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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May 19. 2023

하루키에게 배운 글쓰기 방법 4

책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를 읽고

요즘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를 읽는다. 짧은 에세이 모음집이라, 이불에 누워서 읽기에 좋다. 꼼꼼히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는 20년 전인 2003년에 나온 에세이집이다. 부제는 '첫 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에세이 속에서 하루키는 잘난 척을 하지 않는다. 또는, 전혀 밉지 않게 잘난 척을 잘한다. 무엇보다도  하루키는 자기의 약점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드러내는 기술이 있다. 사실은 세간에서 약점이라고 부르는 특징들이, 하루키에겐 전혀 약점이 아닌 듯하다. 그래서 읽다 보면 내 마음도 가벼워진다.  


하루키 책엔 뻔한 계몽적인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이렇게까지 제멋대로 소소한 걸 쓴다고? 팔자 좋네." 싶은 것들을 쓴다. 하지만 제멋대로 쓴 것처럼 보여도, 하루키만의 계획적인 글쓰기 기술이 담겨 있다. 하루키는 (1) 희한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있다. (2) 참신하게 묘사한다 (3) 사물 하나를 붙잡고 깊이 있게 분석한다. (4) 어떤 사물에 덧씌워진 고정관념, 표상에 의문을 제기한다. (5)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도록, 사물의 색감과 모양도 성실히, 늘어지지 않게 묘사한다. 이게 내가 닮고 싶은 하루키의 글쓰기 방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시 자기가 좋아하고 재밌는 걸 써야지 싶다. 



하루키 글쓰기 1. 약점은 딱히 약점도 아니니까 당당하게 밝힌다  


일반적으로 소설가라는 사람들은 아주 이상한(쓸데없는) 일에 연연하는 인종이라 정의해도 좋을지 모른다. 때로는 '왜 또, 뭐 이런' 같은 반응을 부르는 일에 신경이 쓰여 미치려고 한다.
- 20쪽, '불에 태우기'


거짓말하는 게 영 서툴지만, 거짓말 자체는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 148쪽, '새하얀 거짓말' 중


"소설가는 이상한 사람이다!" "나는 거짓말엔 서툴지만 거짓말 자체는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하루키는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재밌고 참신하게 느껴진다. 왜일까? 맞는 정답만 딱딱 골라서 하는 사람들에게선 위선의 냄새가 풍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은 게으르기까지 하다. 제 머리로 생각해서 말하기를 거부하는 거니까.



하루키 글쓰기 2. 닳고 닳은 뻔한 비유는 멀리한다. 


이틀 동안 혼자서 죽도록 먹었다. 괴로웠다. 덕분에 그 후 몇 년은 크로켓이 꼴도 보기 싫었다. 흉악한 크로켓 군단에 둘러싸여 발로 차이는 식의 폭행을 당하는 꿈까지 꾸었다. 
- 114쪽, '크로켓과의 밀월' 


크로켓(크로켓)을 좋아했던 하루키. 어느 날 집 냉장고가 고장 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틀 동안 질리도록 크로켓만 먹어야 했던 날에 관해 썼다. '흉악한 크로켓 군단에 둘러싸여 폭행당하는 꿈을 꿨다.' 자기만 쓸 수 있는 표현을 쓰는 게 좋다. 


도쿄에 온 어느 날, 초밥집에서 '지라시 스시'를 주문했더니, 단촛물밥 위에 생선회며 이런저런 고명을 그저 주욱 늘어놓기만 한 것이어서 깜짝 놀랐다. (...) 지라시의 압도적이기까지 한 콘셉트 차이에는 할 말을 잃었다. 이름은 같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술집에 가서 사진을 보고 늘씬한 '메구미 양'을 지명했는데 비슷하지도 않고 가슴만 큰 '매구미 양'이 나온 것 같은... 이라고 예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려나. 뭐, 됐다. 그건.
- 124쪽, '사람들은 왜 지라시 스시를 좋아하는가' 


일본 관서 지방에서 자라 관서식 지라시 초밥에 익숙한 하루키. 언젠가 그가 도쿄식 지라시 초밥을 먹고 뜨악했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늘씬한 '메구미 양'을 불렀는데, 비슷하지도 않고 가슴만 큰 '매구미 양'이 나왔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것도 자기 식대로 쓴 자기만의 표현이다. 



하루키 글쓰기 3.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성껏 쓴다. 남이 좋다는 것 말고.


몇 년 전에 유행했던 단어,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의 창시자는 하루키다. 책에도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하루키는 소확행을 제대로 누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행복이 제일이야~~ 꿈도 희망도 필요 없어!"라며 포기하듯 말하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하루키의 소확행은 '근본 있는 사람의 행복'이다. 그러니까 그의 행복에는 근본이 있다. 소설을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것으로 읽는 이들에게 작게나마 기쁨과 괜찮은 영향을 준다는 근본 말이다. 그의 속은 도넛처럼 텅 비어있지 않다. 텅 비어있는 채로 소소한 취미에만 몰두하면 그게 무슨 행복일까?  


어쨌든 하루키의 책을 읽다 보면 별별 것을 다 해보고 싶어 진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다시 보고 싶고, 따끈하고 바삭한 크로켓이 먹고 싶어 진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가 연주한 드뷔시의 '판화'를 들어볼까? 브래지어를 태워볼까? 잡지 에디터를 했어도 잘했을 사람이다. 읽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게 하고,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들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일탈(이라고 해봐야 평소 안 먹던 굴튀김 먹어보기 같은 것이지만..)을 하게끔 만드니까. 



하루키 글쓰기 4. 졸면서 본 영화도, 내가 본 영화가 맞다는 사실을 이해시킨다.    


하루키는 고정관념을 있는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 두 눈 부릅뜨고 영화를 보고 필기하며 "저 카메라 기법은 이것이로군!" 분석해야만 완벽히 감상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 책에는 하루키가 빔 벤더스의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본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하루키는 이 영화를 졸면서 봤다. 심지어 몇 번인가 짧은 꿈까지 꾸면서 봤는데도, 그는 영화를 몸 전체로 이해했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렇게 표현한다. "몸의 저 깊숙이까지 배어든 영화의 영양분을 쭉 빨아들인 느낌이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몇 년 전에 <세라비, 이것이 인생!>(2018)이라는 프랑스 코미디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한 지 20분도 안 됐을 때 극장에서 골아떯어지고 말았다. 영화 보기 전날 밤에, 내 생에 처음으로 경찰서에 다녀왔던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 다리와 다른 여성의 다리까지 찍은 몰카범을 잡아 경찰서에 데려간 날이었다. 새벽 1시 넘어서야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고, 지쳐 쓰러져 잤다. 며칠 전에 예매해 뒀던 영화를 취소할 정신조차 없었다. 그게 <세라비, 이것이 인생>이었다. 


결국 나는 이 영화의 첫 20분과 마지막 20분만 봤다. 중간엔 통째로 잠들어 버렸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이 기가 막혔다. 마지막 20분을 보는데도 눈물이 흘렀다. 나는 첫 20분을 봤고, 자면서도 영화의 바이브에 둘러 쌓여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의 멋진 하모니가 내 몸에 전부 흘러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 내가 간과했던 시간들이 소중한 기억으로 바뀐다. 


그럼, 하루키 예찬은 여기까지! 이젠 다른 책도 읽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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