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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Oct 04. 2022

아침 골목을 깨우는 소리

소리 없는 건물에 들어찬 소음

퉁퉁. 전철역으로 향하는 골목 입구에 들어서자 저 멀리 들려오는 소리. 투우웅. 쇠망치를 두드리는 진동이 아침 바람을 가로질러 나에게 다가왔다. 이른 새벽부터 모여든 인부들이 건물을 짓는 소리다. 고요했던 골목길은 아침부터 온갖 소음으로 소란스러웠다. 떤 날은 커다란 포클레인이 육중한 몸을 움직였고, 어떤 날은 사람들이 얽힌 쇳더미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어떤 날은 가로막힌 길 때문에 인부와 주민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소란이 일어건물은 새로 지어진 곳이 아니다. 기존에 있던 건물의 틀은 유지한 채 공사가 진행되었다. 외벽이 모조리 뜯기고 창문이 있던 자리는 뻥 뚫렸다. 그럼에도 낯설지 않았다. 본래 그 건물은 그러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창문에서 빛이 새어 나온 적이 없었다. 5층마다 놓인 반듯한 창문은 암막커튼을 친 것처럼 한 줌의 빛도 나오지 않았다. 외벽 회색인지 흰색인지 모를 색으로 덮였다. 그러니 공사하는 지금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곳은 강남도 아건만 강남 이름을 달고 있던 병원 자리였다. 아는 이는 강남병원 장례식장을 가려다가 서울의 강남을 갈뻔한 일도 있었다. 사실상 그 병원은 장례식장으로 사용되는 일이 잦았다. 진료기 위함보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곳을 지나칠 때면 캄캄한 밤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한데 모여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지하계단에서 나오는 빛이 유일하게 어둠을 밝혔다. 지하 입구 전광판에는 고인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었다. 줄줄이 적힌 이름을 보며 얼굴 모를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했다.


아침마저 어둠을 지니고 있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던, 오래도록 이웃주민들이 생을 마무리했던, 누군가의 슬픔과 애환이 가득했던 장례식장은 사라져 갔다. 어둠을 닮은 그림자만 어슬렁거리던 그 건물은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변함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건물이었기에 새로 변할 모습이 궁금했다. 건물벽은 어떤 색으로 바뀔지, 창문에서 밝은 빛이 나오게 될지, 사람들은 삶을 이어가기 위해 모여들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궁금해 매일 아침 지나면서 이리저리 살펴봤다.


겨울이 되자 소란했던 골목이 고요해졌다. 인부들이 공사 현장에서 모습을 감췄고 건물은 초록색 그물에 뒤집어 추위를 견뎠다. 가끔 쇠망치 소리가 들릴 때면 반가움이 들었다. 실은 나는 그 경쾌한 마찰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아침을 깨우는 소음일 테지만. 이른 아침 출근하는 나에게는 하루를 시작하는 소리였다. 나는 터벅 내는 발소리로, 인부들은 캉캉 내리치는 소리로. 서로에게 아침 인사를 전했다.


느 여름날, 그곳에 한방병원이 들어섰다. 명을 빌었던 화환은 개업 축하 화환으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아픔을 잊기 위해 모여들었다. 간판이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외벽에 칠한 색이 이전과 비슷했다. 깨끗하게 칠해졌다는 점만 제외하면 바뀐 것을 잘 모를 정도였다. 오히려 나는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의 모습을 다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갖가지 색으로 칠해졌다면 내심 서운했을 것이다.


어린 시 골목길을 마구 쏘다니면 마주치던 회색 병원. 다란 몸을 숨겨 없는 듯이 조용히 머물렀던 그 건물. 그럼에도 동네를 떠오르면 당연스레 그려졌던 그 건물. 사거리 모퉁이에 무심하게 서 있던 시간이 십 년은 훌쩍 넘는다. 세월이 흐르면 새롭게 단장한 모습은 다시 이전 병원처럼 변할 것이다. 그러다가 또다시 새로이 단장을 하겠지. 아니면 무너져 내리거나. 여태 그러했듯 시간이 흘러도 같은 자리에서 더 오래도록 남아있기를 바라본다. 수많은 세월 속에 머물러 나의 추억이 되기를, 우리 동네의 굳건한 터줏대감이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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