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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란 Oct 25. 2016

늙고 병들어도 괜찮아

내 동생, 내 아가, 나의 구원

가끔이지만 포털 사이트나 추천 채널 같은 데 글이 소개되면 평소보다 훨씬 많은 댓글을 보게 된다. 이곳에서처럼 한 분 한 분 답글을 드리지는 못해도 찬찬히 읽다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곤 하는데, 특히 하늘나라로 떠난 자신의 반려견을 떠올리며 적어 주신 댓글들은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은 이것이었다.


사람 나이로 아흔 살쯤 되었을 때도 저희에게는 사랑스러운 아가였어요. 실제로도 많이 아파서, 사람 손길이 손길이 안 갈 수 없는 갓난아기가 되기도 했구요. 뭉구도 영원히 누나의 사랑스러운 아가로 기억되길!


짧지 않은 댓글이었던지라 토씨 하나까지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이것과 거의 동일했다.  


그리고 얼마 전, EBS에서 방영하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의 "늙은 개, 널 기억할게" 편을 보았다. '보면 분명히 울겠지.'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더 크게 오열했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씻자마자 나는 벼르던 일을 실행에 옮겼다.


뭉구 앞으로 통장 개설하기.


다음 달 26일이면 드디어 한 살이 되는, 뭉구는 어린 개다.


아직 뭉구는

넘치는 에너지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리 밑이 너무 궁금하개
저쪽이 너무 궁금하개


간식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손에 쥔 간식을 어서 내놓으시개


내가 부르면 환하게 웃고

누나?


또 힘차게 달려오지만

누나! 나 불렀개?


언젠가 뭉구는

뭐가 못 견디게 궁금해도 마음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간식을 씹어서 입에 넣어 주어도 잘 삼키지 못하고, 뛰기는커녕 내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지조차 모르게 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말도 안 되는 상상이 아니며, 아픈 개에게는 흔한 예상보다 훨씬 큰돈이 든다. 그러니까 미래의 어느 날에, 내가 적어도 돈이 없어서 뭉구의 고통을 줄여주지 못하거나 행여 이별할 날을 앞당기지 않도록 나는 대비를 해야 한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픔을 감당할 만한 여유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뭉구.

내 동생, 내 아가, 나의 구원. 


어쩌면 너는 큰 병 없이, 건강하게 늙어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네가 아무리 건강해도 늙은 너는 아주 어린 시절의 너처럼 사람의 손길이 더 많이 필요한 강아지가 된단다. 그러니까 사실 생각해 보면 네가 아무리 늙고 병들어도 너는 여전히 내가 돌봐주어야 할 귀여운 강아지일 따름이고, 나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너에게 기울일 거야.


그런데, 그래도 말이야,

되도록이면 우리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같이 살자. 알았지?


평생 귀여울, 내 소중한 강아지.

뭉구야,


누나는 널 너무너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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