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할 만한 것을 선택하는 것 Vs. 선택한 것에 만족하는 것
실제 있었던 대화를 각색하기도, 상상으로 대화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내 안의 타자와 나누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질문이 남기도, 깨달음이 남기도, 감정이 남기도 해서 '남는 대화'입니다.
A: 땅 팔아서 그 돈으로 노후에 좀 편하게 살아.
B: 사람이 땅의 주인인 줄 착각하는구먼.
A: 사람이 주인 아니면 누가 주인인데?
B: 땅이 부르면 나가고, 일구라 하면 일하고,
내어주는 게 있으면 얻어먹었으니, 저 땅이 사람의 주인이지.
A: 그럼 이제 저 땅보고 다른 사람 부려 먹으라 하고, 당신은 돈의 주인 해.
B: 싫소.
A: 왜?
B: 땅은 내가 선택한 주인이고, 난 내 선택에 대만족이거든.
아주 훌륭하고 좋은 주인이 있어서 그의 직원이 되어 기쁘고 즐겁게 일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은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일이다. 그런 주인이 ‘땅’이라는 것도 수긍이 간다. 다만 다른 선택이 주는 편의와 유익이 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선택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이 누리는 다른 형태의 만족에 기웃거리거나 현혹되지 않는 자기 신뢰가 놀랍다.
만족할 만한 것을 선택하는 일은 계속 더 큰 만족을 찾아 두리번거리게 만든다. 이것을 선택해도 저기에 더 만족할 만한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만족하고자 해도 만족하기가 어렵게 된다. 반대로 선택한 것에 만족하는 것은 어찌 보면 행복하기로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다른 만족으로 눈돌리거나 더 큰 만족을 찾아 헤매지 않고 이미 선택한 것에서 행복을 누리기 때문이다.
선택한 것에 만족하는 것, 행복하기로 선택하는 것, 여기에도 어떤 노력이나 실력이 필요한 걸까?
쉽고 단순한 듯한 이 선택이 왜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