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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대화 12. 위로 같지 않은 위로

위로 같지 않은 위로가 위로로 다가오는 순간

by 단비

실제 있었던 대화를 각색하기도, 상상으로 대화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내 안의 타자와 나누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질문이 남기도, 깨달음이 남기도, 감정이 남기도 해서 '남는 대화'입니다.


(크게 어려운 일로 많이 힘들어하는 후배에게)

A: 네가 큰 일에 쓰이려고 큰 어려움을 겪나 보다.

B: 큰 일에 쓰일 생각 전혀 없으니 큰 어려움 같은 거 사양할래요.

A: 큰 어려움은 이미 생겼으니 선택 사항이 아니지.

B: 그럼 내가 뭘 선택할 수 있는데요?

A: 어려움에 대한 태도.

어려움보다 커져서 그 어려움을 삼킬지, 작은 채로 그 어려움에게 먹힐지.

B: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A: 지금은 그럴 거야. 하지만 네가 어려움보다 커진 후에는 이미 위로가 되어 있을 걸.

남는 질문

어려움보다 커지라는 위로 같지 않은 위로가 결국 위로가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남는 생각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평소 속 깊은 다정함으로 느껴졌던 묵직한 침묵이 차가운 냉대로 느껴지고, 긴 세월을 거쳐 검증된 지당한 말들이 빈정상하게 들릴 때가 있다.

나약한 정신의 목표는 주인이 목표를 상실케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제일 먼저 주인의 근성부터 망가뜨린다. (중략) 나약한 정신이 올바르게 가려는 정신의 뒷덜미를 잡고 자빠뜨린 것이다.
- 김주원, [감정이 각도를 잃으면 정신은 온도를 잃는다.] 중에서


감정에 호응하며 약해진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달콤한 말만이 위로가 되고, 직면한 고통을 직시하며 그 고통보다 커지라는 쓴소리는 위로가 되지 않는 때, 이때는 '나약한 정신'이 감정을 부추겨 주인의 근성을 망가뜨리고 있는 때일 수도 있다. 결국 위로 같지 않은 위로가 위로로 다가오는 순간은 근성이 살아나는 때, 정신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때이다.


그런 때가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다면, 현재의 자신이 아닌 미래의 자신을 그려보라. 평화롭고 차분한 눈빛으로 미소 짓고 있는 미래의 모습을. 분명히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보다 커져 있는 담대한 모습일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겪는 고통보다 커지기 위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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