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의 협박을 멈추기로 했다

조카의 눈물에서 마주한 나의 ‘어린아이’와 뇌과학의 진실

by I am that

어제 조카 서호의 눈을 보며 나는 안의 깊은 울림을 전해야만 했다. 아이의 눈동자에 맺힌 또렷한 불안은, 아주 오래전 내가 부모님께 그토록 갈구했던 ‘안정적인 사랑’의 결핍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아이를 잘 가르치기 위해 ‘협박’이라는 손쉬운 도구를 꺼내 든다. “숙제 안 하면 다 버릴 거야!”, “영어유치원 안 보낼 거야!”라는 말은 부모에게는 훈육일지 몰라도, 아이에게는 자신의 유일한 울타리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공포로 다가온다.


​뇌과학적으로 볼 때, 7세 이전은 시냅스 가지치기가 일어나는 폭발적인 성장기다. 이때 지속적인 공포를 느끼면 뇌는 ‘학습 모드’가 아닌 ‘생존 모드’로 전환된다. 지식을 습득해야 할 뇌 부위보다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아이를 위해 시킨 숙제가 아이의 뇌를 불안과 공포에 절게 만드는 꼴이 된다.


부모는 때로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자신의 불안을 숨긴다. 하지만 아이는 사랑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부모의 떨림을 그대로 흡수한다. 이 시기에 각인된 감정은 인생 전체의 ‘기본 배경색’이 된다. “나는 조건을 채워야만 버림받지 않아”라는 믿음을 가진 아이와 “나는 실패해도 안전해”라는 믿음을 가진 아이는 훗날 삶을 대하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 희귀병으로 실명 위기에 처한 딸을 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는 울먹이며 말했다. 딸이 공부를 못해도 좋으니 그저 세상을 볼 수만 있게 해달라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아이를 다그치고 있는 걸까. 숙제보다 소중한 건 아이가 스스로를 믿는 힘, 즉 ‘자존감’이라는 토양이다.



앞으로 지식은 AI가 모두 채워줄 수 있다. 하지만 무너진 마음의 뿌리를 다시 세우는 일은 AI도 절대 할 수 없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가 먼저 자신의 불안을 들여다보고 여유를 가질 때, 비로소 아이는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강한 아이로 자라난다.

​이 기록은 조카에 대한 참견이 아니다. 내 안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져 올라온 나의 ‘어린아이’가 건네는 간절한 부탁이자, 우리 모두가 회복해야 할 진실에 대한 고백이다.