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 (금천구청역 ~ 구일역)
어깨 염증이 나아간다. 의사는 어깨를 덜 쓰라 했다. 다리는 써도 된다. 비 올 거라는 일요일 일기예보는 화창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서울 둘레길 시작한다.
지난주, 금천구청에 가져다줄 플라워 아트, 코스모스를 만든 관계로 시작은 금천구청이 있는 6코스다.
“6코스가 석수역부터 시작하니 여기로 갈까? 스템프도 여기 있어.”
“아니야, 금천구청으로 바로 가. 석수역은 담에 다른 코스로 갈 수 있어.”
맘먹은 건 당장 해야 하는 화섭 씨다. 우회와 지연은 힘들다.
“그래, 1호선 타게 창동역 갈까?”
“창동역엔 인천행 밖에 없어. 수원행 타야 하니 4호선 타고 동대문역에서 갈아타.”
지하철 마니아 화섭 씨다. 이런 건 내가 겸손해야 한다.
서울 둘레길 시작하며, 난 결심한 게 있다. 나는 화섭이를 모른다고 생각하자. 내 편견과 잘난 체가 화섭이의 재능과 지혜 보기를 막고 있을 수 있다. 최대한 화섭이에게 맞춰보자.
금천구청역에 내려 바로 앞에 있는 구청 부스로 갔다. sns로 신청한 200명 시민이 플라워 아트 키트로 만든 코스모스를 받고 있었다. 구청 직원은 이번 주 평일 밤에 모아둔 코스모스를 전시해 둔다고 보러 오란다. 화섭이는 자신이 퀴즈에 응모했다고 대답한다. (이것이 화섭 씨의 대화방식이다. 본인이 하고픈 말을 하는 것) 나는 구청 직원에게 너무 멀리 살아서 오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대신 안양천으로 빠지는 서울 둘레길 코스를 묻는다. 직원은 금천구청역 오른쪽으로 가라고 친절히 대답해준다.
코스모스 제출 미션을 끝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안양천으로 들어섰다. 안양천은 너른 평야에 도보와 사이클을 할 수 있도록 길을 두 개로 내어놓았다. 하천변에는 코스모스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안양천 코스모스 모형을 구청 앞에 전시하도록 한 비대면 이벤트가 참 기발했다. 도봉구에 살면서 금천구 이벤트를 찾아서 응모한 동생도 기발하고.
걷기가 지속되자 여지없이 땀을 흘리는 화섭 씨. 겉옷을 벗어 가방에 넣고, 수건을 목에 걸고 연신 머리를 닦으며 걷는다. 이솝우화 해님과 바람에서 햇살을 받은 나그네 같다.
안양천 코스는 하천변을 따라가다 서울 둘레길 코스가 계단을 타고 위로 향하길 안내한다. 위로 올라서니 터널이 보인다. 벚꽃나무가 가을이 되어서 노랑과 빨강이 섞인 낙엽을 떨구는 코스였다. 바닥을 낙엽들이 이미 예쁘게 장식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진다. 봄의 벚꽃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봄은 만물을 탄생시키는 아름다움이라면, 가을은 만물을 여지없이 버리는 비움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간 공들여 키운 과거는 잊는다. 나무는 과감히 모든 잎을 떨어뜨린다. 비워야 내년에 새로운 잎싹을 틔울 수 있는 걸 안다. 그런데, 인간만 욕심에 가득 차서 비우질 못한다. 가을나무들을 보고, 내가 비우질 못한 게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의 목적지는 구일역이다. 구일역 근처에는 고척돔이 있다고 지도에 나와있다. 꾸준히 걷다 보니 멀리 고척돔이 보인다. 아이돌 공연의 성지이다. 그냥 보기만 해도 한류의 흥이 느껴진다.
고일역 1번 출구 스탬프 코너에 도착했다. 벚꽃 모양이 있는 스템프를 찍었다. 예쁘다. 걷는 보람이 있다.
화섭이는 예정된 코스를 마치자마자 자유를 달라고 한다. 혼자 집에 가서, 미아삼거리 역에서 좋아하는 파란 큰 버스를 탈거란다. 화섭이랑 같이 다녀보니 버스나 지하철 마니아인 화섭이 만의 루틴이었다. 그래, 집에서 보자.
어릴 때부터 난 화섭이가 야생마 같았다. 풀어놓으면 어디든 자유롭게 달려갔다. 나를 배려해 같이 걸어주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야생마처럼 달려가고 싶어 한다. 그래, 달려라~ 땅은 넓고 너는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