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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Aug 09. 2023

잠잠한 출산예정일

5월 28일, 부모님이 우리 집에 와주셨다

출산 예정일이었던 일요일, 내 몸은 평화로웠다. 예정일에 딱 낳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들었지만, 40주를 넘겨도 아무런 소식이 없을 줄은 몰랐다. (나도 38주에 태어났으니까.) 마침 부모님이 일요일에 시간이 나서 서울 우리 집에 오셨다. 동생도 약속 갔다가 오후 늦게 우리 집에 들렀다.  


부모님이 차에 한 짐 실어 오셨다. 내가 좋아하는 임연수, 선물 받아놓은 아기체육관, 남편의 결혼식 턱시도, 아기 수건, 담요 등이 담겨 있었다. 동생이 기저귀 케이크와 아기 옷도 사 왔다. 문 앞이 꽉 찼다. 동생이 사 온 기저귀 케이크를 열어보았다. 기저귀와 옷이 돌돌 쌓여 있었다. 


부모님은 기분이 참 좋아 보이셨다. 아빠는 내 배에 귀를 갖다 대시며 "얼른 방 빼야지~"라고 말하셨다. 엄마는 뱃속에서 아기가 커져서 내가 고생할까 봐 걱정이었다. 


어쨌든 출산예정일에 부모님이 곁에 계신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아빠는 나를 전혀 귀찮아하지 않는다.’

‘아빠는 나를 무한정 사랑해 준다.’

평생 느낀 그런 느낌 덕에, 나는 어디에서도 막연히 안심하며 살았던 것 같다.  


점심은 밖에 나가서 먹기로 했다. 

엄마는 "오늘은 내가 쏘는 날이야!"라면서 조그마한 지갑을 흔들어 보이셨다.  

내가 말했다. "안 돼, 나 비싼 거 먹을 거야."

남편이 말했다. "주무시고 가세요!”

아빠는 아무런 말이 없으셨다.

엄마가 대신 대답하셨다. "너희 아빠가 자고 갈 사람이니?"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서우니까 남의 집 가서 귀찮게 하지 말거라.' 옛날부터 아빠가 하시던 말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가급적 내가 친구네 집에 못 놀러 가게 하셨다. 아빠가 우리 집에서 안 주무시려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젠 우리 집에서도 아빠 엄마가 손님이 되어버린 걸까? 

  

고맙게도 남편이 집 근처의 갈비 맛집을 찾아놨다. 갈비는 참 맛있었다. 부모님도 맛있게 드셨다. 


가족끼리 갈비를 먹으면 엄마가 꼭 꺼내시는 단골 레퍼토리가 있다. 엄마와 아빠가 결혼 전 소개로 만나서 돼지갈비를 먹었던 날.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다.


"두 번째로 만난 날에 너희 아빠가 라면을 사준다는 거야. 마음에도 안 드는 사람이 라면 사준다면, 고맙습니다~ 하면서 가겠어? 이왕이면 비싼 갈비 먹자고 했지."

"나도 마찬가지다. 마음에도 안 드니까 돼지갈비 사주고 빠이빠이 하려고 했지."

두 분이 결혼해 내가 첫째로 태어났다. 지금까지도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돼지갈비다. 

 

아빠 차를 타고 북악스카이웨이에서 드라이브했다. 스카이웨이 팔각정에서 후식으로 피자도 먹었다. 비가 멎은 후라 향긋한 풀 냄새가 났다. 물안개가 피어있어서 운치도 있었다.


내가 아빠에게 말했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출산 전엔 아빠를 못 뵈는 줄 알았어요. 저는 오늘 많이 행복했어요." 아빠가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부모님은 우리를 데려다주시곤 바로 집으로 가셨다. 그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해 30분 동안 울었다. 나도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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