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떤 영웅>을 보고
일요일 낮,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영화 <어떤 영웅>을 봤다. 이란의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2021년 영화다. 이 감독의 이름을 널리 알려준 작품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나는 그의 영화 중에선 <세일즈맨>과 <누구나 아는 비밀>을 봤다. 영화는 한순간 대중의 영웅이 됐다가 추락하는 한 남자의 파국을 따라간다. 보다가 괴롭고 답답해서 이마에 땀까지 맺혔다.
주인공 '라힘'은 빚을 갚지 못해 고소를 당하고 감옥에 갇힌 재소자다. 살짝 굽어있는 어깨, 천진난만한 미소에서 비굴함과 안쓰러움이 풍겨 나온다. 영화는 감옥에서 얻은 며칠간 휴가를 틈타 매형을 만나러 가는 라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매형은 이란의 성지를 발굴하는 것으로 보이는 공사 현장의 높은 곳에 있다. 카메라는 계단을 오르는 라힘을 한참 비춘다. 그런데 막 올라온 라힘에게 매형이 말한다. “이제 내려가자.” 라힘이 올라가려는 곳이 얼마나 가닿기 힘든지, 정상에 머물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그리고 곧 내려오게 될(추락하게 될) 라힘의 처지를 상징하는 듯하다.
그즈음 라힘의 여자친구는 거리에서 주인 잃은 금화 가방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이를 팔아 보석금을 마련하려 한다. 하지만 라힘은 금화 가방 주인을 찾아주기로 마음을 먹는다. 금 시세가 떨어지고 금 거래소의 계산기가 고장 나는 등, 몇 가지 우연이 겹쳤기 때문이다. 라힘이 시내 곳곳에 가방 주인을 찾는다는 전단지를 붙이자, 한 여성이 연락을 해온다. 재소자인 라힘의 선행이 대중에 알려진다. TV 인터뷰에 응하고 표창장도 받으면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라힘은 정부 기관으로부터 선행의 증거를 요구받게 된다. 임기응변으로 상황으로 모면하려다 보니 거짓말을 하게 되고 일은 자꾸만 꼬여간다. 라힘이 간과했던 몇 가지 실수들은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킨다.
영화가 끝나고 이동진 영화평론가와 김중혁 소설가의 GV가 이어졌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2가지를 더 생각해 보게 됐다.
첫째, 이 영화는 도덕적 질문을 던진다. 최종 목표와 결과가 정직하고 올바르면, 과정에는 거짓이 있어도 괜찮은가?
둘째, 어리숙한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관대하지 않은 시선을 돌아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라힘의 어리숙함에 답답했다. 게다가 진실할 거면 줄곧 내내 진실할 것이지. 왜 저 타이밍에 저런 바보 같은 선택을 한 거야? 당장 앞만 보는 흐린 판단력, 평판이 떨어질까 조바심 때문에 내린 잘못된 결정, 옆에서 누가 박수 쳐주고 칭찬해 주면 쉽게 흔들리는 팔랑귀, 명예욕. 이런 부분들 때문에 그의 선량함을 증명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세상엔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실 라힘이 지닌 결함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라힘이 한 정도의 위기 모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고, 저 정도의 거짓말은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무엇보다 저 정도의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모두가 라힘과 같은 곤경에 빠지는 것도 아니다. 영화가 끝난 뒤, 언뜻 새드 엔딩으로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라힘의 결정은 영웅적이었다. 그렇다면 해피 엔딩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GV에서 김중혁 작가가 한 말이다.
“모든 좋은 스토리는 나쁜 선택으로 시작한다. 선택이 나빴기 때문에 그걸 통해서 무언가를 보게 한다. 작가들이 자기 공포, 두려워하는 것들,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들에서 출발시키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나쁜 선택을 내린 사람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이 영화를 보고 다시 한번 느꼈다. 나도 내 안의 공포, 두려움, 비참함을 마주하고 꺼내기를 두려워하진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