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상당히 쿨했던 검찰의 사과문

by 오윤

“병원과 법정은 가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거야.”

누군가 툭하고 던졌던 말.

청춘에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던 몇 가지 매듭이 있었다. 그 매듭의 공간에는 병원, 법정이 있었다. 그때마다 누군가 툭 던진 말이 떠올랐다. 가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평상시에는 무관했던 어느 공간이 내 삶의 많은 걸 좌우하는 시간들이 있다. 병원도, 법정도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느 날 갑자기 부지불식간에 내 삶에 끼어든다. 이때부터 일상은 어제와 완벽히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누구나 예외없이 그렇다.

가족이 아파 병원에서 하염없이 의사의 판결만 기다리는 날도 있고, 부당한 일에 얽혀 법정의 판결을 기다리는 날도 있다. 일상에서는 거의 무관하게 지내지만 이런 시간의 국면에 들어설 때 병원과 법정의 시스템, 그리고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삶의 많은 것을 좌지우지한다. 그래서 의료 시스템과 법정 시스템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2-1 영화 방황하는 칼날 스틸컷.jpg 영화 <방황하는 칼날> 스틸컷

검찰 개혁은 법정 시스템과 관련되어 있다. 내가 억울하게 회사에서 해고당했을 때, 내 동료가 컨베이어 벨트에서 목숨을 잃었을 때, 내가 권력층의 채용청탁 때문에 면접에서 탈락했을 때, 내가 부동산 사기를 당했을 때, 그렇게 날 힘들게 한 그 놈이 반성도 안하고 적반하장 잘못한 것 없다고 잡아뗄 때, 우리는 법원과 검찰을 바라본다. 이럴 때 내 위치는 피해자다.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다. 알바비를 떼어 먹은 사장과 시비가 붙었는데, 사장이 폭행죄로 날 고소할 때, 사장이 내 엉덩이를 툭툭 쳐 성추행으로 고소를 했더니 사장이 명예쉐손으로 맞고소할 때, 친구들이랑 사회과학 서적을 함께 읽었을 뿐인데 간첩이라고 라벨링이 붙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될 때, 회사가 나를 정리해고한게 억울해 사무실에 버티고 있었더니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를 당할 때, 우리는 법원과 검찰에 출두하게 된다. 이럴 때 내 위치는 피의자다.


내가 피해자가 되었든 피의자가 되었든 법 앞에 섰을 때, 내 인권과 생명과 재산을 좀 더 잘 지켜주는 시스템으로써의 진화가 검찰개혁의 가장 큰 목표가 될 거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인권과 생명과 재산을 존중한다는 것, 파렴치한 개쌍놈의 새끼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


검찰 개혁에는 이런 바람도 담겨있다.

“제발 돈과 권력이 있다고 개쌍놈의 새끼가 무죄가 되고, 돈과 권력이 없다고 보통 사람이 개쌍놈의 새끼로 전락하는 것은 막아 달라는” 바람.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한국 현대사를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돈과 권력을 가진 나쁜 놈들과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검찰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검찰드라마를 보면 자주 보게 되는 클리쉐가 정의의 여신 디케(Dike)를 배경으로 한 씬이다. 디케(Dike)는 왼손에 천칭 저울을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천칭은 ‘약자에 강하지 않고 강자에 약하지 않은 형평성과 공정함’을 의미하고 칼은 ‘실행돼야 하는 정의와 엄격한 형벌’을 상징한다.


2-3 검찰청 로고.jpg

대한민국 검찰의 로고는 이 신화를 모티브로 한다. 상단의 곡선은 “형평성”과 “공정성”의 상징으로서 천칭저울의 받침 부분을 표현한다. 그 저울을 정가운데로 관통하는 직선은 칼을 형상화하는데, 이 칼은 “실행돼야 하는 정의”를 의미한다. 정의의 좌우에는 4개의 직선이 자리하는데 그 의미가 어마무시하다. 안쪽의 직선은 진실과 인권, 바깥의 직선은 공정과 청렴.


로고를 가만히 응시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난 2019년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되었던 윤석렬 검찰총장의 말이 생각나서다.

“"직급은 달랐지만 제 경험으로만 하면 이명박 정부 때 중앙수사부 과장, 특수부 부장으로서 수사했는데 대통령 측근과 형, 이런 분들을 구속할 때 별 관여 없이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


난 윤석렬 총장이 진심으로 그 시절을 좋은 기억으로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푸른 직선의 검찰 로고처럼 천칭 저울은 공평했고, 칼은 정의롭고 진실했다고 기억하는 거다. 적어도 자기 직급의 경험하에서는 말이다. 솔직히 무서웠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검찰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추악했던 시기다. 그 시기를 자신의 경험을 회상하며 가장 쿨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첫째, 지금 이 순간 검찰개혁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지는 검사들이 참 많겠구나. 왜냐하면 과거에도 지금도 자신의 경험 하에서는 가장 공평하고 정의롭고 진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라 진심으로 믿을 테니까(이 말을 비꼬면서 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는 시대에 꺼지지 않는 검찰청의 불빛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둘째, 똑똑한 머리, 법적 논리, 법과 원칙대로라는 말로 무장한 엘리트 검사들은 시대의 영웅이 되기도 쉽지만 반대로 괴물이 되는 것 역시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겠구나.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파탄 낼 무기를 가지고 있고, 이 무기를 불철주야 수도 없이 쓰다 보니, 내공은 커지고, 그 내공으로 보통 사람을 개쌍놈의 새끼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겠구나. 그것도 아주 쿨하게.


검사들은 자기 경험에 비추어 달리 생각할지 모르나, 한국 현대사에서 검찰이 디케의 역할을 하는 주인공으로 전면에 배치되는 시절은,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 사례가 있다면 제발 나에게 말해 달라. “검사들이 닮고 싶은 롤모델”이 누굴까 찾아보니 가장 자주 언급되는 분이 우리에게는 헤이그 특사로 알려진 이준 열사다. 20세기 초반, 구한말까지 시계를 돌리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게 롤모델이라면, 해방 후 한국 현대사에서 검찰의 역할은 자신이 가진 무기를 나쁜 놈들을 도와주는데 사용하거나, 저울과 칼의 힘을 사유화해 스스로 나쁜 놈이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2-3문무일 사과 경향신문.jpg 경향신문

2019년 6월 25일, 퇴임을 앞둔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다. 이 사과문은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 결과’ 에 따른 조치였는데 그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공정한 검찰권 행사라는 본연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였음을 깊이 반성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검찰이)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국민의 인권이 유린된 사건의 실체가 축소‧은폐되거나 가혹 행위에 따른 허위자백, 조작된 증거를 제때 걸러내지 못해 국민 기본권 보호의 책무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 정치적 사건에서 중립성을 엄격히 지켜내지 못하거나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지 못하여 사법적 판단이 끝난 후에도 논란이 지속되게 한 점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낍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큰 고통을 당하신 피해자분들과 그 가족분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검찰은 ...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제도와 절차를 개선해 나가고, 형사사법절차에서 민주적 원칙이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중앙일보, 2019, 6, 25)”


“문무일” 전 검찰총장의 진심을 믿는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2019년 한국 검찰이 동의하는 집단의 사과이자 반성인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왜 취임을 앞둔 윤석렬 검창총장이 아니라 퇴임을 앞둔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사과문을 발표하는가? “떠나는 사람이 짊어지고 가시죠”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더 이상한 것은 검찰총장의 대국민 사과문 전문을 대검찰청 홈페이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거다. 관련 내용은 검찰청 홈페이지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주어 이탈 화법, 단신 뉴스 형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6월 25일 문무일 검찰총장은 대검찰청 4층에 위치한 검찰역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검찰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수용하며 사건 피해자 등에 대한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책 마련을 약속했습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공정한 검찰권 행사라는 본연의 소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깊이 반성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끝~~~~~)“


이 단신 뉴스 소식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떻게 찾았을까?


2-4 검찰청홈페이지.JPG
(1) 검색창에 대검찰청을 친다.
(2)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세부 메뉴에서 “알림소식”을 클릭한다.
(3) 알림소식의 하위 메뉴들(공지소식, 고시/공고, 검찰발표자료 등)을 하나하나 클릭해본다.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거다.
(4)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고 알림소식 메뉴 제일 하단에 있는 “검찰소식”을 클릭해본다.
(5) 또 선택해야 하는 세부 메뉴가 있다. 3가지 메뉴 중 “생생포토”를 클릭해본다. 이즈음 되면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6) 드디어 찾았다. 몇 개의 사진이 뜨는데 “검찰과거사 진상조사...”라는 제목의 소식이 눈에 보인다. 휴`~


다시 처음으로 가본다. 검찰 개혁은 내가 피해자가 되었든, 피의자가 되었든 법 앞에 섰을 때 내 인권과 생명과 재산을 좀 더 잘 지켜주는 시스템으로의 진화가 가장 큰 목표가 될 거다. 한국 현대사에서 검찰은 자주 “돈과 권력을 가진 나쁜 놈”의 편에 서서, 무고한 사람들의 인권과 생명과 재산을 빼앗은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이게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문제도 많았지만 2017년 1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활동한 ‘검찰 과거사 위원회(법무부 산하)’와 ‘진상조사단(대검찰청 소속)’이 꾸려진 이유고, 그로부터 나온 결과이기도 하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자는 또다시 그 과거를 살 수밖에 없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공정한 검찰권 행사라는 본연의 소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깊이 반성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대검찰청 홈페이지)”


대검찰청 홈페이지 구석에 적힌 이 영혼없는 3자 화법이 너무 이상하지 않나?

검찰에 대해 잘 몰랐던 내가 반나절 정도 대검찰청 홈페이지를 오가면서 느낀 건 내부적인 힘으로 검찰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영혼 없는 검찰의 형식적 “반성”을 마주하면서, 이들에게 어떤 진심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라도 검찰 시스템의 혁신은 불가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검사는 신이 아니고, 검찰이 디케가 사는 신(神)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땅에서 사람과 조직은 이를 감싸는 바람, 냄새, 관계에 의해 선한 기운을 풍기기도 하고, 악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제도를 개혁한다는 것은 어떤 영역이든 그 제도의 영역에 있는 사람, 조직이 이 사회에 선한 기운을 행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리하여 지금 검찰에 필요한 것은 우선적으로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제도 개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도를 개혁해야 하는데?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 지점”에 있어서의 관찰이다.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그 역사에 대한 환기와 이해가 필요한 거다. 그런 맥락에서 다음 장부터는 한국 현대사에서 검찰의 흑역사(문제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해보겠다. 관점은 하나, 그 흑역사에서 검찰이 휘두른 칼에 맞은 사람이 개쌍놈의 새끼가 아니라 보통의 평범한 “나”인 경우로 한정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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