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꽃내음의 이끌림, 치자꽃
초보식물집사의 다둥이 식물일지 #1
베란다를 나서기 위해 문을 열자 꽃향기가 훅 하고 밀려들어왔다. 창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화분들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였다. 저마다 지닌 색으로 작은 꽃밭을 이루고 있는 화분들. 애나의 노란색, 치자의 하얀색, 핑키의 분홍색, 배아의 다홍색. 한데 모아두니 그저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스멀스멀 기쁨이 차올랐다. 내가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님에도 마치 내가 피어내는 것처럼 뿌듯함이 밀려왔다. 무언가 결실을 맺은 듯한 성취감도.
텅 비어 허전했던 베란다는 식물들의 생으로 가득 찼다. 그들이 지닌 생명력은 일상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세탁하는 일 말고는 발을 들이지 않았던 베란다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온통 내 머릿속은 화분들로 채워졌다. 아침저녁으로 혹은 생각이 나면 수시로 화분 앞으로 다가갔다. 자연스럽게 초록이들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발견했고 그들의 변화에 시시각각 반응하며 즐거워했다.
베란다 입구에 자리 잡은 치자꽃은 매번 향기로 나를 반겼다. 문을 열어두면 치자꽃향이 거실로 은은하게 퍼졌다. 그 향기로움에 이끌려 치자꽃 앞으로 향했다. 가만히 치치(치자꽃) 앞에 앉아 눈을 살며시 감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꽃내음으로 폐부를 가득 채웠다. 묵직한 듯하지만 가뿐하게 퍼지는 치자의 꽃내음. 주변 공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면서 특유의 은은한 향기를 곳곳에 심어주는 듯했다. 온통 인공적인 향에 둘러싸였던 생활에서 유일하게 인위적이지 않은 향. 하얀 꽃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를 오래 맡고 있으면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풍겨지는 향은 어떤 방향제보다 더욱 나의 감각을 풍부하게 만들어줬다. 식물을 키우는 것은 단순히 보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치치와 만나면서 오로지 깨달았다.
치치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곳곳에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 봉오리가 보였다. 그 꽃봉오리는 연두색을 띠며 입을 다물고 있다가 점점 치자꽃의 하얀색을 닮아가듯 물들었다. 꽃봉오리가 하얗게 번지면 곧 피어날 것이라는 신호였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꽃 봉오리를 보며 피어나는 순간을 천천히 기다렸다.
베란다 창문에 엄지만 한 벌 한 마리가 어슬렁 거린다. 우리 집 작은 꽃밭에서 흘러나오는 향이 벌을 불러냈나 보다. 가로막힌 방충망에 잠시 앉아 들어오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는 듯했다. 이내 아쉬움을 남기며 저 멀리 사라졌다. 벌이 떠난 자리에는 치자꽃 향이 머물렀다.
식물일지
22.06.××
아침에 일어나서 곧바로 치자꽃으로 향했다. 오므리고 있던 꽃봉오리에 한쪽 잎이 펴져 있었다. 나머지 꽃잎도 곧 피어날 것 같다. 살아있는 생명의 움직임을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다니. 매번 들여다봐도 신비한 꽃의 움직임이 나를 기쁘게 했다. 치치에게 다가가 예쁘게 피어나라고 속삭였다. 저녁이 돼서 다시 보니 꽃이 큼직하게 피어나 있었다. 만개하는 과정을 봐서 그런지 더욱 대견스럽다. 꽃에 코를 가까이 두고 킁킁거리며 향을 맡아봤는데 특유의 생기 있는 초록의 향이 났다. 그 속에서 풍기는 은은한 꽃내음이 지친 나를 따스히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