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아시(詩照我時),
나쁜 시를 짓는 일

시(詩)가 나를 비출 때(時) 3.

by 단비

물에 젖지 않은 물고기를 낚는 일처럼

아직 이 세상에 느낌을 표현할 말이 나와 있지 않은 것 같을 때가 있다.


찬장 가득한 접시들 중에 어느 하나 요리의 모양과 크기에 맞는 게 없어서

결국 볼품없이 스텐 통에 내어 놓게 되거나

한통 가득히 모아놓은 단추들 중에 떨어진 셔츠 단추와 같은 게 없어서

제일 비슷한 걸 달아 놓고 거기에만 눈이 꽂히게 될 때처럼


시(詩)를 짓는 일은

담고 싶은 걸 담아내지 못해서도 어렵고

보이기 싫은 걸 숨기지 못해서도 어렵다.


그러나 헤르만 헤세는 나쁜 시(詩)라도 짓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것이 훌륭한 시보다 더 사람들 마음에 행복을 줄 수 있다면서 말이다.


창작

시(詩)는, 그 성립에 있어서는 극히 간단명료한 것이다. 그것은 폭발이요. 한숨이요. 혼이 깃들인 격동, 어떤 경험에 대하여 반항하려는, 또는 스스로를 의식하려는 행동이요, 반작용이다.

남의 시(詩)를 읽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다. 누구나 스스로 서투른 시를 지을 수가 있지 않은가 - 누구나가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쁜 시를 짓는 일은, 가장 훌륭한 시를 읽는 것보다 사람들 마음에 훨씬 많은 행복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헤르만 헤세, <사유, 시에 대하여>* 재인용


헤세가 '나쁜 시(詩)'라고 한 건

지은 이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 남에게 읽히고 싶지 않은 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쁜 시(詩)'가 읽는 이의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면,

표현은 서툴러도 읽는 이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상상력을 자극한다면,

그 시는 '나쁜 시(詩)'가 아니라 '좋은 시(詩)'가 아닐까?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걸어야 합니다>, 헤르만 헤세, 최혁순 엮음, 을지출판사, 1992.

작가의 이전글「깊은 마음의 생태학」 - 몸으로 바르게 존재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