. 답을 할 때마다 뺨과 뒤통수가 화끈거렸다. 모텔을 나올 때 즈음 형민씨는 형사가 말하는 대로 종이에 받아쓰기를 했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저를 때려서 오토바이 밑에 있던 칼을 꺼내 어깨를 잡고 찔렀습니다.”

경찰서에서도 구타는 계속됐다. 경찰봉으로 맞고 대걸레 자루로 맞았다. 엎드려뻗쳐 자세로 한참을 있었고, 머리박기도 많이 했다. 안 죽였다고 하면 경찰서 안 깊은 방안으로 끌려갔다. 도와줄 어른도 없었고 형민씨는 거짓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1심 법원에서 형민씨는 내가 안 죽였다고, 구타를 당해 어쩔 수 없이 허위 자백을 했다고 말했다. 판사는 형민씨에게 반성하지 않는다고 꾸짖었고 괘씸죄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18세 미만 소년에게 줄 수 있는 법정 최고형이라 했다.


항소를 했다.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제가 무슨 죄를 졌다고 이런 누명을 쓰고 형을 살아야 하는지 앞날이 캄캄합니다.”

항소이유서에는 이런 말을 썼지만 2심 재판에서도 형민씨는 어찌된 일인지 자신이 살인자라고 말했다. 국선변호사가 어린 형민씨 말을 믿지 않았다. 죽였다고 해야 형을 깎을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형민씨는 어른들에게 거짓으로 용서를 구했다. 판사 아저씨는 그런 형민씨가 기특했는지 통 크게 5년을 깎아 줬다.


김천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2006년, 어느 날 호송차에 올랐다. 전주지검 군산지청으로 간다고 했다. 6년만에 진짜 살인자가 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대감이 생겼다.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형민씨 앞에 한 남자가 검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가 택시 운전사를 살해한 살인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 사이로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다.


"친구한테, 그리고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 범인이 자신이라 얘기한 적 있지요?"
"네 그렇습니다."
"왜 친구와 경찰한테 자신이 범인이라 했죠?"
"친구한테는 가오다시(폼)를 잡기 위해 그런 말을 했고, 당시 저희 부모님들이 이혼을 하고 저한테 신경을 쓰지 않아 제가 사람을 죽여 경찰서에 있다고 할 때 심정이 어떤지 당해 보라는 차원에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범인도 아니면서 살인범이라고 한 후 바라는 대로 부모의 사랑을 받았나요?"
"네.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관심을 받았나요?"
....
"그런 부모님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


검사가 참 인자하고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 허위로 살인자라고 말했고, 검사는 그런 그를 너그럽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형민씨 차례가 되었다.


"지금 심정이 어떤가요?"

"억울합니다."

"억울하다면 항소심에서 10년형이 선고됐을 때 상고하면 됐는데 왜 포기했나요?"

"목포교도소에서 같이 생활하던 방 식구들이 상고해 봤자 의미 없다 하여 포기했습니다."

"어떻게든 억울함을 호소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호소하면 뭐하죠? 믿어 주지 않는데요."

'누구에게 호소했나요?"

"검사에게도 하고 판사에게도 하고.. 아무도 제 말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왜 당신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나요?"

"모르겠습니다. "


형민씨는 다시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 앞에 있던 스스로 살해범이라 자백했던 남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5-2 약촌오거리간판.jpg 출처: SBS 뉴스


2010년 3월 삼일절 특사로 교도소에서 10년 가까이 살고 출소했다. 열다섯 살에 교도소에 들어가 스물 다섯 살에 나왔다. 집으로 구상금 청구서라는 하나의 소장이 날라왔다. 구상금 청구? 이게 뭔지 몰랐다. 알고보니 근로복지공단이 10년 전 살해당한 택시 아저씨 유족에게 4천만 원을 지급했는데 “네가 죽여 우리가 돈을 썼으니 이자까지 합쳐 그 돈을 물어내라”는 청구서였다. 원금과 13년 이자를 합쳐 1억 4천만원을 물어내라고 근로복지공단은 요구했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세상이 미웠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살시도를 했다. 실패했다. 마음에 남은 건 좌절과 분노뿐이었다.


5-3 재심중.jpg 영화 <재심> 중


어느 날 박준영 변호사라는 사람이 형민씨를 찾아왔다. 재심을 추진하자고 했다. 박변호사는 2013년 4월 광주고등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접수했다. 그 다음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법원은 침묵, 침묵, 침묵했다. 2년이 지난 2015년 2월 드디어 심문 기일이 잡혔다. 법정은 썰렁했다. 방청석에는 아무도 없었고 검사는 나오지도 않았다. 판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검사도 없는데 오늘 뭘 어떻게 진행하나요?

식은땀이 났다. 옆에 앉아 있던 박변호사의 얼굴이 굳었다.

“재판장님, 여기 피고인은 15년 만에 재판을 받는 겁니다. 신문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판사 얼굴에 난감함이 묻어 있었다.

“사실 제가 아직 기록을 제대로 못 봤습니다.”

재심 청구서를 접수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담당 판사는 아직 기록을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 어렵게 신문이 시작됐다. 판사가 형민 씨한테 물었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데 왜 죽였다고 허위 자백을 했나요?"

"경찰이 때렸습니다."

"경찰이 때렸다는 걸 지금 와서 입증할 수 없잖아요. 게다가 아무리 때렸어도 사람을 죽였다는 허위 자백을 하면, 그게 엄청난 위중한 일이란 걸 몰랐어요?"

...

형민씨의 옷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판사님은 안 맞아봐서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예요. 골방에서 두들겨 맞다 보면 사람 열 명 죽였다는 허위 자백도 할 수 있는 게 인간이에요."


형사 황반장

5-3 황반장.jpg 출처: 오마이뉴스

나는 형사반장이다. 20년 넘게 범죄 현장에 있었다. 내 마지막 수사는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해사건이었다. 그 사건 수사 이후 나는 현장에서 배제됐다. 2003년이 시작이었다. 살해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잡히고 3년이 지난 시간, 익산의 저작거리에 이상한 소문들이 퍼지고 있었다. 진범이 따로 있다는 거다. 진범을 알고 있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났다. 탐문을 시작했다.

살해범의 친구라는 임씨를 만났다. 택시기사가 살해된 날, 그날 새벽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급했던 친구의 목소리, 피에 젖은 옷, 붉은 피와 흰 지방분이 묻어 있던 휘어진 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임씨와 함께 살해범 김씨를 찾아갔다. 몇 가지 증거를 들이대니 모든 걸 자백했다. 관련 내용을 윗선에 보고했다. 윗선에서는 난감한 일이긴 했다. 이미 유죄 확정을 받은 범인이 교도소에 있는데 또 다른 범인이 나타난 거다.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동영상을 촬영하고 녹음을 하며 두 친구의 진술을 받았다. 기억은 구체적이었고 진술은 물증과 일치했다. 검사에게 영장 청구를 요청했다. 검찰은 거절했다. 판사가 검토하기도 전 검사 선에서 기각을 해버린 거다.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긴급 체포되었던 두 친구는 48시간 만에 풀려났다. 보강 수사에 들어갔다. 검사는 이번에도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다시 보강 수사, 검사는 요지부동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실해범은 네 번, 친구 임씨는 다섯 번 자백했다. 그럼에도 검사는 계속 풀어 줬다.


“이봐 황 반장! 검사가 수사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잖아. 왜 이리 눈치가 없어?"


주변의 질타가 이어졌다. 수사를 포기하라는 압력이 계속됐다. 수사팀이 해체되고 수사비 지급도 끊겼다. 사비를 들여 약 1년간 이 일에 매달렸다. 그 사이에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검찰은 외면했고 나는 수사를 계속했다. 똘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왜 그랬냐구?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억울하게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어린 소년은 구제해야 했다. 경찰 동료가 희생되고, 경찰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도 내 형사로서의 양심, 어른으로서의 양심이 이 소년을 구제해야 한다고 속삭였다.

자백했던 두 친구는 경찰서를 오가는 일이 반복되자 귀찮다는 듯이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함께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거짓말이었어요. 부모님이 이혼을 하셔서 관심을 받고 싶었어요. 반장님,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어요.”

이 친구가 살인범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수사현장에서 가장 먼 곳으로 보냈다. 수십 년동안 수사 현장을 떠난 적 없었는데, 난 이 사건 후 어떤 사건도 맡지 못했다. 2014년 한 지구대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5-4 박준영변호사.jpg 출처: 노컷뉴스

정년퇴직 후 행정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박준영 변호사라는 젊은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같이 재심을 준비하자고 했다. 공소시효가 2015년 8월에 만료될 예정이니 시간이 얼마 없다고 했다. 박 변호사와 함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형민씨를 만났다.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정말 미안했다. 의도적으로 이 사건을 묵히고 뭉갠 사람들,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열다섯 아이를 10년 넘게 교도소에 가둔 사람들의 사과를 받아내고 싶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로 했다.


2015년 6월 광주고등법원이 재심을 받아들였다. 8월이면 공소시효가 만료되니 진범을 체포해야 하는 검찰로서는 항고를 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검찰은 즉시항고를 했다. 끝까지 진범은 최형민이라 주장했다. 즉시항고는 집행정지의 효력이 있어 재심의 집행이 정지된다. 공소시효가 두 달도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10여년 전, 그때도 검찰은 집요하게 진범을 풀어주더니, 끝까지 자기 오류는 인정하지 않은 채 진범을 보호하는구나. 허탈했다. 모든 게 물 건너간 일처럼 보였다.


반전의 기회가 생겼다. 2015년 7월 31일자로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일명 태완이법이 발효된 거다. 2015년 여름 본격적인 공판이 시작됐다.


검찰은 한 사립대학의 법의학 교수에게 감정을 요청했다. 감정을 요청받은 교수는 동물보호법을 어기고 단골 보신탕집에서 개를 죽이며 이상한 실험을 했다. 개의 뒷다리를 칼로 찌르는 실험. 그렇게 찌른 칼을 근거로 이런 주장을 했다.

“개를 죽이고 뒷다리를 칼로 찔러 본 결과 칼에 기름기가 묻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를 목격했다는 친구 임00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습니다.”

10여 년 전, 살해범의 친구 임씨는 내게 “칼에 검붉은 색의 피와 지방 같은 기름기가 묻어 있었다”고 자백했다. 이 자백의 신빙성을 깨기 위한 검찰의 허무맹랑한 실험이었다. 사람의 심장과 복부를 12회 찌른 칼과 근육이 밀집된 개 뒷다리를 한번 찌른 칼을 눈으로 비교한 걸 전문가의 과학적인 감정이라니 어의가 없었다. 이 감정서에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어떤 개를 죽여 실험했는지 등의 정보도 없었고, 명백히 동물보호법 위반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검찰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에 진범을 수사해야지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가 말인가?

2차 공판이 마무리될 무렵 박변호사가 공판에 나온 세 명의 검사에게 말했다.


“진실과 정의! 지금 검찰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습니까?
도대체 여기 왜 오셨습니까? 개는 왜 불법으로 죽였습니까? 상식적으로 합시다.
진범을 잡으셔야죠. 수사 안 하십니까?”

검사는 작은 목소리로 “재판 결과를 보고..” 말끝을 흐렸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경찰, 개를 찌른 칼을 가지고 나오며 진범은 여전히 최형민이라 주장하는 검찰, 그리고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데 왜 죽였다고 허위 자백을 했냐며 추궁하는 법원까지 이 모두가 한 어린 친구를 살인자로 내몬 공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문헌>

박상규 ․ 박준영 (2016). <지연된 정의>. 서울: 후마니타스.

법무부 (2019, 1, 17). <약촌오거리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 법무부 보도자료.

김태윤 감독 (2017). <재심>.

SBS (2013, 6, 15). <그것이 알고 싶다 898회: 소년범과 약촌 오거리의 진실>.

SBS (2015, 7, 18). <그것이 알고 싶다 994회: 친구의 비밀-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keyword
이전 03화#3. 자백1 : 삼례의 세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