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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Jan 12. 2024

축(丑)월의 성지순례

당고개순교성지부터 우포도청까지

지난 주는 만물을 모두 얼리는 추위가 지속됐었다. 삼한사온이라고 오늘은 해가 나고, 바람이 멎었다. 햇살속을 걷지만, 땅은 얼음이다. 축월이다.

축(丑)토 : 밤, 늦겨울, 1월 5,6일(소한)~2월 4,5일(입춘)

엄혹한 늦겨울에는 열망을 드러내지 못한다. 함부로 드러냈다가 가차없이 싹이 잘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축토는 우직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힘이다. 운동성이 전혀 없고, 굼뜨고 강한 고집을 자랑한다. 남들이 강제로 시키면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지만, 스스로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면 천천히 움직여 결국 천릿길을 가는게 축토이다. 한겨울이라 얼음땅처럼 수렴과 웅축의 힘이다. 수렴이 강해 지난 감정이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감정표현의 타이밍을 놓쳐 울화가 쌓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축토는 꽃이 피기 바로 직전의 단계라 최대한 힘을 비축한다. 묵묵히 공동체에 봉사한다. 스스로 나섰다가 결과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희생을 통해 훗날의 이익을 도모한다.

축토의 키워드 : 수렴, 응축, 감정표현의 타이밍 놓침, 공동체 봉사

<나의 사주명리>중에서 축토 요약

겨울의 관건은 생존이다. 지금이야 난방이 발달했지만, 명리가 태동한 시기엔 꽁꽁 언 겨울은 식량도 부족하고, 온기를 유지하느라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축토의 기운을 가진 사람은 생존을 위해 공동체에 헌신하나보다. 나도 축월에 태어났다. 한때는 감정이나 욕구를 제때 표현못해 응어리가 많았었다. 지금이야 좋아졌지만, 간혹 타이밍 놓칠때도 있다. 축토의 지인들이 생각났다. 공동의 과제를 위해 헌신하던 그들의 배려가 생각나 감사했다.


오늘은 이 감사함을 묵상하며 걸었다. 난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 안 가본 곳도 많다. 오늘 간 당고개성지도 그렇다. 용산의 골목과 아파트 단지를 지나 만난 당고개 순교성지는 단아하고 검박했다. 초를 봉헌하기 위해 성지내 성당 안에 들어섰다. 물위에 떠있는 초들과 한복입은 어머니상이 아름다워 눈물이 날뻔 했다. 내 사주에 수가 많은데 촛불을 지켜야 하는 모양이다. 초를 켜고 한참을 기도 드리다 나왔다.



꽃잎 문양의 문고리와 아기선녀상이 들고 있는 성수통도 아름다웠다. 순교자분들의 영혼이 어려있는게 시각적으로 드러난것 같았다. 한참 성당에 머물다 떠났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곳은 자녀를 둔 어머니가 세분이 순교당하셔서 어머니의 성지라 불리운다 한다. "찔레꽃 아픔과 매화꽃 향기"의 테마를 가지고 있다한다. 성당 전체에 장식된 단아한 꽃들이 매화였다. 한국의 미를 성당으로 아름답게 표현해주신것에 감사했다. 예상치 못한 풍경이어서 더 기뻤다.


오늘 나의 역할은 순례자이니 걷는다. 한참 걷다 만난 서소문성지는 박물관으로 되어있다. 지하에 있어 어둠속에서 빛의 존재를 더 귀히 밝힌다. 사진촬영은 금지되었다. 입구의 조각들이 아름다웠다. 조선시대 서소문은 <예기>에 따라 한성 서쪽에 설치된 죄인들의 처형장이었다. 서쪽은 금기운이고 금은 종결,결단, 마무리의 기운이다. 그 시대 오행을 따른 흔적이다.

오래 걸으니 다리가 뻐근해간다. 힘을 내 마지막코스 우포도청으로 간다. 김대건 신부님이 순교 전 3개월간 굶주림에 시달리며 갇혀져 있었다던 자리다. 오늘 풍요로운 양식에 감사할 줄 모르던것이 반성되었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진다. 서울도 소비를 부르는 고도 자본주의를 보면 뭔가 채워야 할것이지만, 순교지에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내가 이미 누렸지만 너무 당연시했던 것들의 가치가 다시 다가온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이렇게 성지순례로 욕심을 비우는 날이 필요하다.


자연이 모든것을 응축하는 축월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계절은 연속위에 한점이고, 응축은 봄의 발산을 위한 개구리의 움추림이다. 추워도 봄의 활동할것을 잊지 말고, 잘 준비하자는 축토의 교훈을 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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