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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Dec 19. 2022

3시간 동안 출퇴근하다 보면

따분했다. 이유 없이 모든 것이 갑작스레 따분해졌다. 핸드폰을 뒤적이는 일마저 지루했다. 매일 발자국을 남기는 즐겨 찾는 사이트도, 하릴없이 부유하는 유튜브도. 변함없이 굴러가는 일상도 두 지긋했다. 핸드폰 화면을 끄고 숙인 고개를 곧게 폈다. 그러자 검은 창가로 전철 내부가 비쳤다. 뚜렷하지 않았지만 빼곡히 들어선 사람들과 나의 모습이 보였다. 창가에 비친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핸드폰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그들을 슬쩍 훑어보다가 궁금증이 일었다.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들의 목적지가 궁금해졌다. 그들이 생을 위해 반복하는 여정이 알고 싶었다. 실은 나와 다른 이의 삶은 그다지 다르지 않을 테다. 특별하기를 원하지만 실상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들이 아닌가. 가만히 서서 창밖을 응시하니 요즘 나를 고민에 빠트린 화제가 떠올랐다.


이른 아침 몸을 실은 전철은 해가 지면 역방향으로 다시 나를 실어간다. 내가 거쳐가는 정거장은 하루에 두 번씩 되감기 된다. 그렇게 왕복 3시간을 전철 안에서 보낸다. 하루 24시간을 볼 때 적지도 많지도 않은 시간이다. 충분히 출퇴근 시간으로 활용할 수도, 아니면 아깝다고 생각될 수 있다. 입사하고 세 달쯤은 먼 거리지만 그럭저럭 다닐만했다. 지하철 안에서 세 시간을 보내도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다랬다.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크나 큰 오판이었다.


직장생활이 익숙해지는 것과 다르게 날이 갈수록 출퇴근길은 점점 힘겨워졌다. 항상 1호선은 만석이었고 서 있어야 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 시간이 겹겹이 쌓이자 몸은 더욱 무거워지고 한계라며 아우성을 쳤다. 무엇보다 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건 세 시간을 꼼짝없이 지하철 안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걸음을 옮겨봐도 똑같이 생긴 지하철 칸을 마주할 뿐이었고, 무언가를 하기에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제자리에 서서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아는 후배는 직장이 왕복 2시간이라 힘겹다며 회사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 덕분에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어서 평소 퇴근길에 쓰던 시간에 저녁을 이르게 먹게 되었다. 그래도 시간이 넉넉하게 남자 취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친구는 왕복 1시간이 넘으면 입사 지원을 애초에 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4시간이 걸리는 출퇴근 시간도 기꺼이 감수하며 직장생활을 했다. 누군가는 출퇴근길에 시간을 오래 할애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먼 길을 감수하더라도 직장 생활을 지속하고 싶어 한다. 이에 관해 부쩍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이었다. 적정한 출퇴근 시간이란 무엇일지, 어떻게 해야 시간을 아깝지 않고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허투루 시간을 사용하지 않는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자기 계발을 할 시간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는 일상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하는 물음이 생겼다.


후배처럼 집을 옮길 수도 없는 상황이거니와, 이직을 할 만한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동안 해왔던 직종과 무관한 일을 이제 막 시작한 시기였다. 겨우 새로운 직종에 들어섰기에 이직할 만한 경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그러하니 나를 둘러싼 상황을 쉽게 바꿀 수가 없었다.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주어진 환경 내에서 최대한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따분함과 걱정을 해결할 방안으로 출퇴근 시간을 자기 계발 시간으로 바꾸었다. 3시간이 아까운 건 자기 계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기 계발을 할 시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의미 없이 세 시간을 보낼 바에 글을 한 글자 더 보고 쓰자고 다짐했다.


이후로 가방 속에는 책 한 권이 들어섰다.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두 손은 책을 꼭 쥐었고 눈은 바쁘게 글자와 글자 사이를 돌아다녔다. 읽은 페이지들이 시간에 따라 훅훅 넘어갔다. 전철에 내릴 때면 표시해둔 북마크는 끝을 향해 있었다. 집과 직장을 오고 가는 시간 동안 읽으니 이틀에 한 권씩 완독 했다. 틈틈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떠오르는 글을 한 문장씩 써냈다. 이러한 시간을 반복하다 보니 더는 세 시간의 출퇴근길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읽은 책이 쌓일수록 하루하루 알차게 잘 살았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보람찬 하루가 쌓이는 기분이었다. 물론 집중이 안 될 때는 핸드폰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더는 길바닥에 시간을 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세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오고 가는 발걸음으로 부산스러운 전철 안에서도 나름의 재미를 느끼고 있다. 작은 재미와 보람이 쌓이다 보면 이 시간들도 나의 것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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