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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25. 2023

광야를 지나며

결핍의 축복


10년 전에 블로그에 결핍함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물질적으로 가장 결핍할 때 쓴 글인데 2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우리 부부에게 50만 원밖에 없던 시절 역설적으로 마음만의 부자였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네팔에 가서도 상황은 어렵지만 부족함 속에서 느끼는 감사가 있었다. 


그렇게 커리어를 쌓으며 결핍보다는 가진 것들이 많아졌다. 아마도 커리어가 쌓이며 생겼던 안정감일 텐데 그건 아마도 내가 가진 자리라든지, 매달 나오는 월급, 그리고 직장을 통해 누리던 혜택들이 아닌가 싶다. 


그런 안정감은 말레이시아에 도착해서 최고조를 누렸던 것 같다. 결핍했던 유학 생활, 지진을 겪었던 네팔, 첫 아프리카였던 가나를 거치면서 항상 결핍이 있었는데, 말레이시아에서는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다. 지난 시간의 보상이었을까. 안정된 계약, 싼 물가, 편리한 생활, 해외여행, 상사로부터의 인정, 커리어 개발 기회 등 밀렸던 복을 다 누리는 느낌이었다. 가족과 그런 넘침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했고, 내가 프로로 성장하는 느낌이 매일 들던 그런 시기였다. 


허나 동시에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모든 걸 누리며 살아도 되나 싶은 마음이 깊숙한 곳에 있었다. 그래서 교회 모임을 하며 "예전에 유학 생활 때 느끼던 광야 생활의 결핍이 그립습니다."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다. 그러면 주변 집사님들이 이제는 가족도 있는데 광야 그만 찾고 가족을 위해서라도 누리고 살라고 핀잔을 주시곤 했다. 넘침의 시기였던 말레이시아에서 나는 오히려 광야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4년의 말레이시아 생활 가운데 항상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과연 내가 누리는 이것이 나의 것인가 너무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고 광야로 나아가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의식하고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난 내가 경험했던 광야. 내가 가진 것들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고 하나님께 오롯이 집중하던 그 시간과 장소를 다시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보스턴은 그렇게 나에게 광야였다. 석사 유학 생활 2년간 너무 행복했지만 하루하루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항상 무언가가 부족했다. 돈이 부족하기도 했고, 내 실력도 부족했고, 그런 상황들은 노력해도 하루아침에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매일 기도로 하나님께 붙들려 살았던 2년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광야는 단련의 시간이고 최소한의 만나를 먹으며 결핍과 믿음으로 걸어가는 시간이다. 나에게 보스턴은 그렇게 몸에 기억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추억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은 선물 같은 것이었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박사 유학을 준비한 것도, 나에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이유도 그 광야의 결핍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아이가 두 명인 아버지라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광야에서 누리는 결핍 속의 축복이 나에게는 뼛속까지 그리웠던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코로나 시절 유학을 준비했고, 그 약속을 붙들고 보스턴에 다시 오게 되었다. 


광야 1편에는 나와 와이프만 출연했다면, 2편에는 애들 2명까지 같이 출연하게 된 셈이다. 예전과 비교하면 그렇게 힘든 생활은 아닐지 모른다. 허나 역시나 보스턴은 쉽지 않은 곳임을 매일 느끼며 살아간다. 공부를 하며 느끼는 나의 부족함, 공부면 공부 커리어면 커리어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현실. 물가도 많이 올라서 1년은 버틸 줄 알았는데 가지고 온 돈도 이제 바닥이 보인다. 드디어 광야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느낌이다.


새벽 기도를 나간 지 몇 달이 되어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광야인데 광야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불안과 싸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언인지 생각해 보곤 한다. 나에게 주신 결핍과 축복의 상반된 경험들을 나이 40이 넘어서 다시 누리게 해주시려는 그분의 선한 뜻을 보게 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빌립보서 4장 13절의 말씀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처럼 살고자 부단히 노력했는데 여전히 나는 연약하고 광야에서 불안에 하고 있던 것이다. 


나에게 하버드 박사 생활은 세상적으로 성공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몇 년간 다시 광야로 나아가 내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임을 결핍을 통해 배우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 축복을 경험하는 시간이란 확신이 든다. 광야에서만이 누리는, 결핍이 있기에 느끼는 감사들. 마른 땅에 내리는 비같이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 그 축복의 시간과 장소에 지금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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