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에서 네트워킹 하기
하버드에는 수많은 기회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아직 내가 모두를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다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기회들을 "나의 분수"에 맞게 찾는 여정에 있다. 그 여정을 이곳에서는 네트워킹이라고 한다. 사람을 만나서 정보를 얻고 기회를 찾으러 다니는 과정.
모두가 편해하지만은 않지만 모두가 하고 있는 네트워킹. 10년 전 미국에서 석사 할 때 네트워킹이라는 스킬/분야(?)를 처음 배웠고, 지난 10년간 유엔에서 일하면서 나만의 네트워킹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올바르지 못한 기준이고, 나만의 네트워킹 스타일을 찾았느냐가 맞는 기준 같다.
가을 학기가 시작하며 교수님과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지금. 나의 네트워크 여정을 나눠보고 싶다. 이름하여 네트워킹의 ABC. 그냥 "너 참 고생한다." 하며 공감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1. 네트워킹에도 리서치가 필요하다
네트워킹의 기본은 리서치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의 정보를 최대한 확보해야 그 사람을 만나도 할 얘기가 있고 빠른 시간 안에 신뢰를 쌓을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연습하는 것도 네트워킹에 중요하지만 상대방을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하버드에 교수님이 너무 많은데 이 분들의 정보들을 확인하고 어떤 공부를 어디서 했는지 어떤 수업들을 가르치는지 충분히 조사를 하는 중이다. 엑셀 파일을 만들고 그분들의 이름, 연구분야, 나와의 연결고리, 홈페이지 등 정리하는 중이다. 학교의 교수님만 알아보는 것이 아니고 내가 속한 프로그램의 선배들 소개와 링크드인을 보면서 관심 분야가 비슷한 분들도 리스트로 정리 중이다. 3년 차에 기관에 소속되어 연구/실무를 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3년 차에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해볼지 생각하며 그쪽 인더스트리 사람들도 링크드인을 팔로우하면서 거리를 좁혀가는 요즘이다.
2. 숨 한번 쉬고 들이대라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모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그림이 그려지면, 상상 속에서 이런 느낌의 사람이겠구나 그려지는 타이밍이 온다. 그러면 연락할 준비가 된 거다. 엑셀에 적힌 메일 주소로 이메일을 보내거나 링크드 인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메일로는 만나자는 얘기를 하러 보내고 링크드인은 저란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약간의 거리감이 있는 사람에게 주로 쓰는 것 같다. 메일은 몇 번 쓰다 보면 내용이 비슷해서 그리 어렵지 않다. 단지 상대방의 소속/직위에 따라 톤이 달라지는 것뿐. 요즘에는 교수님들에게 보내기 때문에 비슷한 톤의 이메일들을 보낸다. 하버드 학생이지만 내가 수업을 당장 들어서 알지 못하는 "대"교수님들이다. 아무래도 그런 교수님들은 바쁘고 여기저기 디렉터도 하고 직함도 엄청 많다. 사실 프로필만 봐도 쫄게 되는 그런 분들이 많지만 그래도 내가 하버드 학생인데 이분들도 나에게 만나주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줘야 하는 거 아냐? 하며 쫄아있는 나를 부추기며 메일을 보낸다. 호기 차게 다음 주에 30분 정도 만나줄래? 이메일을 여기저기에 보냈다.
3. 거절에 익숙해지기
저렇게 준비하고 연락해도 많은 분들에게 답장을 받지 못했다. 생각해봤다. 왜 도대체 답장을 안 하는 걸까. 아마 내가 생각하기엔 나를 소개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내 소개가 너무 길었나? 여름 방학이라 다른 연구하느라 바빠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아시안 이름이라서 흥미가 없어 보였나? 답장이 안 오면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러나 이런 불안감을 견뎌야 네트워킹을 할 수 있다. 내 동기가 말했다. "형준, 넌 다 자신감 있어 보이는데 이런 답장 안 오는 거엔 왜 소심하게 맘 상하냐? 난 그냥 보내고 연락 안 오면 whatever 하고 그냥 넘겨." 참 맞는 말이다. A형은 아닌데 답장 못 받으면 거절감이 나를 공격한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네트워킹의 기본은 거절에 익숙해지는 것. 내가 보낸 이메일에 답장 안 하는 그분. 만나서 얘기하는데 내 이야기에 관심 없어 보이는 그분. 뭔가 이야기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그분. 그렇게 만나고 팔로우업 이메일에 아무 얘기 없는 아마도 내가 별로였나 싶게 만드는 그분. 네트워킹을 하다 보면 대부분은 그런 거절감과 (실제로) 거절의 연속이다. 이걸 알고 있었기에 네트워킹의 바다로 들어갈 때는 언제나 숨을 한 번 참고 들어가야 한다. 계속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거절감과 마주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4. Less powerful, not powerLess
내 관심분야의 대가인 교수님들에게 보낸 이메일 중 반은 답장이 오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학교인데. 이분들이 분명히 이 건물 어딘가에 있는데 왜 답장을 안 해주지 생각하지?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답장받지 못한 교수님들에게 팔로우업 이메일을 보낸다. "바쁘셨죠? 여름이라 학교에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가을학기 시작하면 다시 한번 연락드릴게요. 괜찮아요 그때라도 보면 영광일 거 같아요." 이렇게 보내면 그중의 몇 분은 그제야 "아-미안해. 그래 가을학기 때 리마인드 해줘. 그때 보자." 이분들은 동정심에 마음이 움직인 분들. 이래도 답이 없는 분들이 있었다. 이분들을 만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오티 세션이 끝나고 교수님들 소개가 끝나면 바로 뛰어나가서 그분들을 다짜고짜 붙들고 내 소개를 했다. "전 누구고요. 교수님께 이메일 보냈었는데 바쁘셨죠? 괜찮아요. 가을 학기에 한 번 만나주세요." 그러면 대부분 미안해하면서 "그래 연락해." 말한다. 어찌 보면 그분들에게 마음의 빚(?)을 전해주며 내가 1포인트를 얻는 순간이다. 이런 분들은 다음에 만나면 대부분 "그때 답장 못 해서 미안했다." 하면서 더 잘해줄 가능성이 크다. 이뿐이 아니다. 학교 메인 로비 벤치에 친구들과 앉아있으면 사진으로만 보던 그 교수님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실물을 처음 보지만 사진으로 벌써 너무 나 혼자 친해져서 딱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 친구들과 얘기하다. "Give me a second."하고 교수님께 뛰어간다. 흡사 연예인을 쫒는 연예기자처럼. 바쁘게 길을 가는 교수님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리마인드를 시켜준다. 나에게 스스로 애쓴다며 위로를 한다. 역시 네트워킹을 하는 과정은 Less powerful 한 내가 powerful 한 누군가와의 밸런스를 맞추는 고단한 과정이다. 나의 영혼은 팔지 않되 그들과 소통하는 길. 그게 네트워킹인 거 같다.
5. 약속을 잡는다
그렇게 연결된 분들과 하나씩 약속을 잡기 시작한다. 학기가 시작되니 교수님들도 다 학교로 돌아오니 30분을 잡는 이메일을 뿌리는 중이다. 이 부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6. 나만의 어젠다를 만든다
만남이 성사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났을 때 얼마나 그분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도 중요하다. 나의 질문들이 확실하다면 미리 보내기도 한다. 저는 이런 3개의 포인트에 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아니면 내 머리에 기록하거나 적어가서 포인트를 보기도 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이 친구가 뭔가 준비를 해왔구나 하며 질문을 해보라고 얘기한다. 무엇보다 다들 바쁜 사람이기에 "what can I do for you?"라는 질문을 많이 하고 그런 기회가 왔을 때 빠르게 포인트로 들어가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부탁하기 어려워서 돌려 말하다가 30분이 다 지나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부탁하는 걸 편해하지 않아서 이 부분이 어렵다. 그런데 외국 친구들은 자기가 원하는 걸 처음부터 쫙 잘 얘기하는 걸 보면서 배워야겠단 생각을 해본다. 조금 뻔뻔하다 싶은 느낌으로 임해야 평균 정도 하는 것 같다. 그 느낌을 몸으로 기억한다. 조금은 뻔뻔해지는 느낌. 매번 그런 건 아니고 네트 워킹할 때만 좀 뻔뻔해지려고 한다.
7. 내 차례가 왔을 때 빡! 보여주자
내가 누군지 무엇을 했었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설명하는 건 자랑하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한국사람들은 자기의 가치를 낮추어 말하는 겸손이 미덕이기에 나를 설명한다는 게 어지간히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러나 한국만 벗어나면 모두가 자기를 PR 하고 포지셔닝을 하고 그게 중요하다면 어떨까. 그런데 내가 한국 밖에서 일한다면? 방법이 없다 그들의 룰에 따라야 한다. 불편하더라도 내가 최근에 발표한 논문 얘기를 하고, 내가 유니세프에서 어떤 일을 했었고, 누구랑 일했었고, 얼마나 열심히/잘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아쉽지만 그렇게 자기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내 세션이 끝나면, 나보다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본인을 다 보여준 다음 차례에게 무대를 내주는 셈이 된다. 나에게 마이크가 주어졌을 때 최대한 나를 보여줘야 한다. 기회를 다시 오게 하려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에.
8. 팔로우업도 네트워킹이다
만남이 지나면 꼭 감사 이메일을 보낸다. 짧게도 좋고, 이야기 중에 나왔던 내가 했던 일들에 관한 링크나 추가 정보를 보낸다. 답장이 안 와도 좋다. 내가 감사 인사까지 보내는 게 한 사이클이다. 만약 통하였다면 다음 미팅이나 구체적인 액션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런데 당장 무언가로 연결이 되지 않아도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전에 쌓아놨던 포인트들이 소멸되지 않는다. 평생 가는 마일리지 포인트처럼 말이다. 그래서 만남을 마무리 짓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내려놓은 그곳에서 다음 만남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꼭 용건이 없어도 본인에게 신상의 변화나 좋은 소식이 있으면 그런 걸 기회삼아 연락을 해보고 다시 캐치업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국제개발일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롤모델, 멘토들 (대부분 외국인)에게 신상의 변화가 있으면 메일(아니면 카톡이라도)을 보낸다. 그게 벌써 10년째다. 나도 그런 이메일을 멘티들에게 받으면 바빠서 답장을 놓쳐도 읽을 때 고맙고 흐뭇한 것처럼. 나의 멘토들도 그럴 거라고 믿기 때문에. 좋은 소식을 듣고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다. 특히나 바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으로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무소식보다 열매가 크리라 믿는다.
9. Vertical and horizontal networking
네트워킹하면 나보다 높은 누군가에게 받는 수직적 네트워킹(vertical networking)을 생각한다. 중요하다. 그러나 수평적인 네트워킹 (horizontal networking)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비슷한 위치에 있는 업계의 동료들, 학교의 동기들, 혹은 학교에 있는 선후배들과의 네트워킹도 중요하다. 그들과의 네트워킹은 수직 네트워크처럼 포멀 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당장 리턴이 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주식으로 치면 장기투자 종목과도 같다. 수평적 네트워크가 주는 심리적 동질감과 안정감이 오히려 수직적 네트워킹이 주는 기회들보다 더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여기에 하나 추가하자면 위로의 수직적 네트워크만이 아닌 아래로의 수직적 네트워킹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존경하는 클하의 멘토 이동훈 부사장님께서 전에 말씀하신 부분인데 아래로도 띠동갑 정도의 분들과 네트워킹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커리어 초기 때는 모르지만 중반을 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는 그 말이 너무 와닿는다. 내가 최근 코이카를 통해 국제기구 관련한 멘토링을 매달 5명 정도를 하는데 그분들과의 네트워킹도 나에겐 큰 자산이다. 지금의 나에게 감사하고 나를 다잡는 좋은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두 발은 아래를 뻗고, 두 손은 옆으로 뻗고, 눈은 약간 위쪽을 바라본다. 내가 생각하는 네트워킹의 포지션이다.
10. 네트워킹에 올인할 필요는 없다
실컷 네트워킹을 얘기하고 이런 얘기냐 싶지만 그렇다. 네트워킹에 진심과 최선을 다해하되 그것에 올인할 필요는 없다. 네트워킹이 중요한 타이밍에 길을 열어주기도 하고 빠른 길을 내어주기도 하지만, 결국엔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얼마만큼의 실력을 가졌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네트워킹만 너무 앞서도 기회가 왔을 때 준비가 되지 않은 나를 맞이하는 것만큼 불안한 것도 없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 즉 실력의 크기보다 조금 더 큰 기회들을 위해 네트워킹을 하는 것이지, 내가 감당도 못한 큰 기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하는 건 약간 사기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의 자리를 알고,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그것으로 인생을 바꾼다거나 없던 자리가 생기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선을 다하고, 일희일비하지 않는 게 본인을 위해도 좋은 것 같다. 네트워킹의 이외의 시간에는 자기 실력을 늘리기 위해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골프도 그렇지만 너무 잘하려고 힘을 주면 멀리 나가지 않는다. 힘을 빼고 몸통(실력)을 따라서 쭉 가면 되는 거다. 거기서 나오는 스윙으로 더 나가면 되는 거다. 이렇게 말하고 난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 함정 ㅎㅎ
11. 네트워킹은 마라톤이다
어떤 관계도 한 번의 만남으로 깊어지기는 힘들다. 사람도 길게 봐야 그 사람의 진가가 보인다. 네트워킹으로 단기적인 이익을 얻으려면 더 마음만 급해진다.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이라 생각하고 시간을 투자해서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도 낮은 인텐시티로 오래 유지되는 관계들이 많은데 그런 잔잔한 숙성 관계들도 꽤나 신뢰를 준다. 페이스북이든 온라인을 통해 오랫동안 지켜보고 관계를 쌓아온 분들과 몇 년 후라도 실제로 만나면 좋은 기회들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당장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면 본인의 시간을 들여서 관계를 쌓아놓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나는 어디에?
교수님과의 만남은 절반의 성공이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번 주에 나보다 띠동갑으로 어린 대학 후배가 하버드에 박사를 와서 따로 만나서 커피를 마셨다.
플래쳐 때 같은 수업을 듣던 친구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 통상부 장관이 되었다. 장관을 마치고 하버드에 팰로우로 돌아와서 거의 10년 만에 만나서 캐치업을 했다.
학교 선배들과 링크드 인으로 줌으로 만나서 어떻게 살아남냐며 조언을 구했다. 런던에 있는 선배도 있었고, 다른 주에 있는 선배도 있었다. 줌 때문에 그들의 30분을 빌릴 수 있었다. 이 부분은 나도 나중에 꼭 갚으리라.
나의 네트워킹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마라톤처럼 간다. 멈추지 않고. 사람에 대한 관심(오지랖)과 누구든 만나서 30분은 떠들 수 있는 타고난 E형 (사람 만나서 에너지 얻는 스타일)이라 그나마 버틴다. 이렇게 만나서 무엇을 얻을지 무엇을 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확실한 건 항상 배운다는 것이다. 책으로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배우러 나는 또 어딘가를 헤맨다. 네트워킹의 바다에서. 여러분도 잘 살아남으시길 바라며. 우리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