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신폭신한 나의 구원에게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누구에게나 구원이 필요하다.
꼬마 자동차 붕붕에게 힘을 주는 꽃향기처럼, 지친 마음에 살아갈 기운을 불어넣어 줄 최소한의 구원이 없으면 사람은 예상보다 쉽게 캄캄한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마니까.
나락 아닌 곳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구원을 청한다. 매콤한 음식과 달콤한 디저트를 먹기도 하고, 책이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 공연장을 찾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아름다움에 매혹되거나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과 연대하거나….
사람이 구원을 얻는 방식은 개성만큼 다양하고, 나 역시 여러 방식으로 구원을 찾지만 그중 으뜸을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귀여움과 접촉하기이다. 보자마자 '귀여워!'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는 순간이, 그 순간을 불러오는 귀여운 존재가 나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
아기띠 바깥으로 삐져나와 달랑거리는 작고 통통한 발, 불빛을 따라 움직이는 고양이의 눈동자, 먹이통에 머리를 박고 있는 햄스터의 엉덩이, 곤히 잠든 조그만 생물의 얼굴…. 삶이 고단할 때 귀여운 것을 보면 마음이 풀어지고, '이런 귀여움이 존재하는 세상이니 조금 더 살아볼까?' 싶어진다.
나는 올해 2월 21일부터 매일같이 나를 구원해 주는 존재와 함께 살고 있다.
2015년 11월 26일에 태어난 재패니즈 스피츠, 뭉구는 귀여움으로 내 마음을 장악한 수컷 강아지다. 원래도 강아지를 좋아했지만 실제로 곁에 두고 보노라니 과연 이것은 이 세상 귀여움이 아니어서,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개는 내 강아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가슴으로 느꼈다.
남들 눈에는 '그게 그거'일 사진을 하루에도 수십, 수백 장씩 찍다 보니 웹하드에 자동으로 저장된 사진을 정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미루고 미루다가 마음먹고 정리를 시작했는데, 뭉구가 우리 집에 처음 온 날 저녁부터 시간순으로 정렬된 사진들을 쭉 훑고 나자 그만 가슴이 뻐근해졌다.
뭉구의 변화와 성장이 새삼 눈에 들어온 까닭이다.
첫 산책 때 뭉구는 잔뜩 겁먹은 얼굴을 하고선 도통 걸으려고 들지 않았다. 내 발치만 빙빙 맴돌면서 이따금 바닥을 킁킁거리고, 내가 주는 물과 간식을 받아먹으며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랬다. 지금은 내가 리드줄만 잡아도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뭉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조그맣고 겁보였던 시절이.
자주 "뭉구는 미소가 기본 표정이에요"라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이전 보호자가 데려온 뭉구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 영문을 모르고 불안한 눈빛으로 멀뚱거리던 아기 뭉구의 표정이 생생히 떠올랐다. 불안이 서려 어색하던 미소가 언제 이렇게 환하게 변했을까. 언제 털이 이렇게 풍성해지고, 다리가 길쭉해지고, 몸집이 커졌을까.
몸무게를 잴 때면 "우와, 이제 다 컸네. 강아지가 아니라 개다!" 말하면서도 우리 뭉구는 강아지라고, 아가라고 생각했다. 개의 평균 수명과 성장 속도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애써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사진을 보고 새삼 깨달았다.
뭉구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흐른다는 사실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아무리 좋은 것을 먹이고
매일매일 안전에 유의하며 같이 산책을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뭉구에게 쏟고 있지만 아무리 주어도 뭉구에게 받는 것이 더 커서, 잠든 뭉구의 얼굴만 봐도 울컥할 때가 있다.
너는 나에게 최고의 강아지인데,
나는 너에게 최고의 반려인일까?
하고많은 사람 중에 하필 나를 만나서 네가 덜 행복할까 봐 미안해.
그렇다고 함께 있는 시간을 미안한 마음으로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다.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성장을 놓치고 싶지도. 그래서 쓰기로 했다. 혼자 미안해하거나 우울해하는 대신 우리 뭉구가 얼마나 귀여운 강아지이고, 귀여움이 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고 있는지,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따뜻한지 기록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뭉구야,
내일도 맛있는 맘마를 먹고, 즐거운 산책을 하자. 노즈워크랑 터그놀이도 하고, 누나표 간식도 먹고, 졸리면 푹 자자.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고맙게도 내 곁에 네가 와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단다.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누나랑 같이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