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여백신 줍줍이라도 맞기만 한다면야.
남들은 교차접종으로 화이자를 맞는 요즘, 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찾고 있었다.
나의 상황은 이랬다.
1. 말레이시아에서 AZ 1차를 5월 말에 맞고 2차를 맞아야 하는 11주가 넘어가 슬슬 불안해옴.
2. 한국에 여름휴가를 옴.
3. 해외서 1차를 맞은 사람에게 2차로 화이자를 교차 접종해준다는 이야기를 보건소로부터 들음.
4. 허나 말레이시아는 AZ-화이자 교차접종을 근거 부족이란 이유로 아직 인정하지 않은 상황.
만약 2차로 화이자를 맞으면 말레이시아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있음. 즉, 내가 백신을 두 방 맞았지만 백신 접종 완료자에게 주는 혜택 (자가격리, 이동의 자유, 외식 허용 등)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 휴가를 마치면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나의 집 말레이시아에서의 이동의 자유가 우선순위기에 일단 화이자는 눈물 머금고 포기.
허나 아제백신은 50세 미만에게는 주지 않는다니 맞고 싶어도 맞을 방법이 없었다. 보건소에 전화를 해도 잔여를 하려 해도 다 막혀있었다. 그냥 다 포기하고 말레이시아 일단 돌아가서 시설 격리 다 마치고 1차 접종 후 16주가 넘어 혹시 접종하는 곳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면 우리 AZ백신 한 방 정도는 남겨놓지 않았을까.라는 불안한 희망을 가지고 일단 대기 중이었음.
근데 어제 정부가 아제 잔여백신이 (교차 쪽으로 수요가 쏠리니 당연한 상황) 남아돌아 50세 미만에도 맞고 싶은 사람에게 맞을 수 있게 해 준다고 발표. 왓!!! 토요일인 오늘 아침 카톡 키고 잔여백신 열심히 찾아보니 동네 의원들에 남은 백신들은 모두 아제 백신. 아제 백신 풍년이 아니던가.
카톡으로 예약은 담주 화요일부터 된다고 해서 일단 슬리퍼 끌고 바로 동네 소아과로 달려감. 근데 내가 해외 1차 기록을 시스템에 등록했는데 해당 보건소에서 나를 추후 접종 대상자로 lock 해서 본인들이 빼낼 수 없다며 행정적인 절차가 복잡하다며 못 주시겠다고. 이게 해당 보건소가 나를 풀어주고 그걸 질병청에 올라가서 취소가 되어야 내가 시스템상 자유인이 되어 잔여백신을 등록할 수 있다는 현실적이지만 뒷목 잡는 행정시스템. 간호사분께서는 최대한 도와주고 싶었지만 주말이고 보건소가 문을 닫고, 아침부터 전화 거는 질병청은 분명 24시간 콜센터라 했는데 전화를 받지는 않고 카톡으로 보내도 답이 없고. 시간은 흐르고.
내 사정을 투머치 토크로 풀기 시작함. 돌아가면 하루에 2만 케이스다. 여기 2천 케이스도 난리인데 우리는 2만이다. 살려달라. 남는 백신 나한테 버려라. 내가 잔여백신 받이가 되겠다. 바빠 죽겠는데 매달리는 나의 읍소에 알았다며 주겠다는 결단을 내려주심. 바로 와이프 전화해서 뛰어오시오 해서 같이 아제 2차를 맞음.
사실 나중에 한국 와서 자가격리 면제가 되려면 동일 국가에서 2방 맞고 2주 후에 있어야 가능한데 난 국가가 mix 되면서 그 조건에는 못 들어가지만 이번에 한국 와서 내 카드값을 보니 한국에 자주 오면 집안이 거덜 나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맞음. 이 정책도 다른 나라처럼 일단 2방 다 맞으면 (어디서 맞든)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행정시스템이 바뀌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봄.
이게 끝은 아니다. 이제 말레이시아로 돌아가서 한국서 맞은 2차 접종 등록하고 (요건 가능하다고 함) 증명서를 받는 것부터. 자가격리 면제가 이번 주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조건에 맞추려면 일정이 다 바뀌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다.
그래도 2차까지 다 맞았다는 뿌듯함과. 게다가 잔여백신이었다는 짜릿함으로 손에 타이레놀을 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많은 분들이 애쓰고 있지만 여전히 백신 접종의 끝단에 있는 end user로써, 게다가 약간의 특이 케이스 (해외 1차 접종 완료자, 아제 2차 희망자)로 접종까지 질병청과 보건소에 얼마나 많은 전화를 돌렸던가. 수십 번에 한 번 연결되어도 결국엔 "공문(=누군가의 결정/확인)"이 필요하다는 답변들 속에서 백신만 있다고 절대 사람들이 와서 쉽게 맞을 것이라는 공학적 생각의 허구를 몸으로 느꼈던 지난 몇 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