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 지금 위층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무소에 들어서자마자 팩스와 라디오가 놓인 선반이 보였다. 선반 옆 바닥에 놓인 아이보리색 스니커즈도 물론 한눈에 들어왔다. 스니커즈의 둥근 앞코가 건물 안쪽으로 통하는 여닫이문을 향해 무심히 놓인 모양이 어제 퇴근하면서 본 그대로다. 지금 윤이 위층에 있다는 뜻이다.
아직 안 일어났나?
출근 날짜며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윤이 보통 언제 일어나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쉬는 날이면 윤은 늘 아침 산책을 나간다. 아홉 시 반이나 열 시쯤 출근한 내가 신문에 끼워 넣을 전단지를 만들다 보면 어느새 출입문 유리창 너머로 산책에서 돌아온 윤이 나타난다. 낡은 철제 미닫이문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윤. 내가 인사를 건네면 윤은 매번 말없이 싱긋 웃어 보인다. 가끔은 늦게 일어난 윤이 안쪽 여닫이문을 열고 나오며 먼저 “오하요-” 인사를 건넬 때도 있다.
스니커즈에서 시선을 거두고 작업을 시작했다. 멍청하게 크고 시끄럽기만 한 기계를 돌려가며 전단지를 만들고, 정리하고, 배달원들이 가져갈 분량만큼 끈으로 묶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 끝이다. 작업을 전부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두 시간 하고도 삼십 분 남짓.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거나 큰 힘이 들지는 않지만 반복 작업이라 좀 지루하다.
묵묵히 작업을 끝내고 엉덩이 부분이 푹 꺼진 의자에 앉아 콜라 한 캔을 비우는 동안에도 여닫이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마 오늘은 산책을 나가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하기야 새벽부터 가늘게 내리기 시작한 비가 여전히 부슬부슬 떨어지고 있다.
전단지 작업을 끝내고 나면 저녁때까지 사무소를 지키는 게 내 일이다. 사무소 책상에 앉아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이나 신문배달부를 맞이하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이따금 대낮부터 불평불만을 토로하러 오는 성가신 노인네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하지만 주택가 외곽에 위치한 명목뿐인 신문사 영업소를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추가 전단지를 만들라거나 오늘은 일찍 퇴근하라는 사장님의 전화를 기다리며 나는 주로 만화책을 보거나 휴대전화 게임에 열을 올린다.
오늘도 만화책 다섯 권을 연달아 읽었다. 문득 출출한 느낌이 들어 시계를 보니 벽시계의 시침이 숫자 2를 가리키고 있다. 나가서 먹을까, 사다 먹을까 고민하며 째깍째깍 돌아가는 초침을 보고 있자니 공복감 사이로 묘한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째깍, 째깍, 째깍……
이상하네. 너무 조용한데.
윤이 위층에 들어오고 난 뒤 새삼 깨달은 점이 있다. 이 건물은 도무지 방음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건물 자체가 워낙 허름한 데다 위층 방에 깔린 다다미도 건물만큼 낡아서, 오늘처럼 비 오는 날에는 가벼운 발소리까지 아래층으로 흘러들곤 했다. 물끄러미 천장을 쳐다보다가 숨을 죽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가느다란 빗소리, 시곗바늘 소리, 자동차 소리, 멀리 개 짖는 소리…….
설마 여태 자는 건가?
평소대로라면 따로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윤이 틀어둔 음악소리라든가 냉장고 문을 여닫는 소리, 음식을 만드느라 부스럭대는 소리 따위가 띄엄띄엄 들렸을 것이다. 아이보리색 스니커즈를 다시 본다. 윤이 지금 위층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장님, 위층은 왜 비워두세요? 어차피 노는 방인데 사람 들여서 월세라도 받으시지.
너는 눈도 없냐. 이런 낡아빠진 건물에 누가 세를 들겠어?
싸게 내놓으면 되죠.
큼, 아무래도 사실을 털어놓을 때가 온 것 같군. 야마모토, 지금 하는 얘기는 다른 사람한테 입도 벙긋하면 안 된다. 그게 한 육 년 전쯤인가. 내가 이 건물을 인수하기 전에, 위층 구석방에서 누가 목을 맸다는 소문이 크게 돌았거든. 나야 소문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라 상관없다만 사람들 뒷말이……
사장님! 또 이러시기에요. 말투가 너무 진지하면 농담이 재미가 없다니까요.
거참 이놈이 사람 말을 안 믿네. 그래, 뭐 따지고 보면 소문이란 대개 농담에서 시작되는 법이지. 근데 뜬금없이 그건 왜 물어?
아니 뭐, 그냥 궁금해서요.
실은 집에서 나와 살고 싶은 마음에 사장님이라면 싸게 빌려주실 듯싶어 물어봤다는 말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농담이라지만 저런 얘기를 듣고도 위층에 들어가 살고 싶지는 않았다.
갑자기 바람소리가 크게 나더니 출입문이 덜컹거렸다. 괜히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유… 윤상!”
제법 크게 불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어제저녁부터 꼼짝도 하지 않은 스니커즈가 눈에 들어온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여닫이문 앞에 섰다. 심호흡을 하고 문손잡이를 돌리자 문틈 사이로 좁은 부엌과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문을 두들겼다. 역시 대답이 없다. 문에 귀를 대고 신경을 곤두세워도 들리는 소리라곤 빗소리와 바람소리뿐.
살그머니 문을 옆으로 밀었다. 자질구레한 물건이 어지러이 놓인 좁은 방. 창가 벽에 붙여 깐 이불 위에 윤이 정물처럼 앉아 있다. 푹 떨군 고개와 대충 뻗은 두 다리, 늘어진 양팔. 앉아 있다기보다 다른 물건들과 함께 거기 놓여 있다는 설명이 더 적합한 모습으로.
“윤상?”
그제야 고개를 든 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인사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