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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Feb 04. 2023

지하철 안에서 읽는 사람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주로 책을 읽는다. 달아나는 아침잠을 붙잡기보다 잠을 깨우기 위함이다.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있는 부동자세로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 슬금슬금 잠이 다가온다. 애써 그들을 물리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인다. 손가락을 하나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잠을 내쫓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핸드폰 화면을 엄지손가락으로 누르거나 손에 책을 쥐고 조용히 책장을 넘긴다.


다른 시간대와 다르게 아침 출근시간에는 유독 책을 읽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나처럼 잠을 깨우기 위함인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함인지. 정확한 사유는 모르겠으나 그들을 마주칠 때면 무척이나 반갑다. 간혹 내가 읽었던 책을 들고 있으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게 내적 친밀도가 쌓여다. 그 책이 어떤 내용이었고 어떤 책이었는지 다시금 떠올려다. 소소한 발견이 즐거워 독서하는 이들이 있으면 저절로 시선이 향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여러 독서 자세를 발견했다. 들고 있는 책의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저마다 가진 취향과 성향에 맞춰 개개인의 독서 자세가 사뭇 달랐다. 이북리더기로 읽는 사람, 책을 반으로 접고 한 손으로 들어 읽는 사람, 펼친 책의 가운데 지점을 한 손으로 들어 읽는 사람. 책을 눈높이로 올려 읽는 사람. 고개를 푹 숙여 읽는 사람. 책을 집어드는 여러 자세에서 각자의 성격이 드러나는 듯하다. 독서를 대하는 태도는 그 방법에도 남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덜컹거리고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도 연필을 꺼내어 밑줄을 긋는 사람을 보았다. 감명 깊은 문장에만 줄을 긋듯이 틈을 주어 연필을 움직였다. 옆에 서 있어서 쓱쓱 밑줄을 긋는 소리가 들려왔다. 책장 넘기는 것도 다소 버거운 지하철 안에서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오래 기억에 머물렀다. 저런 마음가짐이라면 어떤 환경이라도 그에게는 방해물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사람이 많으면 책을 펼치기 힘들다는 핑계로 책을 덮었던 나의 과거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떤 이는 책갈피를 종이 사이에 끼우는 나와 달리 모퉁이를 접었다. 책장을 접거나 밑줄을 긋는 등 새것의 상태를 벗어나는 행동을 멀리하는 나로서 눈에 띄는 행동이었다. 아래 모퉁이를 접어가는 손길을 보며 책이 구겨지고 자국이 남을 텐데라고 걱정을 했다. 우려와 다르게 그는 서슴없이 책장을 접어냈다. 독서하는 데에 책 말고는 어떠한 도구도 필요하지 않은 담백한 마음이 엿보였다.


책과 한 몸이 된 사람도 보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책을 안정되게 들고 고개를 숙여 글자에 눈을 고정한 채 걸어 다녔다. 6호선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는 기다란 여정에서도 그녀의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계단을 오르면서도 반대편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인파 속에서도 발을 헛디디지 않고 자연스레 피해 다녔다. 자칫하다가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부질없어 보였다. 그녀는 묘기 아닌 묘기를 보이며 눈에서 책을 떼지 않았다. 걷는 순간에도 독서하기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그녀의 책은 자주 바뀐 듯했다.


다른 이가 볼 때는 불편해 보일지라도 그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독서를 했다.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자세를 찾고자 했던 시간들이 쌓여 지금이 되었겠지. 하루하루 읽어낸 글을 그저 스쳐가도록 두지 않고 삶에 담아내고자 했던 그들의 마음이 엿보였다. 어쩌면 누군가의 생이 담긴 글을 읽는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허투루 하루를 흘러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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