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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Dec 27. 2022

갑목인가봐(2)

여행은 예측불허의 일을 해결하는 게 재미이다

일요일 오후 4시 30분에 석모도 미네랄 온천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내리니, 옆의 흰 패딩을 입은 아주머니가 이미 입장마감됐어요. 라고 말해준다. 이 온천이 인기가 많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벌써 마감이라니. 다행히 근처 펜션을 예약해 두었다. 오늘은 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면 된다. 내일 오픈시간이 아침 7시라는 걸 알고 숙소로 돌아왔다.


요새 갱년기라 가끔 깊은 잠을 못 잔다. 석모도에 오기 전날도, 석모도에 와서도 잠을 설친다. 생리까지 터진 터라 엄마만 온천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난 펜션에서 밀린 잠을 자기로 했다.


엄마는 온천 입구에서 경로우대까지 받아 입장하셨다. 펜션은 난방이 잘 되어 있었고, 바깥 기온은 추웠지만, 햇살은 내리쬐고 있었다. 햇빛을 피해 커튼을 내렸다. 피곤해서 금방 곯아떨어졌다. 한참 자다 저 멀리 무슨 소리가 들렸다. 방 내 인터폰이 울리고 있었다. 잠결에 받으니 펜션 주인이 어머니께서 전화를 여러 번 했는데, 내가 전화를 안 받아 펜션에 전화했다 하신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약 50분 동안 부재중전화 10통이다. 무음으로 해놓고 자고 있었던 것이다. 헐레벌떡 전화를 하니 엄마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했다 하신다. 비몽사몽한 채로 차를 몰아 온천으로 갔다.


내가 전화를 안 받자, 온천 안내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다. 우리 딸이 생사가 불투명하다고. 안내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엄마는 펜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펜션 연락처를 안내원이 알아내서 펜션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펜션 주인도 전화를 몇 번 안 받더란다. 결국 전화를 받았고 겨울잠을 자는 곰이었던 나를 겨우 깨웠다고 한다.


그냥 택시를 불러 펜션으로 오지 그랬냐고 하니, 섬에서 어떻게 그러냐고 하신다. 난 미안해서 괜한 소리를 한 거다. 겨울은 사람을 참 몽롱하게 만든다. 세수를 하고 짐을 꾸려 체크아웃을 했다.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온천에서 좋았냐고 물었다. 짠 바닷물을 길어 온천을 하는 곳인데, 어린이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고 했다. 봄의 기운인 갑목기운을 가진 호기심 천국 엄마는 짠 물에 온천한 게 무엇에 좋은지 물어봤다 하신다. 아토피와 관절염에 효과가 있어 다양한 세대가 온다는 걸 알아내셨다고.


미안한 나는 강화도 흑염소탕집에서 점심을 사기로 했다.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식당은 임시휴일이었다. 지도앱에 식당 운영시간이 안 적혀 있었다. 시골 식당이라 주인이 맘대로 여닫으려고 그런 건지도 모른다. 주변 검색을 해도 마땅한 식당이 없다. 한 군데 전화를 하니 월요일이라 영업을 안 한다 했다. 엄마는 그냥 서울로 가잔다. 컵수프와 달걀을 싸왔는데, 펜션에서 먹고 나오지 못한 게 아쉬웠다. 펜션에서 좀 쉬면서 먹고 나올걸 왜 빨리 체크아웃하자고 했는지, 엄마에게 물어봤다. 내가 전화를 안 받은 트라우마로 빨리 서울에 가고 싶으셨단다. 뭐든 착착 직진해야 하는 갑목 엄마와 난 중간 단계에서 머물고 싶어 하는 기토 딸이라 이런 차이가 항상 생긴다. 과거일을 탓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었다. 난 근처 유명한 카페인 조양방직에 가자 했다. 직진 본능 갑목 엄마는 그냥 서울로 가자시고. 그래도 이 근처인데, 언제 다시 여기 오겠냐고 가보자고 설득했다.


차를 조양방직으로 몰았다. 가던 중 중간에 전구를 켜놓은 예쁜 식당이 눈에 띄었다. 고려산 호랑이 코다리라는 이름도 시원한 집이었다. 아까 검색할 때는 안 나오더니, 이 집이 명물이었다. 주문 후 검색하니 고품격 코다리 요리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계획 안 하고 길에서 발견한 식당이 더 좋을 수가 있다.



매콤고소한 코다리 조림의 두툼한 살을 발라 콩나물과 김에 싸 먹으라고 알려주신다. 미역국과 신선한 나물도 맛있고, 샐러드와 김치도 맛있었다. 아까 그냥 서울로 가자는 엄마는 나 온천해서 배고팠어. 라며 갑자기 말을 바꾸신다. 공깃밥 없이 코다리와 반찬만 먹겠다는 나도 먹다 보니 밥을 불러 한 공기를 시켜 순삭 했다.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이 식당 주인은 요리 전 나와 간을 어찌할지 물어봤다. 우리 식구는 맵찔이다. 평소 심심하게 먹는 편이라 식당에서 맵고 짜게 해 주면 잘 못 먹는다. 그런데, 식당 주인이 먼저 물어보니 감사했다. 최대한 안 맵게 해 주셨는데, 그래도 맵지 않냐며 사이다 한 병을 서비스로 주셨다. 이렇게 일대일 서비스까지 잘해주시니 호평이 달리는구나 싶었다.


예상치도 모르게 내가 겨울잠을 자고, 엄마는 50분 기다렸다. 예상치도 못하게 흑염소탕집은 문을 닫고, 코다리를 먹게 되었지만, 이 상황에 맞게 문제를 해결하는 게 여행의 묘미다. 직진하려는 갑목 엄마를 세워, 좋은 곳에 머물게 하는 것도 잔재미다.


조양방직에 도착했다. 1930년대 방직공장을 개조해 만든 이 카페는 다량의 옛 물건과 예쁜 조명들이 많다. 음료가 7천-8천 원으로 비싸지만, 입장료로 낼만하다. 음료를 주문하고, 빵 코너가 나오자 엄마가 빵 하나를 고른다. 계산대에서 내가 이게 무슨 빵이냐고 물어보니 직진 엄마는 주저 없이 모카빵이라고 하신다. 계산하던 아가씨가 '레몬빵인대요.' 한다. 우리 둘 다 하하 웃었다. 아가씨는 '안에 레몬소스가 들어 있어 맛있어요.'라고 설명해 준다. 카페 안에 자리를 잡자 엄마는 그냥 모른 척 하지 정정하니.. 하신다. 직진 본능 갑목 엄마는 이래서 재미있으시다.



조양방직 안의 다양한 옛날 물건을 구경하신 엄마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다고 좋아하신다. 예쁜 소파를 골라 앉아 사진까지 찍어드렸다. 햇살을 받고 좀 졸고 쉬다가 나왔다.


우당탕탕 예측불허 여행이었지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게 여행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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