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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란 Sep 18. 2016

개에게도 표정이 있다

섬세한 감정만큼이나 풍부한 표정이

에게도 표정이 있다.


이게 무슨 당연한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겠으나 세상에는 이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는 사람이 적지만은 않은 듯하다. 개를 그저 판매하는 상품으로 여기거나 마냥 귀여운 인형 혹은 주인에게 무조건 충성해야 하는 노예쯤으로 대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참담하고 아득해진다.


개가 보호자를 잘 따르고, 인형처럼 귀엽다는 점은 어떤 부분에서 분명 사실이지만 그것이 '개'라는 동물을 정의하거나 대변하지는 않는다. 개는 원래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생물이 아니다. 그냥 데려다 놓으면 알아서 똥오줌을 가리고 재롱을 떠는 존재도 아니다.


아주아주 귀여운 만큼 어마어마한 말썽을 피우기도 하고, 말썽을 피우다가 기어이 사고를 쳐서 다치기도 하며, 병들어 아프기도 하는 네발짐승. 아플 때 아파하고,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할 뿐 아니라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생명체


개.


개와 함께 지내다 보면 개가 드러내는 여러 감정을 자연스레 목격하게 된다.


무서우니 빨리 안아주개!
호기심이 폭발하개
훗, 까짓것 식은 죽 먹기개
지금까지 이런 격렬한 분노를 느껴본 적이 없개!
세상 나른하개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미치도록 먹고 싶개


저마다 감정의 결이 다른 표정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사실이 피부에 와 닿는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처음에는 그냥 <웃는다, 화났다, 불안하다> 정도로만 보이던 표정들이 더 세밀하게 구분되기 시작한다. 같은 <웃는다>여도 때로는 반가움이, 때로는 만족감이, 때로는 신남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지난번 발행한 첫 글을 쓰려고 뭉구 사진을 정리할 적에, 압도적으로 많은 웃는 사진들을 거의 지우지 못한 연유도 이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 눈에는 그게 그거일 미소 속에 어찌나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는지, 요리 보고 조리 봐도 귀엽지 않은 사진이 없…. 


흠흠, 여하간 비슷한 표정 속에 존재하는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는 기쁨은 늘 예상보다 크다. 매일 보는데도 순간순간 "귀여워!"를 연발하며 셔터를 누르는 반려인들은 아마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개에게도 표정이 있다. 그들이 느끼는 섬세한 감정만큼이나 풍부한 표정이. 


비록 말은 못 하지만 개는 항상 마음을 표현한다. 표정으로, 몸짓으로, 그래도 안 되면 울음까지 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신호를 보낸다. 그러니 자신의 강아지보다 강자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먼저 그것을 알아봐 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유자로서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로서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포착해 보살펴야 한다고


물론 사람이 개의 신호를 다 이해하기는 힘들다.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끼리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데 하물며 개와의 소통은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보호자가 이해하려 들지 않으면 개―특히 가정견―는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큰 위협을 받는다. 곁에 있는 사람이 신호를 알아듣지 못하거나 미리 챙겨 주지 않으면 배고픔도, 갈증도, 통증도 해소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고독해지고 만다. 개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보호자가 반려견을 위해 노력할 때, 개와 인간은 비로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게다가 노력을 지속하다 보면 감히 온전히 이해했다고 자부할 만한 표정과 마주치는 순간이 온다. 눈빛만 봐도 마음이 느껴지는 그런 순간이. 그럴 때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즉시 반응한다. 오직 그 순간에만 정확한 의미에서 내 귀여운 강아지에게 응답할 수 있으므로.


바로 이렇게!



그으래, 나도 너 좋아!
사랑한다 내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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