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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Feb 12. 2023

어스름한 아침을 밝히는 건

아침놀이 고개를 내미는 시간에 분주한 적막이 흐른다. 표정을 숨긴 사람들은 고요 속에서 온전히 눈을 뜨지 못한다. 새벽 그늘에 몸을 숨긴 것은 우리들만이 아니었다. 높디높은 건물들마저 커다란 몸집을 웅그려 어둠 안으로 숨어들었다. 밤을 밝히던 빛들은 사그라졌고 새벽을 밝히는 건 아침해였다. 드문드문 창문 너머 켜진 빛으로 그곳에 건물이 있음을 알아챈다. 건물들의 윤곽이 또렷해지며 그들 뒤로 아침해가 기상할 준비를 한다. 까맣던 새벽은 빛에 밀려나 푸른빛이 되더니 점점 주황으로 물들어간다. 불과 몇 분 전에 내가 숨어들었던 어둠과 잠에서 깨어나 걸어 들어 선 빛이 공존한다.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고 깨어있는 것 같기도 한 애매한 경계선에 선 채 반쯤 눈을 감는다. 그러자 새벽아침처럼 반쯤은 어둠이 들어서고 나머지 반쯤에는 빛이 들어선다. 뚜렷하지 못한 눈을 하고 더듬더듬 오늘을 위한 걸음을 옮긴다.


수색교를 지나칠 때마다 창문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다리 밑 기찻길시야를 방해하는 것이 없어서 저 멀리 피어오르는 해를 바라보기에 제격이다. 기찻길을 따라 넘어선 곳에는 각기 다른 높이를 가진 건물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무채색을 지닌 채 조용히 서 있다. 그들보다 높이 주황빛이 올라와 잠든 것들을 깨운다. 생기를 잃은 건물에 하늘에 떠오르는 빛과 같은 색이 번진다. 마치 수면에 비치는 달처럼, 건물 외벽마다 빛으로 서로를 닮아간다.


저항하지 못하고 물들어가는 그 시간을 담고자 분주히 눈을 움직였다. 버스는 나의 사정은 모르고 빠른 속도로 다리를 건넌다. 그 짧은 시간에 아침풍경을 담아내고자 홀로 분주하다. 버스를 타고 전철역까지 가는 약 20분이 아침해를 맞이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날이 추워질수록 내가 볼 수 있는 하늘빛은 더욱 줄어든다. 겨우 어둠이 걷히거나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때이다. 그러니 내게 노을을 보는 일분일초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에 버스 맨 앞자리에 앉거나, 일부러 걸음을 느리게 한다. 느릿한 걸음을 하면서도 출근을 재촉하는 시간이 얄밉기만 하다.


하늘을 올라다 보는 건 오래된 나의 습관이었다. 길을 걷다가도 탈것을 타더라도 나는 무심히 고개를 올려다본다. 별것 없는 그곳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기쁜 일이 있던 날에는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미세먼지의 사정마저 이해할 수 있었다. 그와 달리 울적한 날에는 사라져 가는 노을을 붙잡고 싶었다. 오래도록 내 곁에 남아 상냥한 빛으로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를 바랐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은 어떤 수고도 대가도 없다.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도 없다. 5분의 시간만으로도 나는 하늘빛으로 하루의 시작점 혹은 마침표를 찍었다.


애써 내면의 소용돌이를 갈무리하지 않아도 나를 나로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직 부족하고 온전한 한 사람이 되지 못한 나조차도. 아침놀을 보며 감탄하는 나의 감각에 선뜻 불온한 사람이라 힐난하기 어려웠다. 깊숙이 숨어있던 사소한 기쁨이 불쑥 튀어 올라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된다. 다른 이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그 풍경을 담아내고자 애쓰는 나를 보며 나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아침놀에도 쉽게 감동하는 사람이라서, 아침길에도 기쁨을 찾는 사람이라서. 작은 기쁨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 순간을 담아내지 못해 후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들처럼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하루를 무심히 흘러내지 않기 위해 매일 같이 버스 안에서 창문 너머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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