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향모를 땋으며』를 읽고
손을 내밀어 보세요. 갓 뽑아 마치 방금 감은 머리카락처럼 하늘거리는 향모 한 다발을 올려드릴게요. 윗부분은 황금빛 감도는 반짝거리는 초록이고, 땅과 만나는 줄기는 자주색과 흰색 띠를 둘렀어요. 향모 다발을 맡아보세요. 향모의 학명이 왜 Hierochole odorata(향기롭고 성스러운 풀)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저희 말로는 윙가슈크라고 해요. 감미로운 향기가 나는 어머니 대지님의 머리카락이라는 뜻이에요. 향모를 코에 대고 숨을 들이마시면, 잊은 줄도 몰랐던 것들이 기억나기 시작해요.
『향모를 땋으며』, 로빈 월 키머러
출산 전 마지막으로 읽을 딱 한 권을 고르라면, 『향모를 땋으며』를 읽으려 한다. 원제는 Braiding Sweetgrass, 부제는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식물학자이자 인디언인 작가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이 담겨 있다. 그리고 위 문장은 『향모를 땋으며』의 머리말이다. 머리말을 읽으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향모가 내 두 손바닥에 놓이는 것 같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풀 향기가 나를 감싸는 기분이다.
"엄마, 식물생태학자, 작가이자 뉴욕주립대학교 환경생물학과의 저명 강의 교수. 아메리카 원주민인 포타와토미족 출신으로, 자신을 키운 것은 '딸기'라고 말한다." 저자인 로빈 월 키머러의 소개글이다.
'나를 키운 것은 딸기.' 이 아름다운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딸기와 나무와 강과 햇볕이 함께 우리 아기를 키워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훗날 우리 아기가 어른이 되면, 자기를 키운 것은 무엇이라고 말하게 될까? 그게 자연이라면, 세상의 따뜻한 사랑이라면 좋겠다. 그러나 부디 샤넬, 나이키, 에어컨, 돈, 학원, 과외, 인터넷, 문제집이라고는 말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 아기가 이 땅과 연결되어 튼튼하게 자라면 좋겠다.
나는 우리 아기에게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들을 선물해주고 싶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은 부모의 사랑만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오직 엄마 아빠의 사랑만 공짜라고 가르친다면, 아이가 얼마나 협소하고 고립된 가치관 속에서 자라게 될까? 한 아이가 잘 자라려면 마을이, 학교가, 세상이 더불어 도와야 한다.
나는 아기가 개울에 발을 담그고, 가을 밤을 따고, 향기로운 풀 냄새를 맡고, 구름 가는 모양을 구경하며, 자기가 씨앗 뿌린 고구마가 커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건 모두 공짜니까. 사람으로 태어나면 세상으로부터 공짜로 선물 받을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배웠으면 한다. 아이가 그 기쁨과 고마움을 온전히 누리게 해주고 싶다.
책 43쪽부터 '딸기의 선물' 장이 시작된다. 작가에게 딸기는 세상의 선물이다. '선물이 발치에 한가득 뿌려져 있는 세상'이라는, 작가의 세계관을 처음으로 빚어낸 것도 딸기였다. 선물은 어떤 행위의 대가나 보상으로 오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공짜로 베풀어져 온다. 쉰을 넘긴 작가는 여전히 야생 딸기밭을 보며 경이로워한다. 딸기는 빨강과 초록으로 둘러싸인 선물이자, 세상이 베푸는 너그러움과 다정함이다.
딸기의 달을 쉰 번 겪은 지금도 야생 딸기밭을 보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온통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감싼 뜻밖의 선물이 베푸는 너그러움과 다정함에 겸손과 감사를 느낀다.
"정말이야? 나를 위해서? 내게 그런 자격이 있을까?"
50년이 지났는데도 딸기의 너그러움에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까 생각한다. 가끔은 바보 같은 질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답은 간단하니까. 먹어.
『향모를 땋으며』,45쪽
내가 세상으로부터 공짜로 받은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퍼뜩 생각나는 것은 할머니가 계절마다 보내주시던 해산물과 나물이다.
전라남도에 계신 할머니(엄마의 엄마)는 직접 농사지은 쌀과 바다에서 나는 음식을 보내주셨다. 우리 집은 한 번도 쌀을 사서 먹지 않았다. 쌀은 그저 '받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우리 남매가 밥 한 톨도 남기지 않도록 지켜봤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직접 길러서 보내주신 거니까 다 먹어야 해." 이따금 할머니는 제철 바지락과 '계두'도 보내주셨다. 큐브 모양으로 얼린 하얀 계두를 냉동실에 넣어놓고 몇 계절을 먹었다. 당시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나중에 식당에서 키조개 관자를 먹고 나서야, 그게 계두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고작 계두 몇 조각만 넣어도 음식값이 확 뛰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집에서 미역국에 넣어 듬뿍 먹던 것인데... 하지만 이제는 남해도 오염된 지 십수 년이 흘렀다. 바지락과 계두로 명성을 떨쳤던 할머니댁 마을에선 더는 예전만큼 어패류가 잡히지 않는다. 어쨌든 지금까지도 할머니는 직접 수확한 식재료와 직접 담근 김장을 싹싹 긁어 자신의 딸과 아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신다. 게다가 손녀인 내게도 따로 매년 쌀을 보내주신다...
경상남도에서 평생을 사셨던 할머니(아빠의 엄마)는 종종 직접 만드신 도토리묵과 나물을 보내주셨다. 엄마가 나고 자란 마을에는 해수욕장과 갯벌이 있는 반면에, 아빠의 고향은 산과 논밭으로 둘러 쌓여있다. 특히 내 동생은 양가 할머니들의 음식을 골고루 참 좋아했다. 보내주신 나물과 묵을 언제나 맛있게 싹싹 먹었다. 아빠는 젊은 시절에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왔지만, 언제나 고향을 사랑했다. 과거 명절에는 시골에 빨리 가기 위해 우리 남매 학교도 조퇴시키려고 했다. (물론 학교를 뺄 순 없다고 엄마가 뜯어말렸다...) 할머니댁 마당의 담장 옆에 있던 커다란 감나무가 생각난다. 할머니댁 지대는 높고, 감나무는 마당 옆 낮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마당에 서면 곧장 감을 딸 수 있었다. 그 감은 공짜였다. 하지만 어느 해에 나무가 벼락을 맞은 뒤로부턴 감이 열리지 않더라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나는 중학생까지 주말이면 동생과 함께 아빠차를 타고 놀러 다녔다. 봄에는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강화도의 들에서 쑥을 캐고, 캐온 쑥을 방앗간에 맡겨 쑥떡을 만들어 먹었다. 여름엔 강에서 놀고, 가을에는 파주의 밤나무 숲에 놀러 가 떨어진 밤을 운동화로 깠다. 시장에서 산 밤보다 내가 깐 밤이 더 맛있었다. 겨울엔 꽁꽁 언 저수지에서 아빠가 만들어준 나무 썰매를 타고 놀았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에겐 돈도 많지 않았고, 물질적으로 참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도시에서 자란 내가 어릴 적엔 주말마다 원 없이 자연에서 놀 수 있어서 좋았다.
나도 곧 태어날 우리 아기에게 자연을 향한 존중과 사랑을 배우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