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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란 Oct 03. 2016

산책하는 강아지의 다섯 가지 즐거움

개가 개로 태어나 당연히 누려야 할 것

강아지는 언제 가장 신이 날까?


내가 뭉구를 쭉 지켜본 바에 따르면 그건 단연코 산책 시간이다. 그야 좋아하는 간식을 줄 때나 집에서 공놀이를 할 때도 신난 표정이기는 하지만, 산책하러 나가자며 리드줄을 집어 드는 순간 얼굴에 떠오르는 설렘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산책이면 그냥 걷는 것 아니냐, 겨우 걷는 게 뭐가 그리 신나겠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참 할 말이 많다.


산책하는 동안 뭉구는 따스한 햇살과 청량한 바람을 쐬며 걷는 일 말고도 다양한 즐거움을 누린다. 그것을 하나하나 전부 열거하자면 못해도 사흘 밤낮은 꼬박 걸릴 테니, 크게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누어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하나, 바깥 구경

사람이나 강아지나 평소와 다른 풍경을 목격하면 재미있는 법! 


더구나 강아지들은 사람과 시선의 높이가 다르다 보니 내 눈에는 아무렇지 않은 광경도 뭉구 눈에는 신기해 보이는 일이 왕왕 있다. 요즘은 늘 다니던 산책로에 조금씩 공사가 진행되는 모습이 너무너무 신기한 모양인지, 꼭 한참을 바라보다가 헤헤 웃으며 돌아선다. 이따금 산책을 겸해서 조금 멀리 외출한 날에는 더 신이 나서 무엇이든 열심히 구경하기도 한다. 


저게 누나가 좋아하는 슈크림인가 보개!



둘, 노즈 워크

노즈 워크(nose work, 더 자세한 정보는 이쪽)란 강아지가 코를 사용해서 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강아지는 로 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강아지가 스스로 세상을 파악하고, 세상 속에서 활동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면 노즈 워크가 필수적이다. 뭉구만 봐도 눈으로 구경하는 시간보다 고개를 숙인 채 코를 쓰며 이동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때로는 한자리에 오래 멈춰 서서 킁킁거리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에는 뭉구가 만족하고 다시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 주면 무척 좋아한다.



셋, 강아지 친구와 인사

뭉구는 다른 강아지와 만나는 걸 무척 좋아한다. 저 멀리 강아지 친구가 보이면 얼른 인사하고 싶다며 끙끙거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사실 뭉구는 상당한 겁보여서 4, 5개월 무렵에는 멀리서 작은 요크셔테리어만 나타나도 벌벌 떨었다. 상대 개가 아무리 짖어도 마주 짖기는커녕 꼬리를 내리고 숨기 바쁘던 뭉구. 그러던 녀석이 어느새 자기보다 덩치가 큰 골든 레트리버에게도 꼬리를 치며 다가간다. 매일 산책하면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는 사이 자연스레 달라진 것이다.


가끔 인사를 할 생각이 없는 친구들을 만나면 아쉽게 돌아서기도 하지만 처음 만난 강아지들이 상대 개의 냄새를 맡고, 제 냄새도 맡게 해주며 코 인사를 나누는 광경은 언제 봐도 귀엽다.



넷, 에너지 분출

개는 산책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보호자와 보조를 맞추어 타박타박 걷기도 하고, 엉덩이를 씰룩대며 빠르게 앞서 나가기도 하고, 달릴 수 있는 곳에서는 날쌔게 달리기도 하며 에너지를 뿜어낸다. 


어디 그뿐인가. 발을 움직이는 틈틈이 계속 노즈 워크를 하고, 친구와 인사하고, 마킹과 배변 활동까지 해야 하니 에너지를 아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에너지 분출은 스트레스 해소로도 이어진다.



다섯, 꿀잠

산책은 비단 산책하는 동안뿐만이 아니라 산책을 마치고 난 뒤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마음껏 에너지를 뿜으며 스트레스도 해소했겠다, 누나가 챙겨주는 맛있는 맘마도 먹었겠다, 아아,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스르르 잠이 쏟아지니 산책의 마무리는 꿀잠일 수밖에 없다.


이 정도면 내가 강아지여도 산책을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길 듯싶은데, 사실 나 역시 뭉구와 같이하는 산책이 즐겁기는 마찬가지다. 


<발견의 명수> 먼저 본 분은 이미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시겠지만, 가장 큰 즐거움을 꼽으라면 바로 내 강아지가 세상 행복해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매일매일 새롭게 즐거워하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즐겁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더구나 강아지에게 산책이란 '그냥 걷는' 일이 아니다. <세나개>라는 약칭으로 유명한 방송 프로그램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강형욱 훈련사는 산책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강아지가 집을 나와 어딘가를 걷는 일 속에는

집에 어떻게 돌아갈지 고민하는 과정도 들어 있고, 자기 집을 둘러싼 냄새들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는 일도, 그곳에 자기 냄새를 묻혀서 이곳을 지나갈 다른 강아지에게 자신의 정보를 전달하는 일도 들어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네 발바닥이 지면에 닿으면서 세로토닌(행복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산책은 개가 개로 태어나서 마땅히 누려야 할 즐거움이자 삶의 필수 조건이다. 그들이 인간과 함께 산다고 해서, 내가 개의 보호자라고 해서 그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행복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걸 모두가 깜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아지에게 산책이란
산책 그 이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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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이 나를 구원한다


*본 글의 제목은 김연수 작가의 단편 소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에서 빌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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