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이 폭발한다
옷이든 액세서리든 몸에 무언가 걸치는 것을 좋아하는 강아지가 있을까?
본디 그것이 필요하도록 태어난 동물이 아닌 만큼, 아마도 별로 없겠지 싶다. 하지만 인간 사회 속에서 가정견으로 길들여져 살아가는 현대의 강아지들은 사람이 의복을 착용하는 이유와 비슷한 이유로 옷을 입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추위나 더위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아플 때 더욱 안전하고 편안하기 위해, 나아가서는 모습이 더욱 돋보이도록 용도며 목적에 맞는 다양한 옷과 장신구를 착용한다. 어떤 이유로 반려견에게 무엇을 입힐지는 오로지 보호자에게 달린 문제인데, 앞의 두 가지 이유에는 많은 반려인들이 동의하는 반면 마지막 이유에 대해서는 각자 조금씩 생각이 달라 보인다.
나는 뭉구에게 옷은 입히지 않지만 가끔 장신구는 착용시킨다. 뭉구는 장모종에 이중모여서 털을 밀지 않는 한 겨울에도 외투가 필요하지 않고, 여름에는 옷 대신 천연 방충제를 신경 써서 뿌려주는 것으로 옷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딱히 옷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다.
물론 한눈에 반할 만큼 귀여운 강아지 옷을 보면 '우, 우리 뭉구도 입히고 싶다!'라는 내면의 소리가 심장을 쾅쾅 두들긴다. "안녕하세요, 저 강아지 옷인데요, 제가 지갑 좀 열어도 되겠죠?" 사뭇 강렬한 노크에 지갑은 물론 통장까지 내어드리고 싶을 때도 많다. 하지만 뭉구가 불편해하는 일은 되도록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커서, 이럴 때마다 뭉구 누나 1과 뭉구 누나 2의 싸움이 격렬하게 일어난다. 아직까지는 매번 뭉구 누나 2가 이겼지만 과연 앞으로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옷은 아직이지만 보타이에 관해서라면 지금도 뭉구 누나 2가 거의 매번 이기고 있으니 말이다.
인식표를 구매했더니 사은품으로 함께 온 보타이를 처음 매 줬을 때 뭉구는,
역시나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런데 이를 어쩌면 좋을까. 팔불출 누나 눈에는 그 모습마저 너무 귀여워서 그길로 보타이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다행히 처음에는 언짢은 심사를 고스란히 드러내던 뭉구도 지금은 약간 성가시지만 그러려니 하는 눈치다. 집에서 보타이를 매면 영 귀찮아하길래 산책하러 나갈 때만 매 줬더니, <보타이=산책>으로 인식하는지 내가 보타이를 들면 리드줄을 보며 꼬리를 치기도 한다.
그리고 산책을 나가면 뭉구는 목에 보타이가 붙어 있건 말건 신나게 논다. 어쩐지 평소보다 더 호들갑을 떨며 "우리 뭉구 예쁘다, 너무 예쁘다!"를 연발하는 누나에게 간식을 받아먹는 즐거움은 보너스다.
어쨌거나 그래도 뭉구에게 보타이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알기에 산책할 때마다 보타이를 매어 주지는 않는다. 새 보타이가 생겼거나 유독 날씨가 맑아서 누나의 '찍사' 욕망이 끓어오를 때 주로 보타이를 하는데,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그날 찍은 사진을 열어 볼 때면 참 행복하다.
나의 행복은 뭉구의 행복만큼 중요하다. 우리는 각자의 행복이 곧 서로의 행복이 되는 상생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내가 기뻐하면 뭉구는 그런 나를 보며 기뻐한다. 내가 불안하거나 화가 나 있으면 뭉구도 안절부절못하고 낑낑거리지만 내가 즐거우면 함께 즐겁다. 말썽을 부려놓고도 해맑은 뭉구를 보면 내가 픽 웃고 말듯이, 내가 환하게 웃으면 보타이가 좀 귀찮아도 뭉구는 누나를 봐준다.
그 덕분에 새로 카메라를 장만한 요즘은 뭉구 찍는 재미에 더 빠졌다.
굳이 따지자면 내 눈에 뭉구는 보타이를 안 해도, 모래밭을 뒹굴고 모래투성이로 달려와도, 목욕하느라 털이 쫄딱 젖어 반쪽이 됐을 때도 다 귀엽다. 하지만 귀여움에 보타이를 더하면 정말이지 귀여움이 폭발하는 느낌이다. 뭘 또 이렇게까지 귀여울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라고나 할까?
답답하다 못해 참담한 소식이 많이 들려오는 요즘, 어떤 식으로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구원해주는 존재는 누가 뭐래도 내 강아지다. 그러니 뭉구야, 누나의 심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이주일에 한 번, 조금 욕심 낸다면 일주일에 한 번쯤은 누나에게 궁극의 귀여움을 보여주지 않을래? 누나가 이렇게 부탁할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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