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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ug 29. 2019

단 둘이 놀이동산에 가는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장롱면허 15년 만에 운전을 시작하는 소감


“엄마! 우리 에버랜드 가자”


“안돼. 동생이 아직 너무 어려서 힘들어”


“아빠한테 맡기고 우리 둘만 가면 되잖아”


“안돼. 엄마는 운전을 못하거든”


열아홉 살 겨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운전면허를 따긴 땄는데 그 이후로는 운전할 기회가 없었다.

집을 떠나 대학생활을 한터라 아빠 차를 가지고 운전해보는 일도 없었고

수도권 지하철과 버스는 어찌나 잘되어 있는지, 스마트폰에 목적지만 입력하면 나오는 대중교통 노선을 보고 여기저기 잘 다녔다.

그러다 보니 2종 보통으로 딴 운전면허는 의도치 않은 10년 무사고 안전운전으로 1종으로 갱신되었고,

그 이후로도 면허증은 딱히 쓸 일이 없어서 서랍 구석 어딘가에 두고 잊고 지냈다.


그런데 이제 아이가 둘이 되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가고 싶은 곳이 생기고 데려가야 할 곳도 늘어나자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이는 버스나 지하철 타는 것을 좋아했고, 데리고 다니는 것이 딱히 힘들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것이 사실이고 날씨 상황에 따라 대중교통 이용이 편하지 않은 날도 있어서 운전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나도 이제 운전을 해야겠다고 슬쩍 말을 꺼냈다.

그동안은 남편이 늘 차를 가지고 출퇴근했지만

마침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회사를 옮기게 되어 주중에 차를 쓸 일도 없었다.

평소 나의 어리바리함을 자주 지적하던 남편인지라 굉장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본인이 운전을 가르쳐주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므로 운전연수를 알아보라고 했다. 나를 못 미더워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도로연수 전문 강사님을 소개받아 4일 동안 하루 3시간씩 운전 연수를 받기로 했다.

막상 운전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으니 조수석에 타서도 남편의 손놀림이나 신호등 같은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를 보면서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다들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 만날 장소를 정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만나기로 한 네 명 중 나를 제외하고 전부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닌가!!

다들 차를 가지고 움직이므로 주차가 가능한 곳이면 상관없으니 나보고 장소를 정하라고 했다.

나는 지하철 역과 연결된 백화점의 식당으로 장소를 정하고 미리 예약까지 해두었다.

멀게는 차로 1시간 거리의 장소에서 온 친구도 있어 미안하고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나도 운전을 했으면 좀 더 중간 지점에서 만나서 친구들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주말에 놀이동산에 다녀온 어린이집 친구 이야기를 듣고

동생 때문에 다 같이 못 가면 엄마랑 둘 만이라도 가자는 첫째의 말이 생각나기도 하고,

운전을 할 수 있게 되면 훨씬 생활 반경이 넓어져 더 큰 세상이 보일 것 같았다.

더군다나 지금은 휴직 중, 시간이 있을 때 평일 오전 시간을 활용해서 연수를 받아야지

나중에는 시간이 없어서라도 운전 연습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더 주저할 수가 없었다.


운전 강사님과 약속한 날이 다가오자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브레이크와 엑셀을 혼동해서 사고를 내기라도 하면 어쩌지?

차선을 못 바꾸고 직진만 하면 어떡하지?

어리바리한 운전으로 뒤차가 계속 클락션을 울리면 어떻게 해야 하지?

무섭고 불안했지만 아이를 낳는 일과 비슷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이를 낳기 전에 출산 후기를 찾아보면서 아... 이렇게 무섭고 끔찍한 일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런데 다들 어떻게든 해낸다. 심지어 나는 두 번이나 했다.

그래, 애도 낳았는데 뭘 못하겠어?


드디어 운전 연수를 시작하는 날,

선생님과 간단한 인사를 하고 운전 기초부터 배웠다.

집 근처 자주 가는 곳, 회사, 도서관, 백화점 등 시내 주행을 이틀 정도 했다.

주차 연습도 하고 주행에 대한 감을 좀 익히고 셋째 날에는 좀 더 멀리 가보기로 했다.


“네비에 남춘천 IC를 찍으세요”


이제 경우 운전 3일 차인데 강원도를 가자고 하신다.

고속주행을 해봐야 시내 주행이 훨씬 편해진다는 선생님을 믿고 일단 달렸다.

계기판의 속도는 100을 넘어가고 시야 좌우로 펼쳐진 푸르른 강원도의 산을 보니

와, 내가 정말 운전을 하는구나!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가평 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출발하는데 투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은 금세 굵어져 앞이 보이지 않게 떨어지고,

옆 차선을 쌩 하고 달리는 차에서 빗물이 후루룩 덮쳐왔다.

나도 모르게 운전대에 힘이 들어가고 어깨와 목이 경직되어 아파왔다.

선생님은 비 오는 고속도로 주행을 연습할 수 있는 너무 좋은 기회라면서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옆에 강사가 있으니 안심하고 해 보라고 격려해주셨다.


그렇게 한 시간쯤을 달려 익숙한 시내로 돌아왔다.

우회전을 할 때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아(아주 살짝) 차가 휘청한 적이 한번 정도 있긴 했지만

그럭저럭 운전을 잘했다. 물론 옆에서 선생님이 코칭을 해주신 덕분이지만.


이제 연수는 딱 하루만 남았다.

선생님은 운전은 자꾸 해봐야 실력이 늘 수 있다며, 연수 마치기 전이라도 혼자 운전을 해보라고 하셨다.

오늘은 비 오는 고속도로를 내리 3시간 동안 주행한 후라 다리가 후들후들해서 도저히 못나겠지만

내일은 기필코 혼자 운전대를 잡아보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지금껏 해보지 않은 일을 시작하려면(다시 시작하는 것을 포함하여)

가장 큰 장애물은 내 안의 ‘두려움’이다.

이걸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 생각해보면

그땐 왜 그랬을까, 하고 웃으며 추억하게 되는 일도 다반사이다.


그래서 지금 나의 목표는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연수를 끝내고 나면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운전 감을 더 익히고

첫째와 함께 둘이서만 에버랜드에 가야지.

복직 전에 꼭 가야지. 갈 수 있겠지?

(아직은 좀 무서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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