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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Oct 11. 2022

출근길 1호선에서 울리는 고함

밀고 밀리는 사람들

최악의 출근 전철은 단연 1호선이 아닐까 싶다. 1호선을 타고 출근했던 일 년의 시간은 끔찍하게 기억에 남는다. 1호선 전철 안에서 편하게 출근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빈틈없이 가득 찬 인파는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게 했다. 그마저도 어느 순간 익숙해져서 나름 견딜만했다. 그렇지만 나를 더욱 고되게 한 건 신경질적인 고함소리였다. 1호선 전철 안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보는 그 장면은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사람들 틈에 끼여 있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밀려 전철 안으로 들어왔고, 누군가와 등을 맞대며 옴짝 달짝 못했다. 월요일에 사람들이 더 많게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유독 밀어닥치는 사람들 때문에 답답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내리는 사람보다 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전철이 들썩하고 요동칠 정도로 사람들로 꽉 채워졌다.


그 상태로 몇 정류장 지났을까.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가 묵직한 공기를 뚫고 퍼졌다. 밀지 말라고요! 그러자 낮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밀었다고요! 그 말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거친 고성이 오고 갔다. 그들은 도돌이표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밀었잖아요. 안 밀었다고요.

밀었다니까요. 안 밀었다요.


가시 돋은 말을 쏟아내며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했다. 점점 커져가는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숨소리만 가득했던 전철 안은 두 사람이 만든 소음으로 채워졌다. 그들을 말리는 사람도 편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에게 시선조차 두지 않았다. 그저 이 소음이 어서 끝나기를 기다리는 듯 미동이 없었다. 해결하고자 나서는 이가 없으니 말다툼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피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어 억지로 그들의 말을 그대로 들어야 했다. 서로를 헐뜯는 격한 말을 듣고 있자니 울렁하며 멀미가 나는 듯했다. 차마 아침부터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더는 그들이 쏟아내는 언어를 듣고 싶지 않았다. 두 귀를 막기 위해 이어폰을 꺼냈고 귓속 가장 깊숙이 집어넣었다. 음량을 아무리 높여도 틈으로 세어 들어오는 고함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과연 이 상황에서 누군가의 잘못을 논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누구도 인정하지 못한 잘못은 어디로 향해야 하나. 그들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 탓인가, 유동인구가 많은 1호선 전철 탓인가, 아니면 월요일 탓인가. 한 바탕 일어난 소동은 한 사람이 하차하고 나서야 끝난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정어리떼처럼 우르르 쏟아지고 우르르 밀려들어왔다. 둘 중 한 사람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밀려나 밖으로 떠내려 갔다. 문이 닫히자 전철 안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휴우, 한숨이 깊게 새어 나왔다. 여전히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귓속에서 웅웅거리며 맴돈다. 맞서 싸웠던 당사자가 된 듯 심장도 벌렁거린다. 안 그래도 피로에 묵직했던 몸이 더욱 축 쳐지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의 언쟁은 듣는 것만으로도 지치게 만든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장면이다.


그저 부드러운 한마디면 해결되었을 텐데...

굳이 아침부터 모두가 얼굴을 붉힐 일을 만드는 두 사람이 미웠고 원망스러웠다. 고함을 지른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지, 내가 모르는 내막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을 옹호하고 싶지 않다. 누구의 잘못이든 어떤 다툼이든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출근하는 전철 안에서 더욱 그러지 말아야 했다.


그들이 다툰 건 월요일 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월요일을 탓해보자. 그러면 나를 밀치는 사람도 밀어내는 사람도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줄 수 있지 않을까. 만원 전철 안에서 밀리는 일이야 흔하지 않은가. 어차피 밀리면서 전철을 빠져나갈 텐데 그쯤이야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면 어떨까. 더는 1호선 전철 안에서 고함을 듣고 싶지 않다. 쾌적한 출근길이 되지 못할지라도 조용한 출근길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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