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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Oct 20. 2022

오전 7시 25분에 바라본 뒷모습

이웃주민들과 나누는 출근 골목길

전철을 타기 위해 7시 25분쯤에 집을 나선다. 20분 간격으로 한 대씩 다니는 전철 때문에 매일같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한다. 집에서 전철역까지 걸어가면 약 6분 정도 걸린다. 애매한 시간이라 번번이 다급하게 걷거나 뛰어가는 일이 잦았다. 여러 시도 끝에 찾은 가장 여유로운 시간은 7시 25분. 뛰거나 걸음을 재촉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철역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나와 몇 걸음 거닐면 뒤에서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들려온다. 그분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한 여성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걸음을 재촉하며 점점 멀어지는 그녀는 유독 시선이 가는 사람이었다. 외출할 때마다 진회색 패을 입고 똑같은 검정 가방을 메는 나와 달리. 두툼한 재킷, 롱코트, 숏 패딩, 흰색 패, 분홍색 패딩 등 외투가 매일 바뀐다. 운동화보다는 굽이 있는 구두를 주로 신는데 단화, 부츠, 앵클부츠 등 종류가 다양하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옷차림에 시선이 저절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 시선에는 부러움이 한 아름 담겨있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게 옷차림을 하는 그녀가 부러웠다. 여태 이런저런 옷을 입어봤지만 아직도 옷을 골라 입는 게 어려운 나에게. 그녀의 옷차림은 개성 있고 멋스러웠다.


전철역으로 향하는 골목길에 들어서자 왼쪽에는 빌라가 오른쪽에는 낮은 건물이 줄지어 있다. 갈색 벽돌 건물들은 대부분 1층은 상가이고 그 위층은 주거지다. 골목길을 몇 분 걸었을까. 핸드폰에서 진동과 함께 730분 알람이 울린다. 알람을 끄는 순간 어김없이 건물 사이 좁은 에서 두 사람이 튀어나온다. 매일 정확히 30분에 나오는 두 사람이 신기했다. 내가 예약해둔 알람이 마치 그들의 등장곡인 듯했다. 그들은 내 앞에서 툭하고 튀어나오더니 빠르게 사라져 갔다.


그들은 하단 밑까지 채 롱 패딩 때문인지 다리를 시원스레 뻗지 못다. 패딩에 갇힌 두 다리가 안간힘을 쓰며 빠르게 걷기 위해 움직인다. 분명 열심히 달리는 듯하지만 총총거리는 걸음걸이다. 몸이 흔들리자 등에 메고 있던 가방도 들썩였다. 왼쪽 가방끈이 어깨에서 빠져나와 스르륵 미끄러진다. 흘러내린 한쪽 가방끈 미처 올리지 못한 채 뛰어간다. 끈이 더 내려오지 않도록 팔꿈치를 높이 들어 올린다. 그 자세로 속도를 늧추지 않고 골목 끝으로 달려간다. 얼마나 다급한지 뒷모습만 봐도 느껴졌다.


두 사람은 바쁜 와중에도 합을 맞추듯이 서로 앞서지 않고 나란히 뜀박질을 한다. 언뜻 본 생김새가 비슷한 걸 보니 형제인 것 같았다. 사이좋은 형제는 서로 늦지 않도록 박자를 맞추고 이끌어주고 있었다. 머리가 하나 더 큰 사람은 파란색 패딩을, 그보다 작은 사람은 초록색 패딩을 입었다. 나처럼 매일 같은 외투를 입으니 그들을 알아보게 되었다. 새해가 지나자 두 사람의 외투가 달라졌다. 모자에 털이 달린 두툼한 갈색 패딩을 나란히 입었다. 구매한 지 얼마 안 되어 패딩 뒷부분이 반질거다. 새해가 돼서 새 옷을 장만한 듯했다. 변하지 않은 건 가방끈이었다. 여전히 팔에 걸친 채 빠질 듯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출근시간이 일관되기 때문일까. 어느 순간 그들의 뒷모습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골목에서 유일하게 마주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혼자 외로이 거닐던 골목을 함께 공유한다고 생각하니 전철역으로 향하는 길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각자 다른 타이밍에 골목길로 등장하지만 우리가 향하는 목적지는 같았다. 지하철에 들어서면 알아보지 못하는 이웃주민이지만, 그 골목에서는 출근길 동지가 되었다.


내가 바라보는 건 뒷모습뿐인데도 썩 나쁘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더라도 가까이 사는 이웃주민을 알 수 있는 시간이기에. 자신을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의좋은 형제가 있다는 것을 그 길목에서 알게 되었다. 그러니 그들에 대해서 이 정도는 기억해도 되지 않을까.


구태여 꾸미지 않아도 되고 가장 연약한 부분을 내보이는 뒷모습. 부담스럽게 시선을 맞추지 않아도, 불필요한 말을 걸지 않아도, 어떤 표정을 짓는지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는 뒷모습. 비록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인사를 건네진 않았지만, 스쳐 가는 익숙한 뒷모습에서 모든 것을 보여 주지 않았을까. 앞서가는 이의 뒷모습을 방향 삼아 걷는 아침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이사하면서 더는 그들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골목을 뛰어가며 출근을 서두르고 있을까. 아니면 조금 일찍 나와 천천히 거닐까. 간혹 가쁜 숨을 몰며 다급히 뛰는 이들을 보며 5분만 더 일찍 나오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렇지만 여태 그러하듯 골목을 가로지를 것만 같다. 골목길에서 사라진 나의 빈자리를 알아챌까. 나의 뒷모습은 어떻게 기억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이내 서서히 잊 테지만 사라진 내 뒷모습을 누군가 기억해 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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