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많은 가족은 치유가 필요하다(1)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중 제가의 시기가 왔다

by 긍정태리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도 사실 상담과 치유가 필요해요."


음악치료사 이자 캐나다 교포 친구 지니는 나랑 대화하다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화섭이의 존재로 남다른 형태를 가진 우리 가족은 사실 마음이 골병든 사람들이다. 사회적 편견과 더불어 가부장적이고 화잘내는 아버지 밑에서 숨죽이고 살아온 환경에서 나온 상처들이 많다. 에니어그램 공부할때, 가족 개개인의 욕구를 돌아보며 난 마음이 많이 아팠다. 각자 욕구를 보장받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며 힘들어지기도 하고, 예민해지기도 하는 동생들을 보기도 한다. 그 과제들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풀어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지난 4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팍팍한 어린 시절과 서울살이를 하셔서 분노가 많았던 아버지시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크게 화내는 사람이 없으니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숨어있는 복병이 있었다. 바로, 갱년기로 예민해진 내가 이 집의 폭탄이었다.


우리 엄마는 갱년기 없이 중년을 보내셨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갱년기 증상이 나와 달랐다. 작년부터 뚜렷이 갱년기 증상을 보이는 나는 올해 그게 더 심해졌다. 특히, 갑자기 욱하고 화가 올라왔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성격과 속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남들이 내 기대와 다른 성격과 속도를 보여주면 갑자기 욱하기 시작한다. 분노조절을 잘 못 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나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반면, 우리 엄마는 과거의 상처가 많아 내가 한번 이렇게 욱하면 과거의 상처 받은 이야기를 다 꺼내놓으며 피해의식을 가지고 성토해놓기 시작하셨다. 엄마도 본격적으로 노인기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노인기와 갱년기의 변화 속에서 며칠 전 큰 사건 하나가 벌어졌다.


겨울이 되어 보일러를 틀기 시작했다. 엄마와 나는 체질이 달라, 같은 보일러 온도를 올려도 춥다고 느끼는 게 달랐다. 난 겨울에 태어나 그런지 추위를 잘 탔다. 반면 엄마는 별로 안 춥다고 하셨다. 퇴근 후, 집이 추워서 "집이 춥다"라고 한마디 했다. 갑자기 엄마가 발끈하셨다. "너 나에게 집을 따뜻하게 안 해놨다고 야단치는 거야!" 난 너무 황당했다. 엄마랑 나랑 체감온도가 달라서 그런 거고 다음에는 말없이 보일러를 틀겠다고 약속했다. 그다음 날, 집에 들어와 춥다~ 혼잣말하고 보일러를 올렸다. 갑자기 또 발끈하는 엄마.


" 난 네가 보일러 때문에 아버지랑 많이 싸워서 네가 춥다는 이야기만 해도 힘들다!"


나는 또 이 말에 발끈해서 그럼 춥다는 혼잣말도 못하냐~ 앞으로는 입을 막고 보일러를 올리겠다.. 기타 등등 한바탕 협상을 벌였다. 그러다, 날씨가 점점 더 추워졌는데, 내가 지내는 방이 따뜻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이야기를 하니 엄마 왈,


"그제 너 자는 거 봤는데, 이불 안 덮고 자던데. 이불 덮고 자면 되잖아."


그제는 전기난로 켜고 잠들어 그랬고, 어제는 안 그랬다고 해도 안 믿으신다.


"그 방에 CCTV 달아서 감시해봐야지."


이런 말 까지 하신다. 갑자기 갱년기 욱이 올라온다. 마음이 상한 채로 출근했다. 추운 방에서 자서 그런지 하루 종일 몸이 안 좋다. 머리도 멍하다. 퇴근하자마자, 나 몸이 오늘 안 좋다. 방이 춥다.라고 엄마에게 이야기하자, 또 고집을 피우신다.


"네가 이불 안 덮어서 그런 거야."


갑자기 욱 하고 화가 올라온다. 그럼 내가 거짓말하는 거냐고. 왜 내 말을 믿지 않냐고, 한번 이불 안 덮은 거 가지고 계속 그렇다고 생각하냐고. 말하다 보니 서러워서 더 폭발했다. 엄마는 그 방이 아버지가 쓰던 방인데, 계속 따뜻했다고 하신다. 나는 어떻게 모든 게 고정될 수 있느냐. 모든 게 변한다. 보일러가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마침 화섭이가 황토매트 당첨된걸 집에 가져왔다. 황토매트를 내 방에 두고, 온도를 높였다.


조치를 취했지만, 난 답답함과 서러움이 남아 있었다. 지인에게 전화해, 나이 드시면 고집이 세지냐고 물어봤다. 그 집도 부모님 고집이 늘어, 대화가 힘들고, 자식들 말에 서운해하는 일이 생긴다 했다. 그 사이 엄마가 집을 나가셨다.


화섭이는 엄마가 집에 없는걸 금방 눈치챘다. 핸드폰을 걸어 엄마 어디 있냐고 물어본다. 난 엄마가 내 말에 상처를 받아 나가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뾰로통한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미안하다 했다.


엄마가 내 말에 화가 나서 카페에 가셨는데, 방역 패스를 핸드폰에 설치 안 해놔서 차를 마실 수 없으시단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 나는 석고대죄했다. 내가 갱년기라 욱해서 그렇다고. 내가 이 집에 분란을 일으키는 폭탄이라고. 미안하다고. 화섭이는 엄마 옆에서, 엄마 왜 그러세요~ 하면서 엄마를 달래고. 엄마는 몰래 나가셨는데, 어떻게 동생이 알았는지 신기하다고 했다. 엄마 바라기 화섭이 덕에 맘이 좀 풀린 듯하다.


화섭이 덕에 황토 매트로 일도 해결하고, 엄마 마음도 달래 졌다. 이럴땐 화섭이 공이 크다. 화섭이가 계미일주로 사막의 단비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데, 이번에 그 단비 덕 톡톡히 봤다. 화섭이가 이집의 귀인이다. 엄마는 갑목 일간으로 자존심이 세시다. 같은 갑목인 아버지가 계실 때는 그 자존심을 눌러놓으셨다. 요새 그 눌러놓은걸 참지 않고 말하시는 듯하다. 명리로 엄마 성격을 이해하니 납작 엎드려,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엄마는 나와 같은 갱년기 증상을 겪지 않아 나의 욱을 이해 못 하고. 난 엄마에게 이해 못 받아 서럽지만, 반면 밖의 친구들이 이해해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난 집이 편치 않으니 성인이 된 이후는 줄곧 밖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지내왔다. 관성적으로 연결의 힘이라는 프로젝트를 외부에서 하려고 했다. 그런데, 올 겨울 이런 나 자신과 가족들을 겪어보니 지금은 외부에서 활동할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렇게 상처 많은 가족을 두고 나갈 수 없었다.


내년에는 가족을 보살피는 일을 전적으로 하련다. 필요하다면, 가족상담도 받아보고 싶다. 일단 책 <가족의 발견>에서 많은 팁을 얻었다. 가족의 갈등은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걸 풀어가는 과정안에서 온다고. 이번 건은 보일러가 작년과 달라 생긴 문제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걸 풀어가는 과정에서 상처 많은 가족이다 보니 이런 갈등이 생긴다. 이 문제의 key는 내가 쥐고 있다.


안 괜찮아, 나. 갱년기 겪는 쌍문동 치타 여사가 내 이야기가 되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돈 이백만 원을 투자해 나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다. 남들은 갱년기 치료로 병원에 다니기도 한다는데, 작년에 병원에 가보니 그것도 맞지 않다는 걸 알았다. 응팔에 나오는 쌍문동 치타 여사 보면 딱 내 처지와 같다. 그분은 착한 아들과 남편이 있어 이벤트 해주면서 해결해 갔지만, 난 셀프로 나에게 이벤트 해주며 해결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돈이 아깝지 않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상처를 작거나 무관심하게 보는 걸 경계해야겠다. 상처 많은 엄마를 돌보는 것도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마침 지인이 책을 선물로 주셨다. 이런 선물이 마음에 큰 도움이 된다.



어릴 적,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면 새로운 스테이지가 나와 해결 과제를 준다. 인생도 모든 게 변하니, 매년 새로운 스테이지와 과제가 떨어지는 것 같다. 몸은 나이가 들어 예전과 다르게 쇠퇴하지만, 공부하고 연구하면 지혜를 늘릴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을 새로이 먹고, 새로운 스테이지에서 잘해보자, 나야.


새 프로젝트 할 기분이 아니라면, 하지마라. 그냥 오늘은 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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