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그러했듯이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외투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익숙한 교통카드 촉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주머니 속은 텅 비었다. 재빠르게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적였지만 보이지 않았다. 양쪽 주머니에도 없다면 남은 곳은 핸드백이었다. 가방 입구를 활짝 열어서 내부를 찬찬히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 잠에 덜 깨 반쯤 감긴 눈이 번뜩이며 떠졌고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낭패였다. 개찰구를 눈앞에 두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교통카드의 행방을 골똘히 생각해 보니 어젯밤의 일이 떠올랐다. 핸드백을 바꾸면서 안쪽 주머니에 넣어둔 카드를 옮기지 못한 것이었다. 하필이면 가방을 바꿔가지고 이런 사달이 일어나다니. 부주의했던 어제의 나를 책망했다.
지하철이 들어오기까지 단 3분만이 남았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1분씩 빠르게 줄어들었다. 초조한 마음에 허둥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눈앞에 있는 개찰구를 넘기 위한 방법을 떠올려봤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새로운 교통카드를 구하는 것이었다. 옆에는 일회용 교통카드를 발급할 수 있는 기계와 편의점이 있었다. 또 다른 교통카드를 가질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었다. 간단한 문제였음에는 새것을 구매할 수가 없었다. 지갑도 두고 나온 까닭이었다. 그러니까 여분의 카드도, 현금도 없는 빈털터리라는 말이다. 체크카드에 교통카드 기능을 두고 딸랑 한 장만 챙기는 습관이 있어 지갑을 잘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 만약에 카드 한 장을 잃어버리거나 두고 나오면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 방 안에 있는 카드를 챙겨 나오는 방법만이 최선이었다.
평소에 교통카드를 찍고 지하철을 타는 일련의 과정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개찰구를 지나칠 수 없는 상황이 다가오니 새삼 그 너머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연스레 개찰구를 통과하는 사람들을 보니 조급함이 밀려왔다. 절망스러운 사이에 지하철이 역으로 진입했다는 안내 방송이 울렸다. 그 뒤로 지하철이 힘차게 들어오는 소리가 귓속으로 크게 들어왔다. 번뜩 정신을 차리고 빠른 걸음으로 역에서 나왔다. 서두르지 않으면 다음 운행 열차도 놓치게 된다. 그러면 무조건 지각이다. 불과 몇 분 전에는 여유롭게 걸어왔던 길이었는데 되돌아가는 길은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마주 보며 전력질주로 내달렸다. 다급히 다리를 움직이며 핸드백 위치를 되짚었다. 화장대 위에 올려 있는 핸드백 모습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단잠에 빠져있는 가족들의 사정은 생각하지 못한 채 온갖 소음을 냈다. 삑삐삑삐 도어록 비밀번호를 다급히 누르는 소리, 현관문이 확 하고 열리고 쿵 닫히는 소리, 다다닥 신발장에서 방까지 달려가는 소리, 헉헉거리는 숨소리. 갑작스레 들려오는 온갖 큰소리에 놀란 엄마가 자다 깨서 내게 물었다. 뭐 두고 나왔어? 그 질문에 나는 카드 두고 왔어! 하며 외쳤다. 캐릭터가 그려진 하늘색 카드를 꺼내어 손에 꽉 움켜쥐었다.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집을 나섰다.
불과 몇 분 전에 절망에 빠져 있었던 개찰구 앞에 다가갔다. 카드를 대자 띡- 하며 울리고 초록불이 들어왔다. 개찰구를 지나치자 온 긴장이 풀렸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은 채 전력질주로 인해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전철이 도착하기 2분 전. 가까스로 다음 열차를 놓치지 않게 되었다. 조용한 숨을 내뱉는 사람들 사이에서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최악의 출근길 중 하루였던 그날 이후로 집을 나서기 전에 교통카드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카드를 쥐고 있거나, 가방 안쪽 주머니에 들어있는지 살펴본다. 아찔했던 시간이었지만 풀어있던 긴장을 한껏 당겨줬던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