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이익. 버스가 공사 중인 어느 길가에 멈췄다. '임시버스정류장'이라는 푯말 근처에 사람들이 여럿 모여있다. 사람들은 버스가 혹여나 지나칠까 봐 손을 뻗거나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온몸으로 탑승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를 알아챈 버스가 멈추자 차례로 사람들이 올라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캉캉, 쇳소리가 부딪히는 소리도 얼핏 들려온다. 버스 의자에 앉아 고개를 올려봐도 건물의 꼭대기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이만큼 높아졌는지 이전보다 고개를 더 올려야 할 정도였다. 건물의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노동이 느껴졌다. 흙으로 덮여 모래바람을 일으키던 길에는 보도블록으로 뒤덮였고, 육교에는 계단이 생기고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었다. 이 모든 일은 불과 몇 달도 걸리지 않았다. 한 계절이 바뀔 즈음에 공사하던 건물에는 가게들이 들어섰다.
출근길에서 마주한 창문 너머 풍경은 나날이 변해갔다. 우주죽순 생겨난 건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고 잡초가 덮인 땅에는 반듯한 새 길이 생겨났다. 이전의 모습은 더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동네 이곳저곳은 새 단장이 되었다. 원래 이곳에 뭐가 있었더라, 빈 공터였나, 공장이 있었나. 더듬더듬 기억을 쫓아가보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워낙 인상적이라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오랜 세월 머물렀던 과거의 파편들은 산산이 부서졌다. 남겨진 잔해마저 새로 자라난 건물 아래에 파묻혀 더는 신음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영원할 것 같던 옛 것들이 부르짖던 비명은 포클레인의 몸짓 한 번으로 우수수 흩어져 버렸다. 굉음을 내며 사라지는 건 무엇일지. 차마 그들의 마지막을 목도할 수 없어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곤 했다. 그렇게 내가 알던 나의 동네는 비어지고 채워졌다.
언젠가 들려왔던 소문들은 현실이 되었다. 집 앞에 있던 식당 건물도 없어진데, 그 뒤에 있던 공장들도 전부 이사 가고 없어진데, 저기는 교회 건물 빼고 전부 없어진데. 그리고 그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거래. 없어지는 자리에는 모두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무성한 소문들. 결말은 왜 하필 모두 아파트 단지이던가. 십 년도 넘게 우리 가족의 외식 장소였던 갈빗집은 사라지고 그 위에 대형 아파트가 들어선다. 다섯 가족 혹은 친척들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고기를 한 점씩 나눠먹던 그곳이, 매서운 겨울날마다 따끈한 갈비탕 국물을 후후 불어 먹던 그곳이, 이웃을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그곳이, 식사를 다 하고 종이컵 커피를 뽑아 마시던 그곳은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었다. 부서질 날만을 기다리는 붉은 벽돌의 식당 건물이 유독 애처롭게 보였다. 곧 허물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듣던 날에 알 수 없는 울적함이 차올랐다. 사라지는 것은 이리도 많은지. 허무한 마음에 괜스레 아직 남겨진 식당 건물을 사진으로 남기곤 했다. 그 식당처럼 시한부가 된 건물들이 여럿이었고, 나는 가만히 동네를 거닐며 사라질 그들을 바라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