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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Oct 25. 2021

여행하는 과정을 여행한 사람들,『투바』

랄프 레이튼의 『투바, 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을 읽고

19살 때 처음 랄프 레이튼의 『투바, 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을 읽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투바'라는 나라에 가기 위해 고군분투한 여행기다. 파인만은 양자 전기역학 이론으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다. 그는 친구 랄프 레이튼과 ‘탄 누 투바’란 나라를 여행하려고 했다. 투바는 시베리아에 있는 러시아 연방 공화국이고, 과거엔 소련의 위성 국가였다. 두 사람은 투바 수도인 키질의 철자를 매우 흥미로워했다. “모음이 없는 곳이라니 얼마나 재밌겠어?” 그렇다. 키질(Kyzyl)에는 모음이 하나도 없다. 


당시엔 냉전 시대라서 미국인은 소련에 가기 어려웠다. 하지만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 전기역학 이론으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가 물리학자라는 권위를 내세웠더라면 어디든 갈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거야말로 재밌는 문제를 지루하게 푸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바에 가는 승인을 얻어내기까지 11년이 걸렸다. 물론 파인만은 투바 땅을 밟지 못했다. 답사 승인을 받기 2주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농담을 정말 좋아해서, 아플 때마저도 농담을 즐겼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투바에 가려는 파인만의 열망엔 학문적,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의심했다. 과학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소련에 간다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파인만은 생전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에요. 그저 희한해서 가기로 한 거예요. 들어보지 못한 땅을 가려는 모험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우리가 하는 일에는 심오한 철학적 의미가 없어요. 그런 걸 따지다간 엉망이 돼요.”


그의 안에는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다는 설렘을 소중히 간직한 소년이 있었다. 아마도 그는 죽을 때까지 그 소년과 함께 살았을 것이다. 


지금껏 나는 쓸모없다는 이유로 버려진 것들을 많이 보았다. 내겐 소중했는데 남들은 가치가 없다던 이유였다. 내가 좋아했던 60권짜리 만화 삼국지는 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버려졌다. 동네 골목길과 친구들이 살던 마당 딸린 집들도 사라졌다. 재개발이 결정된 다음에 포클레인이 들어와 밀어버렸다. 학교 선생님들은 “너희 쓸모없는 사람 되기 싫으면 공부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투바를 알게 된 뒤, 파인만의 삶은 내게 조금은 스며들었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그가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넌 뭐가 궁금해? 어떤 모험을 해보고 싶어? 지금까지 해본 가장 바보 같은 상상은 뭐야? 그걸 해 봐.”  


몇 년 전 월급을 모아 모로코 마라케시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마라케시는 사하라 사막으로 연결되는 도시였다. 나는 사막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고 싶었다. 1박 2일 투어로 가이드와 사막에 들어가 텐트를 쳤다. 그런데 보름달이 밝아서 별을 볼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밤에는 저 멀리 모래 폭풍이 다가올 거라고도 했다. 가이드는 “모래 폭풍을 가까이에서 보는 경험을 해보겠네요.”라고 했다. 그때도 문득 『투바』가 떠올랐다. 파인만을 몰랐다면 나는 ‘별을 보지 못했으니 이번 여행은 실패’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모래 폭풍을 만나서 운도 없다며 한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는 대신에 나는 귀에서 쏟아지는 모래를 털어내는 것도 그만두고 모래 위에 누워 하늘을 보다가 새벽을 맞이했다.  


앞으로 나는 어떤 모험을 하게 될까? 남들은 부질없다고 말릴 모험을 3번은 더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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