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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란 Sep 30. 2016

발견의 명수

나는 계절이 변하는 줄도 몰랐는데

어제와 같은 길을 산책해도 뭉구는 항상 걸음이 바쁘다. 짧으면 한 시간, 길면 두 시간쯤 되는 산책 시간 동안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꽃구경도 해야 하고,


풀 냄새도 맡아야 하고, 


길고양이와 마주치면 아는 체도 꼭 해야 한다.


매일 무어가 그리 새롭고 신기한지, 쉼 없이 코를 킁킁거리며 나는 그냥 지나쳐 버린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는 뭉구. 매번 뭉구보다 한발 늦게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늘 주변에 있었는데도 놓치고 만 아름다움이 너무 많다는 걸, 당장 코앞에 닥친 일에만 매달려 사방 열 걸음 바깥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는 걸, 계절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모르고 일 년을 보내는 해가 많았다는 걸….


하지만 뭉구가 온 뒤로는 거의 매일 산책하면서 아름다운 것들을 잔뜩 보고 있다. 집에 콕 박혀 일하느라 입으로만 꽃구경을 다니던 내가 올봄에는 탐스러운 장미도 실컷 봤고, 길가에 자주 보이는 예쁜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찾아보게 되었다.


소담한 장미
올망졸망한 수레국화
고운 죽단화

그리고 하늘.

하늘을 자주 올려다본다.


그날그날 일정과 날씨에 따라 다양한 시간대에 산책을 나가다 보니 이른 아침과 낮, 오후, 저녁, 밤의 하늘을 수시로 마주하는데,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이 얼마나 예쁜지 자연스레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눈보다는 코로 세상을 보는 뭉구는 머리 위보다 발밑에 더 관심이 많지만 말이다.



물론 뭉구도 발밑이 아닌 머리 위를 빤히 쳐다볼 때가 있다. 


팔랑팔랑 날아가는 나비를 봤을 때라든가 하늘을 나는 새 혹은 비행기를 발견했을 때, 평소에는 보기 힘든 특별한 대상이 눈에 띌 때는 반드시 고개를 든다. 이를테면 최근 뭉구는 무엇을 보았는지 나무 위를 주시하며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때 뭉구의 시선이 가닿은 곳에는 요 녀석이 있었다. 



바로 청설모!


고개를 갸웃거리며 뭉구를 내려다보는 작은 청설모와 난생처음 본 청설모를 황홀하게 올려다보는 뭉구가 어찌나 귀여운지, 나는 귀여움이 다른 귀여움을 바라보는 귀여운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뭉구의 발이 다시 움직이기 직전에 가까스로 사진을 남겼다. 이건 찍어야 한다는 집념으로. 그렇게 찍은 사진이 위의 두 장인데, 음,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가 몹시 자랑스럽다. 


힘들 때 꺼내 볼 수 있는 희망의 원료를 또 하나 건졌으니까.


연일 참담한 소식이 쏟아지고, 악행을 비열함으로 덮으려는 수작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그래도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고 살아가려면 도토리를 주워 모으는 청설모처럼 부지런히 희망을 원료를 주워 모아야 한다. 내가 사는 이곳, 이런 시대에도 귀여움이 다른 귀여움을 알아보는 순간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거대한 위협 앞에서도 희망과 위트를 잃지 않고 더 나은 시대로 나아가기 위하여. 


그러니 뭉구야, 내일도 한껏 귀엽도록 하자.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모아 둘게. 좀 허풍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누나는 제법 진지하게 믿고 있거든. 언젠가는, 언젠가는 분명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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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이 나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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