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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혜인 Jul 09. 2019

하나만 알아서

끝없는 불안이 만드는 새로운 길


 한동안 MC몽의 노래 “도망가자”만 듣고 지냈던 적이 있다. 매일매일 수십 번씩 무한 반복해서 들었다. 이 노래는 뭔가 후렴 부분이 뭉툭한 느낌이다. 곡의 전반적인 흐름은 부드럽다. 그런 지점들이 어느 과거 한 시점에 묻은 특정한 순간의 기억을 건드리는 듯하다. 정확히 말하면 그 기억에 묻은 감정을 건드리는 듯하다. 그래서 이 노래를 자주 들었다. 과거의 어느 한 지점으로 돌아가서, 그때 느꼈던 감성을 최대한 느끼기에 이런 노래만큼 도움이 되는 노래가 없다.


 집에서 칭다오를 막 한잔하고 적는 글이다. 지금의 감정을 박제해 두고 싶다. 내 20대 인생을 돌아보았다. 계속 변하는 환경 속에서 꿈이 변했던 순간은 없었다. 세상 모든 게 바뀌어도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꿈은 변하지 않고 나와 함께해주었던 듯하다.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도, 졸업한 이후에도.




 최근 브런치 글을 겨우 완성했다. 컴퓨터로 적은 초고를 두 번 갈아엎고, 노트에 적었다. 초고 한 번, 퇴고 한 번. 그걸 핸드폰으로 쳐서 브런치에 옮겨 적었다. 살짝씩 수정하고 컴퓨터로 또 수정했다. 그리고 발행했다. 최근 적은 글 3편 중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글이다.


 글을 쓰면서 20대 초반의 기억을 돌이켰다. 시간이 꽤 흘러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묻어둔 그때의 감성과 감정을 끌어냈다. 그리고 글을 쓴 뒤에는 그때의 감정에 지배되었다. 감정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그 감정 때문에 과거의 어느 한 지점이 그리워졌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졌다고 믿을 뿐. 나중에 정말 피디가 된다면, 훨씬 더 섬세하게 삶의 감정을 이야기에 녹여내고 싶다.



 피디가 될 자격을 얻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 삶은 온통 글로 도배되었다. 글이 꿈인 것은 아니었음에도, 처음부터 글이 꿈이었던 것처럼. 꿈을 꾸면 꿈에서 글이 나왔다.


 올해에는 합격하는 꿈만 다섯 번을 꿨다. 바라고 꾼 꿈은 아니었다. 참 신기한 속성을 발견했다. 도박을 걸면 심장이 뛴다. 톰 소여가 한 말은 진리였다. 사람이 뭔가를 간절히 바라게 하려면 쉽게 못 얻게 만들면 된다. 꿈은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오늘 하루 동안 여섯 편의 글을 썼다. 두 편은 블로그를, 한 편은 브런치를, 나머지 세 편은 과제를 위해. 그 세 편 중 한 편은 작문이었고 두 편은 논술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엄청난 양의 글을 썼더니 생각을 크게 않고도 줄줄이 써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글들이 완벽한 것 같지 않았다. 하루 차이였지만 오늘, 수업 때는 또 논술을 썼어야 했다.


 ‘당신이 기획한 프로그램,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이끌어 갈 인물을 한 명 설정하고, 그 인물을 통해 프로그램을 어떻게 성공시킬지 논하라’가 논제였다. 당연히 준비할 시간은 없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썼다.


 엄청난 혹평을 들을 줄 알았다. 많이 걱정했다. 또 상처받을까 봐. 그런데 선생님이 의외의 평가를 해주셨다. 잘 썼다고 말해주셨다. 다만, 기획 부분이 조금 약하다고 하셨다. 내 글 실력이 그래도 성장하긴 했나 보다. 정말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숨 걸고 모든 걸 바치면 정말 안 될 일도 되는 듯하다. 조금 두렵다. 이렇게 모든 걸 바쳤는데도 실패한다면?


내 맘이 그렇지 하나만 알아서
꺾이고 아파도 널 사랑하련다


 2012년 나온 인피니트 “추격자”는 딱 내 상황을 대변하는 노래 같다. 꿈을 결코 쉽게 본 적 없다. 그런데 사실 그 꿈에 닿는다고 해도 바랐던 것만큼 행복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내 인생의 가장 많은 부분을 지배했던 게 그 길이기에 관성에 끌리듯 그쪽으로 가고 있는 것일 뿐.




 그래도 그 일을 하면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은 있다. 사람들과 공감을 그리고 싶다. 유쾌한 삶의 양상을 표현하고 싶다. 그렇게 내가 그린 이야기가 확장되어 대중의 과거 어느 특정 지점에 닿을 수 있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찬 일은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아직 그 일만큼 재밌는 일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글 한 편 쓰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걸 보면, 나는 참 아직도 여전한 아마추어다. 이런 감정이 나쁘지는 않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더 이상 피디가 되지 못할까 봐 두렵지는 다. 내가 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불안에 시달려서 더는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경지에 도달해서이다. 매일 이이가 “성학집요”를 통해서 해 준 조언을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 참된 마음으로 끝까지 성실하게 임하면, 결국 길은 열릴 것이다.


 그래도 가끔 마음 속에 숨어있던 불안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 때가 있다. 그런 불안까지 극복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끝없이 불안을 만나야 한다. 한없이 방황해야 한다. 그 방황의 지점이 모여서 새로운 길을 만든다. 나는 오늘도 그 길의 끝에서 너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정말 너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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