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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Jul 19. 2021

아마추어가 프로보다 잘하는것

책 『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를 읽고

  얼마 전에 책 『나는 파도에서 넘어지며 인생을 배웠다』를 끝까지 읽었다. 지난해에 사서 1년 만에 다 본 셈이다. 책은 술술 읽히는 쉬운 문체로 쓰였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너무 잦은 인용과 (공자님 맹자님 말씀 같은) 좋은 말들로 가득해서, 250쪽에 걸쳐 비슷한 말이 되풀이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책엔 ‘서핑 덕후’의 상쾌한 에너지가 흘렀다. 이 책은, 좋아하지만 잘 못 하는 일에 열심히 뛰어들라고 권한다. 완벽주의자라면 누리지 못할 행복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책을 쓴 캐넌 리날디는 영화 <매기스 플랜>의 원작자로, 마흔이 넘어서야 서핑을 제대로 시작했다. 어떤 서퍼는 초보인 작가에게 “14살 이후에 서핑을 시작해 봐야 절대로 잘 탈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엔 흘려들어도 좋은 말들이 있다. 오히려 진짜로 새겨들어야 할 말은 ‘서핑은 위험한 스포츠’란 사실이다. “서핑하면서 귀가 잘린 이야기, 고환을 잃어버린 이야기, 항문이 찢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소년은 두피가 벗겨지고 아킬레스건이 찢어졌다.”(65쪽) 듣기만 해도 아프다. 그런데도 작가는 서핑을 멈추지 못한다. 심지어 유방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 도중에, 한쪽 팔이 안 들릴 때도 다른 팔로 보드를 들고 바다로 간다. 이따금 그는 ‘자식을 키우는 마흔 넘은 내가 이렇게 서핑을 즐겨도 좋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지만, 이내 그런 질문은 쏙 들어간다. 

  일단 바다에 나간 초보 서퍼는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봐 두려워할 겨를이 없다. 우선 파도를 붙잡고 일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야 파도를 탈 수 있다. 수십 번 고배를 마신 끝에 운과 기회를 잡아 단 한 번 파도를 제대로 타게 된다면, 서퍼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프로처럼 잘해야만 계속할 자격이 생긴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성과의 압박에 시달리는 프로와는 달리, 아마추어들은 원 없이 즐기며 주변에 행복을 전염시킬 수도 있다. 엉덩이를 어정쩡하게 내민 볼품없는 자기의 자세를 웃어넘기는 중년의 서퍼를 상상해 보자. 평일엔 일하고 아이를 돌보다 주말에 바다로 나와 진지하게 파도를 붙잡는 아줌마와 아저씨 서퍼로 가득한 해변이 있다면, 그런 유쾌한 에너지가 넘치는 바닷마을이 있다면, 나는 그런 곳에서 살아가고 싶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해보고 싶다면 한껏 몰입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곳 말이다. 


  아마도 누구에게나 그런 취미가 있을 것이다. 뭔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을 도무지 멈추지 못해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들. 요리, 달리기, 영화, 수학, 춤… 이게 자격 있는 사람들만의 것일까? 재능을 타고난 소수만의 것이라고? 아니다. 춤과 서핑과 요리…. 이런 것들은 자기에게 매료된 사람을 버리고 도망가는 법이 없다.  


  누군가는 늦깎이 초보자를 ‘바보 같다’고 쉽게 깎아내린다. ‘잘하지도 못하는 걸 뭘 붙들고 있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선 아마도 진즉 자기들이 잃은 야생성을 대담하게 활짝 드러내는 초심자들의 용기가 부러울 테다. 남의 눈과 평가만 신경 쓰다가 흘러버린 세월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남들과 똑같이 진부해진 발걸음으로 걷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즐길 거리를 발견하는 자들을 비웃는 길을 택해버리고 만다.   


  오랫동안 나는 나 자신을 내가 이룬 결과물로 측정했다. 잘 해내고 인정받고 좋은 결과를 얻어야만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나는 자주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자주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듯 불안한 마음으로 살았다. 물론 이런 생각 덕분에 성취한 것들도 있었지만, 일이나 학업에서 내 뜻만큼 만족이 되지 않을 때는 잠을 못 이룰 만큼 고통스러운 적도 있었다.  


  살면서 우리는 온갖 못 하는 일을 경험한다. 못한다고 좌절할 때마다 못하는 것을 인생에서 삭제한다면, 스스로 잘한다(고 착각 하)는 것만 남을 텐데, 그건 괜찮은 삶일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을 적으로 경험하느냐 스승이나 친구로 경험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가 현실을 지각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자신과의 관계에 달렸다.” (136쪽) 못하는 일도 기쁘게 계속할 수 있다면, 모든 경험을 그 순간 내게 꼭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인생이 더욱 나아질 것이라는 그 진부한 말을 믿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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