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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Nov 12. 2022

토요일에 바쁜 남자랑 둘레길 걷기

서울둘레길(구일역-가양대교)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렸다. 오늘 걸을 코스를 지도로 봤다. 작년 11월, 걷다 말은 구일역부터 안양천을 따라 걷기. 난 욕심을 좀 더 내어 가양대교 위까지 걷자 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서점 가야해서 바빠. 더 가면 안돼. 일요일은 돼.”


토요 루틴이 꽉차 있구나. 다음 일요일에 길게 걷기로 약속했다.


1년 만에 서울둘레길 다시 걷기다. 찾아보니 작년 11월에 걸었었다. 반갑다~ 둘레길아. 작년에 받아둔 인증서가 그대로 있다. 물을 챙기라 하니, 화섭씨가 물병에 분유 같은걸 탄다. 그게 뭐냐고 물어보니 프로틴 체험 중이란다. 공짜라면 다 하는 동생. 오늘 그거 마시고 근육 생기라고 덕담해줬다.



구일역은 우리집에서 한시간이나 가야한다. 1호선 타고 가다 날씨가 더워 자켓을 벗으라 했다. 티셔츠를 하도 많이 입어 헤졌는데 엄마가 덧대주신게 보인다. 가는 길도 멀겠다, 쇼핑몰을 열어 긴팔 티셔츠를 주문해줬다. 돌아와 엄마께 물어보니 본인이 좋아해 안 버리는 티셔츠라고. 내가 새옷 사주면 버리고 입겠다 했으니 과연 그럴런지. 참 무던한 동생이다.




고척돔이 보이는 곳에서 시작해 안양천을 걷는다. 작년처럼 낙엽들이 예쁘다. 꽃도 간간히 피어 있고. 중간에 쉴때 방향 잡으려고 지도앱을 켰다. 가양대교를 내가 못 찾자 동생이 요리저리 조종해 금방 찾아준다. 어릴때부터 혼자 밖을 다녀 그런지 공간감각이 대단하다.




한강합류지점이 되자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진다. 방수가 되는 모자를 가져간터라, 여유있게 썼다. 비를 맞아도 안경은 말짱하다. 모자 산 보람이 있군.



한강나들목을 지나 스탬프를 찍는 공원까지 무사히 왔다. 오늘 할 일은 무사히 했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기분좋게 스탬프 찍고 이제 가양역까지 잘 찾아가면 된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많이 온다. 우산 없이 모자만 쓰고 지도앱 켰더니, 핸드폰 작동이 잘 안돼, 방향을 잘못 잡았다. 그것도 난 모르고, 화섭씨에게 직진이라고 말했다. 한참 걷다 길이 이상해 가게 천막 아래 들어가 다시 지도앱을 켰다. 이상한 방향으로 와 있었다. "화섭아~ 미안해~ 이 방향이 아니야~" 라고 했더니 갑자기 왜 직진이라고 했냐고 화를 낸다. 아침에 나올때 모자 있으니 우산 들고 걷기 힘드니 그냥 가자 했다. 그랬더니 우산도 없다고 화를 낸다. 잠시 천막아래 있으라 하고 마트에 들어가 비닐 우산을 사왔다.


무사히 가양역에 도착해 스타벅스에 들렸다. 동생이 좋아하는 망고바나나 프라푸치노를 사주고 한마디 했다. 지도 잘 못 보고, 잘 못 갈 수도 있지. 문제 있으면 해결하면 되지 왜 화를 내냐고.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아냈다. 갈등 종결. 다 걸은 기념으로 음료 짠 하고 맛있게 먹고 헤어졌다. 동생은 서점으로 토요 스케줄을 소화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에크하르트 톨레의 이순간의 나를 읽었다.


관계를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식으로든 상대를 판단하거나 바꾸려하지말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겁니다.그러면 모든 마음의 게임에서도, 중독이나 다름없는 집착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니 내가 또 저항하고 동생을 바꾸려했다는걸 알았다. 평소 동생이 원칙주의자라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하는데, 그 원칙을 바꾸려 했구나. 갑자기 지하철안에 한기가 느껴지며 추웠다. 비를 맞은 동생도 춥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톡으로 비맞고 추우니 서점에 조금 있다 오라고 비맞게 해서 미안하다 했다. 동생의 답장은 “아니에요”


 평소 잔소리 하면 자기방 문을 탁 걸어잠그는 동생이다. 엄마는 뭘 그리 바꾸려고 하냐고 날 보고 뭐라하시고. 자기 성격이 형성된 중년 동생을 받아들이지 않은 내가 인식되었다. 오늘도 하나 배웠구나. 길에서 나와 걸어보니 새롭게 보이는게 있고, 배우는게 있다. 그래서, 난 걷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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