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독서 108일. 하루치의 예방주사
하루 동안 주어질 자극에 대해 책이란 주사기를 통해 면역 성분을 주입시킨다. 정신의 면역 성분을 글로 남긴 사람들은 이 세상이 평화롭고 조화로운 곳일 수도 있다는, 또는 세상이 평화롭고 조화롭지 않을 때조차도 자기 자신은 영향받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년)는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로, 통치 기간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전투를 지휘했어야 했다. 참혹한 전장을 누비며 추위와 질병을 이겨내야 했고, 수많은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고단한 운명의 왕이었다. 그 고단한 운명 앞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일깨우기 위해 그는 일기를 썼다.
전쟁터에서도, 아니 전쟁터니까 인간 군상의 비열하고 저속한 민낯을 마주할 일은 더욱 많았을 것이다. 강인한 철학으로 무장된 그에게도 인간관계는 날마다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녹록지 않은 일이었던가 보다. 주제넘은 간섭, 배은망덕, 교만, 권모술수, 시기와 질투, 불친절 등은 매일 언제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오늘도 나는 주제넘게 이 일 저 일 간섭하고 돌아다니는 사람, 배은망덕한 사람, 제멋대로 교만하게 행하는 사람, 술수를 써서 남을 속이는 사람, 시기심이 많은 사람, 사교성이 없고 무뚝뚝한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중략) 그들은 내게 해악을 끼칠 수 없고 나를 부끄러운 짓으로 끌어들일 수 없으며, 나도 내 동족인 그들에게 화를 내거나 미워할 수 없다. 우리는 두 발이나 두 손이나 두 눈꺼풀이나 상악과 하악처럼 서로 돕고 협력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대립하는 것은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에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호화로운 궁전에 앉아서 여유롭게 쓴 글이 아니라 피 냄새나는 전쟁터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쓴 자기 수련의 기록이다. 전쟁과 같은 소란과 혼란에 둘러싸여 있을 때조차도 평정심을 잃지 말라는 자신을 향한 훈계였다.
전쟁이라는 인간의 갈등과 대립의 가장 생생한 현장 속에서도 '서로 대립하는 것은 본성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철학적 통찰에 이르기 위한 그의 사유 속 전쟁이 바깥세상의 전쟁보다도 더욱 치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직접 겪어낸 삶을 관통하여 얻은 관조의 시선은 글로 삶을 배운 이의 것과는 다른 무게를 가진다.
글에서 배운 걸 모두 삶으로 겪으라 한다면 누구라도 손사래를 치며 달아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삶의 서사를 가질 수밖에 없고, 그나마 그것이 글에서라도 본 적이 있는 서사라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글에서도 본 적 없는 삶이라면... 부디 완주의 기록을 남기길 바란다.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서로 돕고 협력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은,
한 인간이 모든 삶을 겪을 수는 없으니 각자가 겪고 있는 삶의 서사를 나누고 이해하라는 뜻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