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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Sep 29. 2022

그날 내가 출근을 못한 이유

자전거 사고로 부풀어진 안전불감증

출근하던 길에 자전거와 부딪혔다. 내리막길에서 달려오는 자전거가 뒤에서 나를 덮쳤다. 사건의 배경은 이러하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이사 온 동네는 입주한 지 두 달 만에 버스가 다녔다. 버스가 생기기 전에 주로 아파트 뒷산 언덕 이용했다. 낮은 언덕 사이로 아파트와 버스정류장이 있다. 출근을 하려면 그 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차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폭에 인도가 없는 길이다. 차가 오면 보행자는 양옆으로 빠져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출근하는 자동차가 길을 막아섰고 나는 최대한 옆으로 빠져 지나치기를 기다다. 굽어진 모퉁이 길을 돌고 내려가던 순간, 뒤에서 바퀴가 모래에 쓸리는 소리가 났다. 항상 그러했듯, 나는 차가 오는지 알고 옆으로 빠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몇 발자국 걸었을까. 갑자기 아아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내 시야가 잠시 까맣게 변했다.


눈을 뜨니 코앞에 딱딱한 아스팔트 있었고 나는 바닥에 철퍽 엎어진 모습이었다.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인지하기도 전에, 깨질 듯한 두통이 나를 괴롭게 했다. 그럴만했다. 아스팔트에 머리부터 부딪혔으니...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아 주변을 살폈다. 멀지 않은 곳에 자전거 한 대가 눕혀 있었다. 자전거 바퀴가 방금 내달렸던 여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정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자전거 옆에는 어떤 여자가 바짓단을 툴툴 털어내고 있었다. 나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이 상황을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 내가 저 자전거와 부딪혔구나. 저 사람이 뒤에서 나를 자전거로 밀쳐서 내가 넘어진 거구나.


아픈 머리를 감싸며 이게 무슨 일이냐, 사람이 앞에 있는데 치면 어떡하냐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 자전거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알아서 피하실 줄 알았죠. 순간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피할 줄 알았다니, 내가 뒤통수에 눈이 달려있지 않은 이상 뒤에서 달려오는 자전거를 어떻게 피한단 말인가. 최소한의 비키라는 외침도 벨소리도 없었다. 사고가 일어나고 처음 들은 말은 사과가 아니라 질책이었다.


화를 내고 싶어도 몰려오는 통증에 괴로웠다. 넘어질 때 반사적으로 짚었던 손바닥은 돌부리에 찢어졌고, 발목은 접질려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올라왔다. 내리막길에서 거꾸로 넘어진 탓인지 종아리가 쓸렸다. 충격의 여운으로 손이 사정없이 덜덜 떨렸다. 한마디로 참혹한 상태였다. 나는 얼굴이 아스팔트에 쓸리거나 뇌진탕이 오지 않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그러한 몸 상태로는 출근을 할 수 없었다. 아침부터 진료하는 정형외과를 검색했고,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이 소식을 상사에게 전할 때, 나도 모르게 울컥 울음이 올라와 목소리가 떨려왔다.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나에게 벌어진 사고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겨웠다. 그토록 안전에 대해 민감하게 지냈던 내게 이러한 대형사고가 일어날 줄이야. 상상만 해도 아찔한 사고는 죽음을 떠오르게 했다. 만약 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건 타인에 의해서겠구나 하는 생각에 부르르 몸이 떨렸다.




평소 안전에 민감한 편이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는 물론, 좁은 골목길을 건널 때도 일단 멈춘다. 자리에 서서 빠르게 좌우 혹은 뒤까지 살피고 차가 없을 때 움직인다. 시야에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있으면 멈춰 서고 먼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매사 미어캣 마냥 고개를 돌리며 위험한 상황을 경계했다. 그래서인지 여태 큰 사건사고 없이 잘 지냈다. 그날을 제외하고.


자전거 사고가 난 이후로 안전불감증은 더 심해졌다. 자전거가 옆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뒤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나면 몸을 잔뜩 움츠렸다. 길을 내달리는 바퀴만 봐도 아찔함이 몰려왔다. 사정없이 돌아가는 바퀴 아래에 깔리는 상상이 들었고, 언젠가 저 바퀴가 다시 나를 덮칠 것만 같았다. 한동안 일상의 모든 것들이 전부 위험해 보였다.


특히 위험한 장면을 보게 되면 불안함이 밀려들었다. 전동 킥보드를 타고 사거리를 가로진 사람 옆으로 아슬하게 지나치는 오토바이.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쌩쌩 다니는 오토바이. 사람들이 붐비는 인도 위를 달리는 자전거. 서로 먼저 가겠다며 냅다 움직이는 자동차들. 그때마다 심장은 덜컹덜컹거리며 아래로 추락했다. 그 아찔한 장면들을 볼 때마다 조용히 읊조렸다. 부디 누구도 다치지 않기를, 사고가 나지 않기를, 모두가 안전한 하루가 되기를 바랐다.


위험천만한 일들이 도처에 널려있지만 무사히 출근을 하고 싶다. 아직도 나는 두렵지만 안전한 출근길을 걷고 싶다. 아무 탈 없이 회사에 도착하는 날이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그저 평범한 출근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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