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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예슬 Jun 22. 2017

모허 절벽에 두고 온 눈물


익숙한 세상, 익숙한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채 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추구하려 떠나 온 여행,

온전히 나의 내면 그 깊은 곳에 집중하여 마음을 비우고,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해내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모순된 듯, 혹은 당연하게도 진정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여행을 하다가 문득 '세상이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아직도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 한 종류의 아름다움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이 아름다운 풍경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다음엔 꼭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시 한 번 이 곳을 찾아야지, 하고 두고 온 이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잠시 가져보는 것이다.


때로는 그 애틋함이 슬픔으로 번질 때도 있는데. 북아일랜드 골웨이 근처에 위치한 모허 절벽을 찾은 때였다.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 위로 높게 솟은 흙빛 절벽과 그 위를 평화롭게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을 한 장면 한 장면씩 찬찬히 마음 속에 담아내다가, 절벽 위 돌길을 손 잡고 걷고 있는 한 노부부가 시야 안에 들어왔다. 시야가 자꾸만 눈물에 가려 결국 옆에 놓여있던 바위에 걸터앉아 얼마 간을 울었다. 이 아름다운 것들을 0.0001% 조차도 보지 못 하고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야 했던 엄마가 가여워서. 수십년 간 직장 생활하랴 자식들이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몇 배로 챙겨주랴, 그렇게 일평생을 잔뜩 고생만 한 아빠가, 나중에 은퇴한 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이곳 저곳 여행도 다니며 오손도손 남은 삶을 즐기는 동년배 친구들을 보며 더 큰 외로움을 느낄 것이 안쓰러워서. 그 아름다운 풍경을 눈 앞에 두고 한참을 울었다.


먼 곳에 혼자 떨어져 있다 보면 나를 더욱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음과 동시에,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이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더 실컷 사랑하겠노라 다짐하게 된다.


우리에게 때로 여행이 필요한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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