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모빌 같은 존재다. 한쪽에서 흔들리면 다른 쪽도 흔들린다. 가족은 감정 덩어리다. 말로 전달 안 해도, 무의식과 감정을 공유한다. 즉, 부모의 감정과 욕구를 자식이 그대로 가지는 경우가 있다.
감정이 올라올 때 이성으로 조절할 수 없으면, 그 감정을 가족들에게 내던진다. 즉, 분노를 그대로 가족에게 쏟아붓는다. 내 감정을 책임지고 조절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족의 발견> 중에서
12월 들어 갱년기로 마음이 힘들어지자, 나 홀로 피정을 다녀왔다. 거기서 읽은 구절이다. 아버지께서 스스로 당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쏟아붓는 패턴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그 패턴을 내가 공유하고 따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 돼지갈비를 사드리며 말씀드렸다.
"내가 스스로 감정을 조절 못해, 가족에게 쏟아부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 내가 이 집의 폭탄이었어."
돼지갈비에만 몰두하던 엄마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신다.
"큰 깨달음을 얻었네. 그럴 때마다 힘들었어."
"근데 사람이 살아온 습관이 금방 바뀌지는 않을 거야. 그게 도 닦는 거지."
"맞아, 그럴 거야. 이해한다."
난 7년 동안 에니어그램 상담센터에서 수많은 가족을 봤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교수, 변호사, 검사 집안도 가족끼리는 사이가 안 좋고, 밖에서는 감정조절을 잘해도 집에서는 감정이 폭발되고 언어폭력을 쓰는 경우를 몇 번 봤다. 그러니, 우리 가족의 문제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돈을 벌고 성공하는 것에만 치중해온 우리나라는 가족이 병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족과 살지 않으려는 1인 가구와 자녀가 부모를 찾지 않는 고독사가 늘고 있는지 모른다.
난 그런 경우를 봐와서 그런지 문제에 직면하고 집중하는 힘이 생긴것 같다. 남들은 이런 경우 밖에서 돈이나 벌자 하면서 문제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한때 그랬다. 오피스텔, 월세, 전세를 전전하며 서울에 직장이 있는데, 쌍문동 집을 놔두고 1인 가구로 오래 살아왔다. 그러면서 내면의 힘도 많이 얻은 것 같다.
가장 대화가 힘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습관 때문에 내가 문제는 있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직면하기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지난 11월, 엄마 생신에 맞춰 호캉스에 다녀왔다. 입욕제를 풀고 욕조에 몸을 담그니 모든 불만이 사라졌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촉감 좋은 침구에서 꿀잠을 잤다. 나도 갱년기 피로가 사라졌다. 엄마랑 정기적으로 호캉스를 가자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몇 주후, 인터넷에 토닥토닥 힐링여행이라는 공지가 뜬 게 보인다. 코로나로 관광업 매출이 떨어지자, 정부지원으로 장애인은 100% 호캉스 비용을 지원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얼른 동생에게 알려 그날 저녁에 호텔을 예약했다. 내 카드로 먼저 결제한 후, 호캉스를 다녀온 후 결제 취소가 되는 방식이었다.
엄마랑 보일러 문제로 싸우고, 엄마가 카페로 가출을 하고, 겨우 대화로 푼 그날 그 주에 동생 덕에 가는 호캉스 일정이 잡혀 있었다. 아침마다 홈카페를 열어 커피를 마시는데, 동생이 호텔 갈 준비 하느라 이발을 했다고 한다.
"화섭아, 호텔 수영장도 투숙객은 무료로 쓸 수 있대."
평소 물을 좋아하는 터라 은근히 정보를 줘봤다. 동생은 바로 나 갈래! 한다. 호텔에 전화로 문의해보니 수영복과 수영모를 챙겨 와야 한단다. 전날 백화점에 가서 남자 수영복을 사왔다.
호텔은 코엑스에 있는 I호텔. 근처 식당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체크인을 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훌렁 옷을 다 벗는 동생. 동생은 겨울에도 집에서 웃통을 벗고 있다. 자폐인들은 촉감에 예민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촉감에 집착하는 면이 있다 하는데, 옷을 벗고 있는 게 좋은 듯하다. 그런데, 호텔에서 그러고 있을 수 없으니 잠옷을 사 갔다. 누나와 엄마 앞에서 잠옷을 갈아입으려는 걸 화장실로 떠밀었다.
“1박 2일 동안 옷 갈아입으려면 화장실에 가. “
평소 성격이 급해 훌렁 옷을 벗고 아담이 잘되는 동생이다. 에티켓 교육부터 시켜야 했다.
잠옷을 입고 바로 침대에 누워 자기 방에 있듯이 핸드폰을 본다. TV도 좋아하는 동생이라 틀어보라 했더니 정확히 자기가 즐겨 보는 채널을 튼다. 바로 자기 방에 있는 것 같은 모드를 취한다. 욕실에 물을 받아 입욕제를 풀어 엄마 먼저 하시게 했다. 엄마는 입욕제에 맛 들이셔서, 좋아하신다. 두 번째는 동생 차례다. 나는 욕조를 청소 후 물을 받아 입욕제를 풀겠다 했다. 엄마가 동생은 입욕제 안 해봤는데 했다. 평소 새로운걸 잘 안 하는 동생이라 이런 말씀을 하신 듯했다.
"나도 입욕제 할 거야."
물과 관련된 거라 그런지 할 거라 한다. 엄마의 예상을 깼다. 라벤더 입욕제를 푸니 욕실이 금방 향기로 가득 찬다.
“욕조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샤워부스에 가서 샤워해. 호텔 가운을 입고 나와.”
라고 순서를 설명해준다. 첨벙 욕조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참 있다 동생이 외친다.
“누나! 이거 몇 분 해? “
“몇 분 없어. 네가 하고 싶은 만큼 해. “
잠시 후 샤워소리가 들리고 어푸어푸.. 물을 즐기는 동생 소리가 들린다. 하얀 호텔 가운을 입고 나오는 동생. 얼굴이 해맑아진다.
나는 장미향이 나는 입욕제를 사용했다. 세상 모든 불만이 사라지는 것 같다. 잠을 푹 자고, 아침 조식을 일찍 먹으러 갔다. 음식을 담아 오는 거 보면 개성이 느껴진다. 동생은 김밥이면 김밥을 한 접시, 빵이면 빵을 한 접시, 본인이 좋아하는 한 가지 종류를 한가득 담아온다. 탄수화물 위주라 좀 걱정되었다. 엄마가 과일도 가져오시며 같이 먹으라 했다. 후루룩 밥을 빨리 먹은 동생은 먼저 가겠다고 한다. 호텔 로비에 큰 소파가 있는데 거기 가서 쉬고 있으라 했다.
여유 있게 식사를 마치고 로비로 오니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다. 자연스레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가족과 여행 와서 기념사진을 처음 찍은 것 같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캡슐커피를 마시며 쉰 후, 동생은 드디어 수영장에 간단다. 방에서 수영복을 입고 호텔 가운을 입고 3층 수영장으로 갔다. 수영장 입구에서 호텔 가운은 어디다 두냐고 물어보니 썬베드에 두란다. 동생이 썬베드가 뭐야? 해서 수영장까지 따라가 썬베드를 알려줬다. 여기다 호텔 가운과 안경을 둬. 훌렁 가운을 벗고 바로 수영장으로 들어가는 동생. 수영장에 시계가 달려 있어, 10시 15분까지 해. 하고 시간을 알려주고 나왔다. 나는 그 사이 호텔 앞 봉은사에 갔다. 엄마는 방에서 쉬고 싶다고 하셨다. 봉은사는 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지 절이라 한다. 산책하기 좋았다. 기원을 비는 많은 방법들이 있는데, 띠별 초가 눈에 들어왔다. 체크아웃할 때 기념으로 사가기로 했다.
시간 맞춰 수영장으로 가니 호텔 가운을 입고 수영복과 수영모를 손에 쥐고 동생이 나오고 있었다. 전날 방에서 호텔 가운만 입고 다니다 아담을 잘 보였던 동생인지라 엄마가 돌아올 때 안에 수영복을 입으라 했다. 동생은 축축한 촉감이 싫어 수영복을 벗었다 했다. 수영복을 내가 받아 들고, 아담이 안 보이게 호텔 가운을 잘 여미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돌아왔다.
수영이 재밌었다는 동생이다. 얼굴이 환해졌다. 이렇게 물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 논문을 찾아보니 수영이 자폐 친구들의 상동 행동을 경감시켜준다는 내용이 있었다. 친구랑 대화해보니 물이 주는 안정감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한다. 수영복도 생겼으니, 수영장 있는 풀빌라 등 소음이 적은 곳에서 물을 잘 즐기는 기회를 동생에게 종종 주어야겠다.
체크아웃 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묵은 9층에서 로비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열릴 때마다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동생은 어휴 사람이 많네~ 하면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못 타는걸 답답해했다. 우리는 쑥스러워, 엄마는
“화섭아~ 기다릴 줄 알아야지. 이러면 담에 같이 못 온다.”
라고 하셨지만, 동생은 엘리베이터 열릴 때마다 어휴 사람이 많네~를 멈추지 않는다. 왜 사람이 많아요?라고 나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같은 시간에 체크아웃하려고 해서 그래. 좀 기다려보자.”
라고 이야기해준다. 다행히 아무도 동생의 행동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다. 아니면,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여튼, 엘리베이터에 드디어 빈자리를 발견해 무사히 로비로 왔다. 봉은사로 돌아가 초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1박 2일이었지만, 워낙 다양한 것을 경험해 일주일은 있다 온 것 같다. 엄마는 한 달 동안 있다 온 거 같으시단다.
집에 돌아오니 한결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좋아하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다, 한 장면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말았다. 분노조절을 잘 못하는 어느 아버지가 아버지의 화내는 소리에 놀랬던 아들에게 사과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아버지 왈,
“미안해. 잘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잘해줘야 하는지 모르겠어."
하면서 아들 손을 잡고 울었다. 그 아버지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다 한다. 자기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으니 그 방법을 잘 모르는 거다. 나도 그 장면을 보고 펑펑 울었다. 엄마에게 문제가 있을 때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고 싶은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화내는 표현 습관을 나도 하고 있었다. 나도 엄마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싶다고.
엄마에게 가서 이 장면을 이야기하며 가족의 발견에서 나온 구절을 이야기하며 말했다.
“엄마 가족은 말을 안 해도 부모의 감정과 무의식을 그대로 공유한대. 난 태어나서 본 게 아버지밖에 없었어. “
엄마는 아버지 핑계 대지 말라하신다.
“그게 아니야. 난 아버지랑 몇십 년을 살았어. 아버지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어.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친절하게 외할머니에게 대하는 걸 보고 자랐을 거 아냐. 난 아버지가 엄마에게 친절한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어. 난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영향을 받은 거라고.”
엄마는 알겠다고 이해하겠다고 하셨다. 이해하면 된다고, 사람이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고. 그리고, 엄마도 내 화내는 모습에 트라우마가 있다는 걸 이해해 달라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앞으로 노력하면서 살면 된다 하셨다.
호캉스로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이런 대화도 잘되었다. 며칠간 폭탄인 나 때문에 시끄러웠지만, 대화로 잘 풀어서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호캉스가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구나.
꼬리말1. 내 말을 믿지 않아 불거졌던 보일러 문제는 엄마가 사과하셨다. 엄마가 보일러 에어 빼서 방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