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나는, 사실 식물에 큰 관심이 없었다.
식물을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유년 시절에 화분 하나 제대로 돌봐본 기억도 없고, 어디 놀러 갔다가 이름도 모를 나뭇잎을 예뻐한 기억조차 없다. 나는 식물에 무심한 사람이었다.그러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식물은 공간을 꾸미기 위한 하나의 요소쯤으로만 다가왔다. 모양이 예쁘고, 색이 좋고, 높낮이가 잘 맞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사실은, 때로는 작업을 더 어렵게 만드는 변수처럼 느껴졌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변수와 마주할수록 오히려 더 많은 걸 배우게 됐다. 단순히 키우는 걸 떠나, 식물은 공간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감각을 열어주었다.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키우기 쉽다는 식물을 데려왔는데, 며칠 만에 잎이 처지고 노랗게 바래졌다. 물을 줬는데 더 나빠졌고, 해를 보여줬는데 오히려 말라갔다. 처음엔 ‘이건 왜 이러지?’ 정도의 의문이었지만, 나중엔 이게 내가 뭔가를 다루는 방식의 문제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나는 그저 결과만 원했던 거다. 이 식물이 이 자리에 예쁘게 놓이기를.공간이 멋져 보이기를. 하지만 그 식물은 그 자리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살아있는 존재로서, 스스로를 조율하고 있었던 것이다.식물을 다룬다는 건, 결국 그들의 속도를 이해한다는 뜻이다.빛이 부족한 공간에서 천천히 몸을 바꾸는 식물, 물의 양을 조절하며 자신의 잎을 접는 식물, 뿌리를 내리기 전엔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식물. 그런 식물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너무 서두르고, 너무 쉽게 판단해버린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그래서 우리는 보기로 했다. 이 식물이 얼만큼 버틸 수 있는지,얼만큼 회복할 수 있는지, 얼마나 조심스럽게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는지를. 그 능력치들. 빛을 견디는 힘, 잎이 변하는 반응성,실내 적응 속도, 성장 리듬과 수형 변화. 식물의 ‘성격’을 구성하는 이 다양한 능력치들이 이제는 식기난게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그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 있다.예쁜 식물이 공간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공간과 함께 시간을 보낸 식물이 공간의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식물은 보여지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그리고 나는 이제 인정한다.나는 식물을 사랑해서 이 일을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그 무심함 덕분에,나는 오히려 식물에게 더 길게 시간을 줄 수 있었다.그들의 느림과, 나의 게으름이 맞물려식기난게는 식물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