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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Sep 21. 2022

맥모닝이 알려준 부지런함의 표상

아침 8시 맥도날드에서 마주친 직장인들

여느 때와 같던 출근길, 불현듯 맥모닝이 떠올랐다. 대학 생활 때 한 선배는 아침마다 맥모닝을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매일같이 바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맥모닝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침에 맥모닝을 먹어볼 기회가 없었다. 아침식사를 할 시간에 한숨 더 자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무언가를 먹는다는  크나큰 과제였고, 내가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누군가 아침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고 하면 그가 가진 부지런함에 놀라워했다.


특히나 출근길에 맥모닝과 커피를 먹을 정도로 여유를 부릴 줄 아는 직장인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한 끼를 챙겨 먹는 여유로움을 선망했다. 바쁜 출근길에도 여유를 잃지 않는 부지런함이 부러웠다. 맥모닝은 나에게 성실의 상징이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이른 출근길로 인해, 나도 맥모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주문한 맥모닝과 커피세트를 받고 테이블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통창 너머로 어스름한 아침 햇살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두리번거리다가 가장 끝에 위치한 창가에 자리 잡았다. 허기진 배를 먼저 달래고자 맥모닝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부드러운 번과 짭조름한 베이컨, 담백한 계란이 입안에서 어울렸다. 그 속에 커피 한 모금을 밀어 넣으니 간이 알맞았다. 배를 채우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매장 안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있다.


새벽 내내 마신 술을 해장하고자 햄버거를 밀어 넣는 사람, 피곤한 듯 눈을 감고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사람, 축 처진 어깨로 핸드폰만 뚫어져라 보는 사람, 그리고 흐릿한 눈동자로 허공을 더듬는 사람. 어렴풋이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달라 내심 놀랐다. 모닝을 먹는 직장인이라면 단정한 셔츠 차림을 하고 서류가방을 옆에 둬야 하며, 한 손에 맥모닝을 남은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있야 했다. 입가에 머금은 여유로운 미소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모습은 없었다. 남몰래 그리던 맥도날드의 아침 풍경은 허상이었다.


특히나 '여유'는 더욱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가로이 앉아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활기 따위는 허용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의자와 한 몸이 되어 널브러진 사람도 있었다. 한가해서가 아닌 지친 심신을 쉬게 하기 위함인 듯했다. 매장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낼 힘마저 없는 듯한 몸짓이었다. 시끄럽게 틀어놓은 매장 음악만이 활기차게 허공을 맴돌았다.




누구나 이러한 로망은 하나쯤 품고 살지 않는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하는 모습, 카페나 전철 안에서 노트북을 펼치며 일하는 모습, 멋진 양복 차림으로 출근하는 모습처럼. 기나긴 취업 준비 기간을 거치면서 생기는 직장인에 대한 이상 말이다. 나에게 직장인은 치열한 아침에도 여유 한 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나조차 그럴 수 없었기에 더욱 그러한 사람을 동경했다. 역시나 이상과 현실의 거리는 멀기만 했다.


그때서야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았다. '맥모닝을 먹는 사람=부지런한 사람=출근길에 여유를 가진 직장인'으로 정의된 해석에 오류를 발견했다. 어디선가 보았던 '출근길에 맥모닝을 먹는 여유를 가진 직장인'은 매체가 만들어낸 이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패스트푸드인 맥모닝은 애초에 여유로움을 대표할 수 없다. 빠른 조리로 짧은 시간 내에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패스트푸드가 아니던가. 그러니 맥모닝을 먹는다는 건 식사를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아침 8시에 맥도날드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부지런한 직장인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출근이든 학업이든 각자의 사정을 지니고 이른 새벽에 눈을 떴을 사람들. 그들은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는 햄버거를 먹으며, 아침을 시작할 동력을 만들어낸다. 눈가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자리 잡았지만, 연신 눈을 비비며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동그랗게 말린 어깨에 고단함을 둘러메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나 자신을, 가족을, 더 멀리 우리들의 세상을 움직이는 곳으로. 그러니 그들에게 여유를 가지라고 요구하지 못한다. 이미 최선을 다해 현실에 맞서는 그들에게, 여유까지 바랄 수는 없다. 맥모닝을 먹는 짧은 순간만큼은 온전히 휴식을 갖고 부지런한 자신을 다독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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