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모험가의 국토대장정 열 번째 이야기(정읍-백양사)

좋은 것을 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

by 서툰 모험가

아침 일찍 새벽공기를 마시며 걷는 기분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

아마도 이번 여정 이후에 나의 삶에 걷기나 러닝이 일상의 루틴으로 들어올 것 같다.

아니 꼭 들어오게 할 것이다.

오늘은 전남 백양사역 근처가 목적지이다.

내심 5km 정도만 더 갔으면 좋겠지만 숙소가 없어서 백양사역이 목적지지가 되었다.


가족과 떨어진 지 열흘째이다.

내가 평소 기도하는 제목 중에 하나가 아내와 자녀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이다.

그만큼 내 사랑은 기복이 심하고 사랑 같지 않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흘이라는 거리감이 나에게 아내와 아이들을 더욱 애틋하게 만든 것 같다.

육체적인 거리는 멀어졌지만 심적인 거리는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아내에게 뽀뽀 사진을 보내며 싱그럽게 시작해 본다.

사람들이 연초에 해 뜨는 것을 보러 갈 때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근래 새벽에 걸으며 해가 뜨는 모습을 보면 몽글몽글 마음이 뜨거워진다.

아마도 이런 기분에 사람들이 그 먼 거리를 달려가 해를 보나보다.

본격적으로 걷다 대흥리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주변에 마을이 있어서 그런지 내가 앉자마자 동네 할머니가 버스를 타기 위해 오신다.

딱 봐도 옛날 우리 할머니 같아 보인다.

어제 응원받은 기정떡을 먹다가 4개들이 새것을 할머니께 여쭤보고 드렸다.

할머니께서 너무 좋아하신다.

갑자기 주섬 주섬 가방을 뒤지시더니 나는 이것밖에 없는데 하면서 사탕 한 개를 미안해하시며 주셨다.

나는 정말 너무 감사했다.

두 손으로 받아서 가방에 넣었다.

아마도 여정 가운데 내가 힘이 빠졌을 때 큰 힘을 더하여 줄 초레어 아이템이 될 것이다.

내가 무슨 용기가 났는지 떡을 먹으면서 할머니께 이것저것 물으면서 스몰토크를 했다.

할머니께서 3남 3녀를 낳으셨고 10년 전에 이사 왔다는 이야기까지...

그중에 막내아들은 연탄가스를 마셔서 몸이 안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내가 어렸을 때 자다가 연탄가스를 마셨던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생각보다 내가 나이가 많은 것 같다.

할머니랑 이야기하는데 공감대가 형성되는 주제가 꽤 되었다.

할머니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길을 떠나본다.

천원리를 지나고 나에게 큰 쉼을 준 입춘대길 복지관 정자를 만난다.

그동안 보았던 정자 중의 왕이다.

튼튼하고 깨끗하고 안락했다.

이곳에서 남은 마지막 기정떡을 먹고 다시 에너지를 보충해 본다.

눈앞에 오르막길이 보인다.

별 것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야 사람들이 쓴 글에서 거리는 짧았지만 힘들었다고 말한 글귀가 생각났다.

아이러니한 것은 나는 이런 도전 거리가 있는 곳을 좋아한다.

오히려 멀리 힘들게 가야 하는 길을 앞두고 더 집중력과 텐션이 높아진다.

오늘 거리가 짧아서 긴장이 풀리고 쳐졌던 몸의 상태가 올라온다.

이 길을 걸어본 자만 볼 수 있는 절경 “입암저수지”를 만난다.

조금만 더 힘내 보자. 지도를 보니 해발고도 250m가 정점이다.

50m가 남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올라가면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꼭 이럴 때 아이들에게 해줄 말이 생각난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오르고 보니 전라북도에서 전라남도로 장소가 바뀌게 되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아내에게 화상 통화를 걸어서 전라남도 입성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나는 아내를 많이 사랑한다.

좋은 것을 먹으면 제일 먼저 아내가 생각나고,

좋은 곳에 가게 되면 아내랑 또 오고 싶어진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보다 아내에게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지방을 걷다 보면 눈에 종종 띄는 것이 효자비이다.

오늘도 길을 걷다 효자비를 발견했다.

이번에 보게 된 "전일귀 효자비"는 스토리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잠시 서서 읽어 보았다.

아쉬운 점은 사람들이 특별한 목적 없이 지나가지 않는 한 발견하기 어려운 외딴 거리에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많은 효자비를 만났는데,

왜 이 효자비 앞에서만 내가 서서 글을 남길까?

그것은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펙을 쌓는데 열중한다.

자격증을 따고 점수를 높이고 그런데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스토리가 있느냐이다.

나의 스토리가 한 줄 한 줄 채워져 나갈 때마다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중함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내 인생에 한 줄을 채웠다.

슬슬 백양사역을 가리키는 이정표들이 나타난다.

거리는 짧았지만 생각보다 난이도는 있는 여정이었다.

그래서 이정표가 더 반갑게 느껴진다.

여행을 떠나기 전 백양사역 근처에는 하나의 모텔밖에 없었다.

그런데 전날 검색을 해보니 문을 닫았던 “9 모텔”이 무인텔로 다시 오픈했다는 글을 보았다.

백양사역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숙소로 향하였다.

정말로 재 오픈했다. 나 같은 대장정을 하는 이들에게는 희소식이다.

입실시간이 오후 1시라서 근처 소금창고라는 카페에 가서 따뜻한 라테 한잔과 초코 머핀을 주문한다.

생각보가 가격이 비싸 놀라긴 했다.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고 조금 쉬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백양사역 근처는 생각보다 넓지 않아서 한 바퀴 돌아봤다.

아쉽게도 시장이 서지 않아서 구경해보지는 못하였다.

몇 개 없는 식당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곳은 섬마을이라는 생태탕 집이었다.

날도 흐릿흐릿 하니 뽈탕보다는 뻘건 생태탕이 생각났다.

역시나 탁월한 촉이었다. 이 집 역시 맛집이었다.

밑반찬이 전부 맛있었고 생태탕 및 돌솥밥도 일품이었다.

오늘의 결산(누적 290km)

이동경로: 전북 정읍시 정읍역(골드 스테이 모텔) - 전남 장성군 백양사역 (9 모텔)

이동거리: 22km

총비용: 70,130원

1)간식: 10,500원(소금창고)

2)저녁: 10,000원(섬마을 생태탕)

3)기타: 4,630원(하나로마트)

4)숙소: 45,000원(9 모텔)

서툰 모험가의 국토 대장정 열번째 이야기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툰 모험가의 국토대장정 아홉 번째 이야기(김제-정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