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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Oct 24. 2021

헤매야 보이는 반짝이는 풍경,『길잃기 안내서』

리베카 솔닛의『길잃기 안내서』를 읽고 

  어릴 적에 우물 열 개를 찾다가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12살이었다. 학교에서 마을을 탐방하라는 숙제를 내줬을 때였다. 우리 조의 여섯 명은 동네에 있다는 우물 열 개를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우물이 있다는 마을 이름도 ‘열우물’이었다. 아련한 이름, 내가 살던 동네 맞은편에 있던 그린벨트 지역.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우물 열 개를 찾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내려오던 곳. 정말로 우물이 열 개였는지는 모른다. 우물 열 개를 다 본 사람은 없다고 했다. 어쨌든 그때 내겐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었다. 그래서 모든 우물을 찾고 싶었다. 


  그 마을에 사는 애들 집에는 옥수수밭이 있었다. 그들은 옛날 방식대로 살았다. 밭을 일궜으며 소도 키웠다. 그곳을 빼면 우리 동네는 도시였다. 우리 집 근처에는 아파트와 도로, 백화점, 자동차 공장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 애들에게도 열우물은 미지의 세계였다. 어떤 애는 밤에 그곳에서 귀신을 봤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진 않았다. 밤엔 누구도 그곳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열우물엔 가로등도 거의 없었다. 어린이 혼자선 가면 안 되는 동네였다. 저녁엔 어른도 그곳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애들이라도 여섯 명이면 괜찮을 것 같았다. 학교를 마치고 오후 두시쯤 우리는 열우물로 향했다. 


  학교 바로 옆에는 도로가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산이 보였다. 열우물 동네 입구였다. 들어서자 산에서 자라는 나무 냄새가 코끝으로 밀려들어왔다. 가로수와는 다른 냄새, 숲과 나무와 야생동물이 주인인 땅의 냄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산은 백두대간 줄기 중 일부라고 했다. 우리는 길가에서 마주친 할머니에게 우물의 행방을 물었다. 할머니가 답했다. “우물은 이젠 없어.” 


  그 옆의 할머니가 말했다. “뚜껑으로 다 막아놨어. 하지만 저 산 쪽으로 들어가면 아직 2개는 남아 있어.” 그 옆의 옆의 또 다른 할머니가 말했다. ”지금은 가지 마. 밤은 위험해.” 평상에 걸터앉아 있던 다른 할머니도 거들었다. “거기엔 여우가 나와. 여우는 어린애들을 특히 좋아해.” 아니, 그 한적한 동네에 할머니가 네 명이나 있었다고? 그때를 돌이켜보면 꿈이라도 꾼 건가 싶다. 


  나는 홀린 듯이 애들에게 말했다. “우리 가보자.” 그날 일행 중에는 내 짝꿍도 있었다. 그 애는 상냥한 성격으로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학교에는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다가 땀이 나면 셔츠를 벗는 남자애들이 있었는데, 그 애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쌍꺼풀 없이 길쭉한 눈 밑엔 눈물점이 있었다. 그 애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내가 같이 갈게.” 다른 애들도 대답했다. “우리도!” 


  헤매다 해가 떨어질 즈음 이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육중한 뚜껑으로 덮인 폐쇄된 우물을 발견했다. 우물 앞에서 남자애가 말했다. “우리 나중에 결혼할래?”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우물 열 개를 찾으면 빌고 싶었던 소원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날 우리 여섯 명은 밤하늘에 뿌려진 별들을 보았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거 북두칠성이야.” 언젠가 식탁 위에 소금통을 엎은 적이 있었는데 꼭 그때 생각이 났다. 마치 검은 색상지에 소금을 엎은 것처럼 많은 별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제 열우물 동네는 더는 시골이 아니다. 길은 매끈하게 닦였고, 가로등이 규칙적으로 들어섰다. 건물과 펜션, 전원주택도 자리 잡았다. 토양 오염으로 인해 약수터들은 대부분 폐쇄됐다. 고등학생 때 한 번 마을버스에서 우연히 그 애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지만 우리는 인사하지 않았다. 그 뒤로 그 애를 마주친 적은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길을 잃어버린 적이 거의 없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되니까. 나는 모르는 지역에 갈 때마다 구글 맵을 연다. 모두 길을 이탈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서른까지 1억은 모아야지. 무슨 차 살 거니? 커리어 계획은 어때? 월급의 얼마는 투자할 줄도 알아야지… 나 또한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얼마 전에 리베카 솔닛의 책 『길잃기 안내서』를 잃었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길을 잃는 것, 그것은 관능적인 투항이고, 자신의 품에서 자신을 잃는 것이고, 세상사를 잊는 것. 지금 곁에 있는 것에만 완벽하게 몰입한 나머지 더 멀리 있는 것들은 희미해지는 것이다. 베냐민의 말을 빌리자면 길을 잃는 것은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고,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미스터리에 머물 줄 아는 것이다.” 


  길을 잃으면 나타나는 낯선 것들이 있었다. 그 낯선 것들을 홀린 듯 바라보다 감탄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이전의 나와는 약간은 달라져 있었다. 지금은 길을 잃어버리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그런데도 때로는 잠깐이라도 길을 잃어버리고 싶어진다. 실제론 없는지도 모를 열 개의 우물을 찾다 보면, 밤하늘에서 새로운 별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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