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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Oct 01. 2022

앞서가는 이의 뒤꿈치를 밟으며

유일하게 발걸음을 맞추는 일

모두가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는 어수선한 출근길.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다가 앞서가는 이의 발에 정강이를 차였다. 앞사람은 굽이 높은 부츠를 신고 있었다. 은 생각보다 바위처럼 단단해서 꽤 아팠다. 읍, 하며 소리 없이 고통의 신음을 흘렸다. 본인도 놀랐는지 슬쩍 뒤를 돌아보고 고개를 살짝 숙여 사과의 인사를 전했다. 미안함을 전하는 이에게 개의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최대한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에게 이런 일은 자주 발생했고 나 역시 잘못한 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는 성격이 급해 다른 이들보다 걸음이 빠르다. 다리 길이가 길고 짧은 것은 상관없다. 폭을 넓게 성큼 걸으면 웬만한 속도를 지닐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을 오를 때도 이런 성격이 드러난다. 한 칸의 여유도 주지 않고 바짝 따라붙는다. 그러니 앞서가는 이에게 차일 수밖에. 어느 날은 내가 누군가의 발을 밟거나, 어느 날은 누군가의 발에 차인다.


정강이에 멍이 사라질 즈음, 나는 앞서가는 이의 발걸음을 얼추 맞추게 되었다. 느리면 한 박자 속도를 낮추고, 빠르면 한 박자 속도를 높인다. 발에 차인 통증은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그동안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철이 오는 시간은 매사 동일하다. 내가 빠르게 간다고 빨리 오는 것이 아닌데 왜 조급함을 견디지 못할까. 어딘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에 한 줌의 여유도 가지지 못했다. 뒤엉키는 수많은 발 사이에서 여유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 많은 사람들보다 빠르게 걷고 그들 제친다고 해도. 과연 앞서가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닌 것 같다. 빠른 걸음은 오히려 나를 더욱 초조함과 불안으로 내몰았다.


앞사람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느리게 걸으면 답답했다. 환승 개찰구에서 카드를 미리 준비하지 않았거나 잘못 찍어 우왕좌왕하면 미간 사이에 주름이 졌다. 전철이 도착했는데도 에스컬레이터 계단에서 앞을 가로막으면 마구 화가 치솟았다. 출근길에서 나를 불쾌하게 하는 상황이 자주 생겼다. 그때마다 더욱 걸음 속도를 높이거나 타인보다 앞서기를 원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사람들의 뒤꿈치를 밟는 일도 잦았다.


조급함 때문에 앞서가는 이의 뒤꿈치를 무심코 밟았다. 앞사람의 오른쪽 신발이 훌렁하고 벗겨졌다. 비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처 신발을 고쳐 신지 못하고 그는 헐떡이는 채로 걸어갔다.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랐다. 차마 앞지르지 못하고 뒤에서 걸으며 그가 신발을 제대로 신기를 바랐다. 그 뒤로 나에게 큰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다급하게 걸어서 무엇한가. 그 속도만큼 나는 더욱 엉망으로 변했고 안 좋은 감정으로만 가득한데. 무엇보다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를 일깨웠다.


그리하여 앞서가는 이들, 옆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맞추기로 했다.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갈 때 터벅터벅 내걷는 상대의 박자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빨라지지 않도록 속으로 박자를 읊조리기도 한다. 헛둘헛둘.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동질감이 든다.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나와 비슷한 박자로 한 걸음씩 내디뎠다. 지친 몸을 이끌고 생의 현장으로 향해가는 동지들이 생겼다. 앞서가야 하는 경쟁자들이 아닌, 함께 발을 맞춰 걸어야 하는 이들이었다.


우리네가 유일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건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이지 않을까. 재촉하지 않고 서로의 걸음을 맞춰간다. 목적지는 다를 테지만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향한다. 고단한 출근길 끝에는 일구어야 하는 삶이 있으므로. 가끔은 발이 부딪히거나 가방이 스치면서 서로의 존재에 안부를 전한다. 보이지 않은 동지애를 느끼며 그들 속으로 휩쓸려 간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발을 맞추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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