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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혜인 Nov 02. 2018

무한한 시간의 함정

그저 순간일 뿐이야, 찰나의.

@The other RYU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털썩. 파란 하늘 대신 하얀 벽이 보인다. 태양 대신 하루 종일 떠 있는 밝은 형광등은 내가 끄기 전에는 절대 꺼지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더 길었다. 몇 날 며칠 낮밤을 바꿔가며 보았던 TV도, 지쳐 잠들어버릴 때까지 했던 게임도 지겨워졌다. 퇴사를 말할 때까지만 해도 빛났던 당당함은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다. 이 좁은 방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좁았다.


백수의 삶은 나쁘지 않다. 할 수 있는 건 무한하다. 뭘 해도 괜찮다고, 한량이 된 시간이 말한다. 문제는 돈이다. 점점 0으로 수렴하고 있는 통장 잔액을 보면 방을 나가기가 두려워졌다. 평소 매일 가던 카페도 가기가 두려워졌다. 방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반갑지 않은 어떤 것이 마음 한편에서 꿈틀거렸다.




시간이 많아졌으니 분명 기뻐야 했다. 그토록 원했던 무한한 시간을 얻었다. 하지만 남은 건 불편한 마음과 무력한 순간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언제 다시 공채가 뜰지 모른다는 사실이 온 머릿속을 휘저었다. 이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서 다시 펜을 잡았다. 책을 폈다. 휘황찬란하게 휘갈겨진 알파벳과 한글이 보인다. 더 좋은 곳에 합격하려면 토익과 인적성 성적이 좋아야 했다. 더 좋은 곳에서 일할 기회를 얻으려면 이런 개념들을 머릿속에 우겨넣어야 했다.


꾸깃꾸깃.


분명 선택되기 직전까지만 필요한 것일 테다. 낯섦에 익숙해지려 하면 언제나 새로운 낯섦이 찾아왔다. 늘 그랬다. 아무도 네가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지 묻지 않았다. 아무도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지 않았다. 오직 네가 이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만 묻고 있었다.


그래도 가고는 있잖아. 그곳으로, 너도.


사람의 온기가 그립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책을 덮고 스마트폰을 켰다. 인스타그램 속 세상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었다. 얼마 전 공기업에 취업한 M은 이번에 미국으로 출장 간다고 한다. 승무원으로 일하는 S는 이번 비행은 유럽행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보험사에 취직한 지 얼마 안 된 친구 K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부지점장이 되었다.


일, 일, 일. 여기나 저기나. 그들의 작업 현장은 행복하다. 분명 지난 수년간 쉼 없이 일해왔음에도 나는 내게 떳떳하지 못하다. 모두가 “내 한 몸 내가 잘 챙기고 있어”라고 속삭이지만, 난 그렇지 않으니.




백수라는 건 그런 건가. 간절히 원하는 순간이지만, 막상 그 순간을 만나기는  두려운 그런 거. 일에 치여 내 삶이 사라지면 갈구하게 되지만 막상 그 순간을 만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거. 이건 다 돈 버는 거에 익숙하고 돈 쓰는 거에 익숙하지만 돈 없이도 가진 걸 누리는 거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서 이 시간이 더 불안한 것은 아닐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손에 든 이 책 한 권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 몇 주 뒤 있을 토익을 신청하는 것?

그런 것보다 의미 있는 게 있을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햇살이 따사롭다. 한강 가고 싶다. 따사로운 햇살을 쬐면서, 바람을 느끼고 싶다. 잊고 살았던 작은 순간들을 느껴보고 싶다. 그 순간, 꽉 막혀 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뚫리는 것 같았다. 상황이 어떻든 이 상황에서 내게 의미 있는 걸 하면 되지 않을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핑 돌았다. 바깥바람을 쐬면 조금 나아질 것이다. 굳게 닫힌 방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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